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장산범’ 박혁권의 고민 “잊혀지는 것 무섭지만 쉬고 싶기도”

입력 2017-08-24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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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권은 ‘신 스틸러’다. 단 1초를 나와도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 주조연은 물론이거니와 특별출연, 우정출연에도 언제나 그만의 매력을 잃지 않는다. 주연 영화 ‘나홀로 휴가’에서는 지질하고 처절한 중년 남성의 사랑을 그렸고 ‘스물’에서는 유쾌하고 엉뚱한 모습으로 인상을 남겼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보여준 1인2역 연기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올해 최초로 1000만을 돌파한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광주 지역신문 기자 최기자를 맡아 정의로운 기자 정신으로 관객들을 울렸던 박혁권. 그는 ‘택시운전사’에 이어 지난 17일 개봉한 주연작 ‘장산범’을 통해 관객들을 다양하게 만나고 있다. 전혀 다른 장르, 이야기, 캐릭터다.

박혁권은 ‘장산범’에서 미스터리한 사건에 빠진 여자 희연을 돕는 남편 민호를 연기했다. 극을 이끌기보다는 철저히 ‘서브’하는 역할이다. 박혁권이 있기에 염정아의 열연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배우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도 있을 터. 왜 박혁권은 ‘장산범’에 출연했을까.


Q. ‘장산범’ 완성작을 보고 어땠나요.

A. 꽤 괜찮게 봤어요. 제가 출연한 영화니 객관적일 수는 없죠. 전체적으로 세련된 느낌이 들었어요.


Q. 캐릭터가 단선적이어서 조금 아쉬웠어요.

Q. 민호는 직접적으로 사건을 만들거나 맞서 싸우는 인물은 아니에요. 최전방 공격수는 아니고 미드필더 역할이죠. 공을 주고받을 때 잘 던져야 잘 받거든요. ‘팀워크를 맞추는 게 중요하겠다’ 싶었어요. 제 역할보다는 완성작이 정말 궁금했어요. 장르적으로도 흔하지 않고 무엇보다 ‘소리’에 집중한 영화라 최종적으로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더라고요.


Q. 민호는 정말 겁이 없더라고요. 어두운 동굴에도 거리낌 없이 들어가고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A. 민호도 아마 무서운데 참았을 거예요. 뒤에서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으니까요(웃음). 저는 겁이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귀신만 무서웠는데 지금은 귀신도 사람도 둘 다 무서워요. 하지만 잘 참는 편이에요. 아픈 티도 잘 못 내고요. 창피해 한달까. 제가 아프다고 하면 진짜 아픈 건데…. 사람들은 엄살 피운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억울해요.



Q. 앞서 여러 인터뷰에서 큰 상처를 받은 경험을 털어놨어요. 최근에 많이 힘든 일이 있었나 봐요.

A. 작품 중에 상처받는 ‘일’이 있었어요. 또 그런 일이 생겼을 때도 배우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싶었어요. 은퇴하고 싶어질 것 같아요. 차라리 좀 쉬는 게 낫겠다 싶더라고요. 이 문제를 공론화 할까 아니면 1인 시위라고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더라고요. 알아서 사라져주지 않을까.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답을 내렸죠.


Q. 스트레스가 쌓이면 어떻게 해소하는 편인가요.

A. 그냥 넘겨요. 일부러 참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야기는 꼭 하죠. 잘못된 것을 참고 싶지 않아요.


Q. 일상 속 모습이 궁금하네요. 작품 외에는 알려진 게 거의 없죠.

A. ‘집돌이’에요. 친구들만 가끔 만나고요. 생각이 많아져서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를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장산범’ 이후를 어떻게 가야할지…. 2년 반 넘게 안 쉬고 일 해왔는데 배우로서나 작품으로나 많이 소진된 것 같아요. 고갈되고 무뎌진 것 같아요. 배우로서도 그렇지만 ‘인간 박혁권’으로서 무언가 채워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중심을 스스로 잘 잡고 있어야 어떤 일이든 잘 넘어갈 수 있을 것 같고요.


