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살기법’ 원신연 감독 “설현, 보물 같은 배우…또 만나고파”

입력 2017-10-10 1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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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연 감독이 연출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김영하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원작 소설과 동일하게 알츠하이머에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이 새로운 살인범의 등장으로 잊었던 살인습관이 되살아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원작이 있는 작품들을 줄곧 고사해왔던 원 감독이 처음으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원작 소설이 너무 좋았어요. 이런 작품을 만나기 쉽지 않죠. 주제적 깊이가 마음에 들었어요. 장르적인 재미도 있었고요. 서스펜스가 결합된 유머가 제 마음을 움직였죠.”

베스트셀러의 영화화는 ‘양날의 검’과도 같다. 문학적으로도 화제성으로도 인정받은 탄탄한 시나리오를 보장받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그러나 단순히 소설을 영상으로 재현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재창작자는 ‘원작 이상의’ 결과물을 보여주어야 하는 책임감까지 동시에 떠안는다. 소설 팬들을 만족시키면서 영화 팬들까지 매료해야 하니 더더욱 어려운 작업이 뒤따른다.

“원작이 재밌고 유명해서 선택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요. 이전에도 원작이 있는 영화를 몇 번 제안 받은 적 있는데 거절했어요. 원작이 독자들에게 매력적일 수는 있지만 영화로 옮겼을 때도 팬들이 원작의 구조를 느낄 수 있는가가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살인자의 기억법’은 고민의 여지가 없었어요. 캐릭터에 변화를 주고 인물을 재창조해도 구조가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화학 작용이 일어날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원작을 좋아하는 분들도 새로운 결과물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부담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럼에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 마음먹었죠.”


원신연 감독은 도전적이고 과감했다. 주요 캐릭터의 관계는 원작과 유사하게 설정했지만 후반부 스토리는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냈다. 전혀 다른 전개. ‘알고 보니 살인범은 주인공뿐’이라는 원작의 반전을 예상한 팬들의 뒤통수에 보기 좋게 한 방을 날렸다. 더 나아가 원 감독은 영화의 시작과 엔딩을 같이 하는 설경구의 터널 신을 통해 ‘열린 결말’로 끝맺었다. 관객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 결과적으로 원 감독의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265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흥행했다.

“잘 완성된 소설 원작이 있어서 가능한 부분이었어요. 소설과 영화의 콜라보지만 주체적인 자기 성격을 가진 작품으로 보이게 구성했어요. 스릴러를 좋아하는 관객들을 위해서 곳곳에 장치도 숨겨뒀죠. 예를 들면 병수가 꿈에서 깨어났을 때 목에 남은 자국이라든가 툇마루에 있는 신발 두 켤레라든가. 눈치 빠른 관객들이라면 알아차렸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치밀하게 보지 않아도 별 무리 없이 볼 수 있게 만들었어요.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는 것도 재밌을 거예요.”


원작에 비해 주인공 병수 캐릭터는 한층 인간다운 인물이 됐다. 범죄에 일말의 죄책감도 가지지 않던, 오만하고 냉소적인 성격의 살인범은 영화에서 최소한의 정당성을 입었다. 동물학대범, 가정 폭력범, 사채업자, 불륜녀 등이 살해의 대상으로 지목됐다.

“메인 캐릭터를 응원할 수 있느냐 없느냐도 중요하잖아요. 소설에서는 그런 캐릭터가 나와도 장르적인 판타지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영화는 다르죠. 영화는 현실로 받아들이니까요. 영화를 보는 의미 자체가 소멸될 위험이 있어요. 연쇄살인범이었던 병수를 목적 살인마로 바꿈으로써 관객들이 (죄를 물어야 하긴 하지만) 어쩌면 응원하고 싶어지는 인물로 만들려고 했어요.”

원신연 감독의 지휘 아래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는 작업은 설경구 설현 김남길이 맡았다. 설경구는 주인공 병수 역할을, 설현은 병수의 딸 은희를, 김남길은 의문의 남자 태주를 연기했다. 원신연 감독은 소설을 읽을 때부터 설경구를 떠올렸다고 강조했다.

“70대에서 환갑을 앞둔 59세로 나이를 낮췄어요. 소설의 원형은 유지하되 나이대를 많이 무너뜨리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 나이대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 중에 과연 누가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답은 설경구 밖에 없었어요. 자기 변화를 항상 갈구하고 도전해온 배우잖아요. 소설을 읽으면서도 설경구의 얼굴이 느껴졌죠. 작업하면서는 설경구의 연기에 소름끼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에요. 영화를 찍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 만큼 배우가 연기를 현실적으로 보여줬죠. 왜 다들 ‘설경구 설경구’ 하는 지 느낄 수 있었어요. 역시 그는 전설이더라고요.”


원 감독은 막내 배우 설현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설현은 보석 같은 배우”라며 마르고 닳도록 칭찬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강남 1970’(2015)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설현의 두 번째 출연 영화. ‘강남 1970’에서는 조연이었지만 이번에는 당당히 주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캐스팅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원작과 영화 팬들은 기대보다는 우려를 표했다. 병수 못지않게 중요한 은희를 아이돌이 연기한다는 것, 심지어 배우로서 신뢰도가 낮은 설현이 캐스팅 됐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원신연 감독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AOA라는 그룹 자체를 몰랐던 원 감독에게 설현은 고정된 이미지가 없는 ‘새 얼굴’이었으니까. 편견 없는 원 감독은 김설현이라는 새로운 배우를 발굴해냈다.

“제 세계에만 빠져 살다보니 아이돌 문화를 잘 몰라요. 어느날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우연히 한 친구를 봤어요. 예쁘고 매력적인 것을 떠나 되게 궁금한 얼굴이었죠. 의아할 정도로 정말 솔직하더라고요. 빛이 났죠. ‘강남 1970’을 보고 나서야 그 친구의 이름이 설현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 전까지는 AOA라는 그룹도 몰랐고 설현이 가수인 줄도 몰랐어요(웃음). 한 번 만나보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보냈고 미팅이 성사됐죠. 설현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은희구나’ 확신했어요.”

이를 시작으로 원 감독의 ‘설현 예찬론’이 이어졌다. 설현의 태도와 연기 열정을 높이 평가하던 그는 다음 작품에서도 재회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또 다른 아이돌과의 협업을 바라기도 했다. 설현과 원 감독이 서로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설현은 아직 보여주지 않은 향기가 많은 배우예요. 단단한 심성이 나무 같기도 하죠. 배우에 대한 열망, 연기에 대한 욕심이 크더라고요. 자신을 비우고 새롭게 캐릭터를 채우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았어요. 순발력도 좋고요. 입체적인 은희를 잘 표현해줬어요. 대중에 소비되는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정말 다른 친구예요. 보물 같은 친구죠. 앞으로 만나는 감독들과 소통만 잘 되면 감독에게도 설현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저도 설현과 또 만나고 싶고요. 다른 아이돌 배우도 관심을 두고 문을 열어두고 있어요. 행복한 만남이 될 것 같네요.”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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