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이병헌 “‘남한산성’ 치욕의 역사? 실패에도 배울 점 있을 것”

입력 2017-10-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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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진행하면 특정된 배우에게 늘 돌아오는 질문이 있다. ‘믿고 보는 배우’로서의 부담감이다. 그 중 한명은 배우 이병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병헌의 캐스팅 소식은 늘 화제가 되고 흥행 여부도 미리 기대하게 된다. 또한 이에 못지않은 결과까지 이어지니 그에겐 항상 이런 질문이 지긋지긋하게 돌아온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병헌은 “흥행하는 배우보다 다양한 작품을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입바른 말은 아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 말의 진실함이 느껴진다.

3일 개봉되는 ‘남한산성’도 그런 필모그래피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병헌은 “요즘 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영화라고 느껴졌다”라며 “호흡이나 속도, 그리고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영화의 감성이 다르게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저는 아주 단순하게 제게 울림을 줬는지가 작품을 결정할 때 큰 영향을 끼쳐요. ‘남한산성’은 어떤 슬픈 영화보다 크고 깊은 감정을 줄 거라 생각했어요. 촬영하면서 이미 지나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라 더 안타까웠어요. 가상의 이야기나 극의 끝을 바꿀 수도 없는, 정말 우리의 역사니까 진짜 안타까웠어요.”

이병헌이 맡은 ‘최명길’ 역은 정세를 객관적으로 보는 통찰력과 나라에 대한 지극한 충심을 지닌 이조판서로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에서 청과의 화친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 이에 척화를 주장하는 김상헌(김윤석 분)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다. 위시의 상황에서 청과 화친할 것인가, 맞서 싸울 것인가를 두고 대립하는 두 충신으로 분한 이병헌과 김윤석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팽팽한 연기 시너지를 펼친다.

한 나라의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옳지만 전혀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최명길과 김상헌의 모습을 보며 이병헌은 “어느 편도 들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전쟁과 백성의 죽음을 막기 위해 치욕을 감수하더라도 지금은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최명길의 주장과 대의를 지키고자 청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김상헌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관람포인트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 어느 누구에게도 치우쳐지지 않았어요. 처음 겪는 일 같아요. 보통 대본을 보면 누구 하나에게 마음이 가기 마련이거든요. 선과 악이 나뉘어져 있으면 영화를 볼 때 감정이입이 편해요. 그래서 이 작품은 흥행 면에 있어서 자칫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 편을 들 수가 없어서.(웃음) 그래도 그게 또 이 영화의 매력이죠.”

신념과 원칙을 논하고 명분과 실리를 치열하게 주장했던 두 사람의 치고받는 대사는 힘든 어휘도 많고 생경한 단어들도 많았다. 이에 인조(박해일 분)에게 최후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하게 말을 하는 촬영날에는 이야기꽃이 만발했던 배우들도 조용히 긴장을 하며 촬영에 임했다고.

“대본 리딩 할 때부터 긴장을 한 것 같아요. 특히 (김)윤석이 형이랑 절정을 치닫는 소신에 대한 싸움은 길기도 하고 중요한 부분이라 배우, 스태프들 모두 긴장한 상태에서 찍었어요. 그날따라 모두 예민하고 날이 서 있었죠. 그런데 정작 가장 긴장한 건 박해일 씨였어요. 우리가 대사하는 중간에 받아쳐야 해서 자신이 실수할까봐 걱정을 하더라고요. 촬영 끝나고 녹초가 된 건 윤석이 형이나 제가 아니라 해일 씨였어요. 하하.”

최명길과 김상헌은 청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지만 말하는 스타일도 다르다. 김상헌은 직설적인 화법을 쓰는 반면, 최명길은 은유적인 화법으로 인조를 대한다. 이병헌은 “돌려서 말을 하니까 내가 답답해지더라”라며 “한 번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에 황동혁 감독님에게 부탁해 대사를 조금 수정한 것이 있다”라고 말했다.


“최명길이 화친을 주장한 이유는 백성 때문이었잖아요? 백성이 지금 죽어나가는데 한 나라의 임금이 고개 한 번 숙이는 게 뭐가 그리 어렵냐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대의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백성을 살리는 거, 그게 중요한 거잖아요. 그걸 좀 돌직구로 말하고 싶었거든요. 황 감독님이 그 대사를 고민하는데 한 달 정도 걸리신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 기회를 주셨죠.”

이병헌은 ‘남한산성’을 통해 김윤석, 그리고 황동혁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췄다. 함께 작품을 한 소감을 물어보니 “윤석이 형은 목소리가 참 컸다. 나 이런 말하면 혼나는 거 아냐? 하하. 황동혁 감독은 예상을 깨는 사람”이었다며 너스레를 떨며 말을 이어나갔다.

“김윤석 씨는 저하고 나란히 앉아서 연기를 하는 바람에 표정을 보지 못했거든요. 목소리만 들었죠. 말투만 들어도 강렬함이 느껴졌는데 시사회에서 표정 연기를 보니 빨려 들어가겠더라고요. 참 ‘뜨거운 배우’라는 걸 느꼈어요. 황동혁 감독님의 첫 인상은 좋진 않았어요.(웃음) 고리타분하고 정말 재미없게 생겼잖아요.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랐던 건 감독님 이름으로 오는 ‘커피차’가 정말 많았다는 거죠. 저희보다 훨씬 많았어요. 알고 보니 감독님과 작업을 한 스태프들은 모두 그의 팬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황 감독의 연출력을 더불어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아, 정말 사람은 겉으로만 판단하면 안 돼요. 하하.”

앞서 언급했듯이,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에 청이 조선을 침략하며 병자호란이 발발했고 왕과 조정이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했지만 청의 대군에 둘러싸인 채 성 안에 고립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승기를 잡은 통쾌함이 아닌 암울하고 치욕적인 역사를 담았기에 관객들의 반응은 어떨지도 궁금해지는 바다. 이에 대해 이병헌은 “언제나 승리의 역사만 고집할 수 없지 않나”라며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답을 주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남한산성’을 보면 우리가 사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거든요. 400년 전에도 유사한 상황이 있었다는 걸 우리가 알게 되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할 거라 생각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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