[베테랑 토크①] 김문정 음악감독 “잘 해야 본전인 ‘아리랑’, 부담감 컸죠”

입력 2017-08-09 12: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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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면서도 그의 전화울림은 끊이지 않았다. 대부분 울리다 그쳤지만 꼭 통화를 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 때마다 그의 표정은 변주를 하는 것처럼 달라졌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어떡하냐”는 걱정 어린 소리가 나기도 했다. 뮤지컬 ‘아리랑’을 비롯해 ‘서편제’, ‘레베카’, JTBC ‘팬텀싱어’ 시즌2 심사위원 그리고 각종 뮤지컬 콘서트까지 준비하고 있는 김문정 감독의 이야기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음악 감독이 아닐까. 인터뷰도 ‘아리랑’ 최종 리허설을 하기 직전에 진행됐다. 인터뷰 전까지 ‘서편제, ‘레베카’ 회의를 마치고 왔다는 그는 쌩쌩한 모습으로 ‘아리랑’이 공연되는 예술의전당으로 달려왔다.

창작뮤지컬 ‘아리랑’은 조정래의 대하소설을 뮤지컬화 한 작품으로 일제강점기, 파란의 시대를 살아냈던 민초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투쟁의 역사를 담아낸 작품으로 2015년 초연이후 2년 만에 관객들에게 돌아왔다. 김문정 음악 감독은 재연에 합류해 ‘아리랑’의 음악을 한껏 업그레이드 시킨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지만 초연 영상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고.

“이게 잘 해야 본전이거든요.(웃음) 그리고 이미 예정된 공연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도저히 뺄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신시컴퍼니는 표현하자면, 제가 머리를 올린 곳이기 때문에 친근한 곳이에요. 마치 엄마가 ‘집에 와서 청소 좀 하다가’라면 가야할 것 같은 친정집? 하하. 신시컴퍼니와 에이콤이 제겐 그런 곳이에요. 또 제작사에서 제 스케줄을 많이 배려해주신 탓에 사전 작업을 3,4월에 이미 해서 무리 없이 연습을 할 수 있었어요.”

김문정 음악 감독은 초연 영상을 보면서 도전의식과 함께 엄청난 부담감이 동반됐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공연이 올라갔다는 건 어마어마하게 큰 일이 일어났다는 건데 내가 그곳에서 후발주자로 나서서 호소력 있고 수긍이 가는 일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처음에는 겁이 나긴 했다”라고 말했다.

“고선웅 연출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제작진들이 내게 바라는 작업을 바라는지 알겠더라고요. 영상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이런 음악을 하면 장면이 더 어필이 되겠는데?’라는 게 그려졌어요. 그런데 이게 무대에서 실현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어요. 이미 초연을 치른 작품이라 변화에 대해 찬성을 하실 지도 의문이었고요. 그런데 고 연출님과 김대성 작곡가님께서 제 새로운 시각을 칭찬하시고 아무 말이나 해달라고 하시며 자유롭게 말하고 일할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게다가 배우들 역시 거리낌 없이 도전을 하고 키와 박자 등을 조율하면서 가장 연기를 잘 할 수 있도록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안 하려고 했던 작품을 제일 열심히 하고 있잖아? (웃음)”


이번 ‘아리랑’에서는 초연에서 들을 수 없었던 넘버가 추가되기도 하고 솔로곡이었던 것이 듀엣으로 바뀌는 등 여러 변화를 볼 수 있다. 백그라운드 음악을 깔기도 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을 주는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마디를 줄이고 가사를 정돈하면서도 김대성 작곡가의 음악을 해치지 않고 결을 살리는 방향으로 많은 시도를 했다. 이에 드라마와 음악이 더 돋보일 수 있게 하려 머리를 썼다.

“‘진도아리랑’, ‘신 아리랑’ 등 기존에 익숙한 멜로디가 흐르는데 이게 한정된 시간을 넘어가면 뮤지컬인지 아닌지 방향성이 모호해질 수도 있거든요. 게다가 대부분 배우가 소리꾼이 아니기도 하고요. 그래서 음악을 백그라운드로 까는 시도를 해봤어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연습 때와 시츠프로브(Sitzprobe)때는 괜찮았는데 본 공연에서 산만함을 준다면 과감히 덜어내야죠. 모 아니면 도가 될 것 같아요. 또 기존 솔로곡은 듀엣으로 바꿔서 더 드라마틱하게 바꿨고 합창도 처음에 배우들 한 명씩 부르며 차곡차곡 쌓아가는 쪽으로 바꿨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사투리가 나오는 음악도 아름답게 들릴 거예요. 사투리라고 꼭 투박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이번 작업을 통해서 김문정 음악 감독은 나이가 들면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누구나 나이 듦에 서럽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지 않나”라며 입을 연 그는 “하지만 그만큼 여유도 생기고 편안해지는 것 같다. 이게 바로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연륜’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아리랑’이 가장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정말 캐릭터 연령대인 배우들이 연기를 한다는 거예요. 이건 안 좋을 수가 없어요.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세월이 주는 경험을 당해낼 재간이 없거든요. 이번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분이 바로 김성녀 선생님이신데 정말 열심히 하셨어요. 게다가 연륜이 느껴지는 그 연기와 노래가 정말 와 닿더라고요. 그리고 저를 비롯해서 스태프들 모두에게 깍듯하게 대하셨어요. 서로가 존중하는 작업이라 능률도 오르고 한 것 같아요. 김성녀 선생님 말고도 많은 배우들이 다들 베테랑들이고 ‘아리랑’을 너무 사랑해서 가능했던 작업이었어요. 앙상블 역시 자기 파트가 많지 않음에도 언제나 열정적으로 연습해줘서 너무 고맙죠.”

김문정 감독은 ‘아리랑’이 국내서 뿐만이 아니라 해외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대표님께서 ‘아리랑’을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공연할 계획이 있으신 걸로 알고 있다”라며 영국 런던에서 ‘명성황후’를 공연했던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극 중에 궁녀들이 잔인하게 칼부림을 당하는 연습을 할 때 현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어 나이스 씬(A Nice Scene)’이라며 사진을 찍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한국의 아픈 역사이니 공감을 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공연을 마치고 난 뒤에 단원들은 ‘사실 우리는 침략국이라 너희 정서를 잘 모르겠어’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공감대가 다른 거죠. ‘아리랑’은 해외로 가도 될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들이 좀 있지만 모두 머리를 맞대면 정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 베테랑 토크②에서 이어집니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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