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①] 카이 “롤러코스터 같은 내 삶, ‘벤허’와 닮았다고 생각”

입력 2017-10-01 11: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배우와 작품은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배우가 원하는 작품이 있어도 할 수 없고, 그와 반대되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이에 인연을 만나는 것처럼, 배우와 작품이 만날 때는 ‘타이밍’이라는 어느 정도의 ‘운’과 ‘밀고 당기기’가 필요하다. 뮤지컬 배우 카이에게 ‘벤허’는 그런 의미에서 ‘굉장한 인연’이다.

‘벤허’가 뮤지컬로 제작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카이는 처음부터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머뭇거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원톱’으로서 경험이 미약하다고 스스로 판단했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제작기간이 예상보다 오래 걸렸고, 카이는 열심히 무대에 오르며 점점 성장해갔다. 그러던 중 ‘벤허’의 개막 이야기가 업계 사이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카이와 ‘벤허’의 인연은 시작됐다.

“’벤허’가 미뤄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더 열심히 해서 꼭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 왕용범 연출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처음에는 ‘메셀라’ 역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조금 더 욕심을 냈어요. 단순히 타이틀롤이라 그런 건 아니었어요. ‘벤허’는 제게 특별한 작품이었거든요. 왕 연출가께 ‘내 모든 것을 걸 준비가 돼 있다’라고 말씀 드렸고 연출가께서 제게 기회를 주셨죠. 작품의 성패를 떠나 의미가 깊습니다.”

답변을 하면서, 카이는 두 눈을 반짝였다. 단순히 역할 욕심이 아닌 조금 더 특별한 의미가 그에게 있는 듯 했다. 그에게 ‘벤허’는 왜 남다른 걸까. 그러자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 속마음을 속 시원히 꺼냈다.


“어렸을 때 ‘벤허’를 보면 마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 물론 소설 속 주인공처럼 서사적이고 비극적 운명은 아니지만 저도 어린 시절부터 롤러코스터와 같은 쉽지 않은 삶을 살았거든요. 집안 사정도 그렇고, 제가 꿈을 키우는 과정에서도 참 힘들었어요. 그래서 크리스천으로 살고 있지만 신을 원망했던 적도 참 많아요. 그래서 기도를 하며 절망과 배신감을 들 때가 참 많았어요. 그래서 ‘유다 벤허’의 모습을 보며 참 공감이 되더라고요. 또 저는 왜 무대에 서는지 자문할 때가 있어요. 제가 내린 결론은 삶의 관점이 나만이 아닌 다른 곳일 때 안정과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무대’도 그 중에 하나고요. ‘벤허’가 그런 마음을 더 일깨워주는 것 같아요.”

그토록 원했던 작품과 만나서 기뻤지만 만드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고. 왕 연출가의 “마음껏 마음을 표현하라”는 말에 저돌적인 모습과 함께 벤허의 마음에 가까워지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는 “돌이켜보면 평소보다 나를 더 채찍질하며 캐릭터를 만들었다”라고 회상했다.

“낮아진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구현하고자 하는 목표의식이 생겼거든요. 그래서 연습 기간에는 거의 식사를 하지 않고 운동을 했어요. 점심, 저녁에는 식사를 하지 않고 극장 내 피트니트 센터에 가서 운동을 했고요. 연습을 마치고 따로 노래와 연기 연습을 했죠. 그렇게 집에 돌아와도 작품 생각에 잠도 잘 못 잤어요. 참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보낸 것 같아요.”