Q. 이미지 소진에 대한 고민과 동시에 휴식에 따른 ‘잊혀짐’의 고민도 있을 것 같아요. 워낙 빨리 잊혀지는 시대니까요.

A. 그런 우려도 있죠. 무섭기도 하고요. 어제로 친한 배우 친구와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 친구가 ‘형. 예전에 비해서 많이 좋아졌는데 왜 그걸 무서워하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아냐. 금방이야’라고 대답했죠. 계속 갈팡질팡해요. 이렇게 말해놓고 내일부터 연기에 정진할 수도 있어요. 하하.


Q. 혹시 배우의 길을 후회한 적도 있나요.

A. 회의감은 없어요. 재밌는 게 연기할 때 과학자처럼 꼼꼼하게 접근해야 해요. 저를 설득해야 하거든요. 이유 없이는 못 움직이죠. 좋은 직업 같아요.


Q. 대중에게는 유쾌하고 재밌는 사람으로 인식돼 있어요. 인간 박혁권은 어떤 사람인가요.

A. 유쾌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거고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죠. 특별히 만들고 싶은 이미지는 없어요. 잘 살다 보면 어떻게든 만들어지겠지 싶어요. 제가 감수해야죠.

실제의 저는, 정확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약속을 정하면 지켜야 하고, 나눌 일이 있으면 정확히 나눠야 하죠. 평소 ‘정확하게 해’라는 말을 많이 써요. 연기할 때도 정확하게 하려고 해요. 어떤 감정인지 분석하고요.


Q. 정확하게 한다라. ‘장산범’을 할 때는 어땠나요.

A. 감독님이 설명을 조근 조근 잘 해주세요. 의논하는 과정이 되게 재밌었어요. ‘왜 저쪽을 쳐다봐야 하죠?’ 하면 막 설득시켜주셨어요.



Q. 워낙 다작하는 배우죠.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작품은 무엇인가요.

A. 다 좋았지만 특별히 ‘차우’와 ‘이층의 악당’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보기에도 정말 재밌었어요. 전체적인 밸런스도 좋았고요. 드라마는 ‘밀회’ ‘육룡이 나르샤’ ‘펀치’요.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아내의 자격’이에요.


Q. 대중적인 인기와 반응이 뜨거워요. ‘아재파탈’의 한 명으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고요.

A. 제 이름을 많이 검색해보긴 해요. 궁금하니까. 기사나 댓글을 보기는 하는데 칭찬에도 욕에도 영향을 받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내가 중심을 잘 잡아야 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야 칭찬에도 확 넘어가지 않고 ‘연기 못한다’ 같은 욕을 먹어도 견딜 수 있죠.


Q. 대중과 관심을 체감하나요. 특별한 변화는요.

A. 월세 살다가 집을 산 거 외에는 달라진 게 없어요. 하하.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주세요. 환경은 달라졌어도 저는 안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지하철도 타고 친구들과 선술집도 가고요.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리자는 마인드예요. 조금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달라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불편하다고 도망 다니지 않으려고요.



Q. 마지막으로 결혼에 대해서 물어볼게요. 아직 미혼이죠.

A. 아직 안 했습니다. 이제 와서 굳이 서두를 필요가 있나 싶어요. 이미 늦었잖아요. 아기는 낳아보고 싶어요.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라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어요. 육아를 통해 제가 몰랐던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은 계획에 없는데 아기를 낳을 거면 결혼을 할 거예요. 아니면 동거만 할 거고요. 연애는 개인적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썸을 좋아해요.


Q. 썸은 ‘정확하지’ 않잖아요. 정확한 거 좋아한다면서요(웃음).

A. 이상은 그런데 현실은…. 이렇게 언행불일치 되는 부분이 있네요. 하하.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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