1880년 출간된 루 윌리스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벤허’는 대중에게는 195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 연출, 찰턴 헤스턴 주연의 동명 영화로 더 알려졌다. 로마 제국 시대, 유대 청년 벤허의 시련을 통해 신의 섭리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스크린으로 옮겨지며 초호화 액션 스펙터클 대작이 되면서 화려한 볼거리가 제공된다. 그 중에서 벤허와 메셀라의 전차 대결 장면은 여전히 회자되는 명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뮤지컬 ‘벤허’에서도 전차 대결 장면을 볼 수 있다. 여덟 마리의 구체 관절 말 모형과 원형 스크린 등으로 무대 위에 명민하게 표현했다. 어찌 보면 관객들은 과거에 봤던 ‘벤허’의 명장면을 기대하고 올 수 있지만 분량은 크지 않다. 그 이유에 대해 카이는 “’벤허’는 인간 ‘유다 벤허’의 삶을 초점에 두고 그렸고, 그로 인해 더 큰 미래가 제시되는 작품”이라며 “부족할 게 없었던 벤허의 삶에 닥쳐온 시련과 또 그가 하고자 했던 복수, 그리고 끝내 얻게 되는 메시지가 더 중요한 부분이기에 거기에 더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을 통해 가장 크게 전달하고자 하는 건 ‘용서’가 아닐까요?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예수가 벤허에게 ‘용서하라’는 말을 하잖아요. 복수를 꿈꾸던 벤허의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요즘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화가 나 있는 것 같아요. 뉴스를 봐도 그런 사건들이 너무 많고요. 작은 일에도 큰 다툼이 일어나는 세상 같아요. 저 역시 이 작품을 통해 ‘용서’라는 것을 삶으로 옮기려고 노력 중이에요. 이 작품을 통해 큰 가르침을 받은 것 같아요.”

2011년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로 뮤지컬에 발을 디딘 카이는 어느덧 타이틀롤도 거머쥘 만큼 성장했다.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뮤지컬을 시작한 이후 단 하루도 헛되이 살아본 적이 없었다고 장담할 만큼 그는 완벽한 무대를 꾸미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이 시간이 더 빨리 온 것 같아요. 그래서 감사하고 기쁜 마음이 크지만 부족한 부분이 아직 느껴지기 때문에 이 순간을 누리기보다는 더 발전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스스로 칭찬도 해주고 싶어요. 정말 열심히 살았거든요.(웃음)”


그러면서 카이는 “앞으로 내 인생의 다음 장이 어떻게 펼쳐질지”라며 기대감을 더했다. 그는 “6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뮤지컬 배우로 살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작품을 하면서 행복하고 즐겁고, 또 한편으로는 지치지만 내 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사람의 인생은 아무도 모르지 않나. 지금은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언젠간 내려와야 하는 시기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저희 매니저 팀장님은 ‘지금부터 너무 많은 생각하지 말라’고 하세요. 하하. 그러기엔 너무 이른 나이라고. 하지만 정말 사람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그럼에도 마음 속에 꼭 해야겠다는 일은 있어요.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어려운 형편에 ‘명성황후’를 보여주신 적이 있어요. 그 때 티켓 한 장을 사시곤 저 혼자 극장으로 들여보내셨죠. 그 작품을 보고 가슴이 뛰었거든요. 지금 생가해 보면 ‘내가 그걸 안 봤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기억이 아직도 있어서 문화소외계층 아이들에게 공연을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어요. 누군가 그 때의 저처럼 꿈을 가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서 꿈과 희망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먼 미래를 물어봤으니 가까운 차후 계획도 물어봤다. 당분간 ‘벤허’에 집중하며 잘 마치는 것이 목표라고. 하지만 곧 앨범으로 팬들을 만날 것이라고 귀띔을 하기도 했다. 그는 “요즘 ‘팬텀싱어’를 보며 남다른 느낌을 받는다”라며 “후배들과 만나며 녹음을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뮤지컬 배우이기 전에 전 팝페라 가수잖아요. 그래서 ‘팬텀싱어’가 화제가 되고 클래식 장르에 관심을 기울이는 분들이 많아져서 감회가 새로워요. 제가 데뷔 앨범을 내고 방송국을 다닐 때만 해도 틀 곳이 없다며 거절도 많이 당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후배들이 발돋움 하는 모습을 보면 감개무량해요. 후배들과 함께 저희가 하는 음악도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쇼온컴퍼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