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토크②] 김미경 “죽을 때까지 진심으로 연기하고 싶다”

입력 2017-12-20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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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테랑 토크①에서 이어집니다.

1984년 극단 연우무대의 연극 ‘한씨연대기’로 배우로 나선 김미경은 10여 년간 연극무대에 올랐다. 처음부터 배우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렸을 적 꿈은 운동선수였지만 어머니의 결사반대로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후에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 미술과 무용을 해봤지만 인생을 걸고 할 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성격상 직장인은 할 수가 없어요. 가만히 앉아서 일은 못하겠더라고요. 뭘 할지 고민하다가 아프리카에 가서 살까도 고민했었어요. 그렇게 있다가 23살이 되던 해에 아는 선배가 무작정 대학로에 끌고 가서 연극 한 편을 보여준다고 하더라고요. 그 때 양희경, 문성근, 박용수, 오인두 선배를 봤어요. 그 때 그 선배들이 하는 연극을 보고 머리 한 대를 망치로 ‘꽝’맞은 기분이었어요. 우리 때만 해도 외국작품을 연극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연우무대는 우리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니 너무 신선했어요.”

공연이 끝나고 선배의 소개로 연출자를 만났고 경험이 아주 없는 김미경은 “내일부터 단원으로 나와”라는 말을 듣고 그 다음날부터 막내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로 곳곳에 공연 포스터를 붙이는 일부터 문의전화를 받고 극장을 청소 등을 했고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는 책상에 포스터를 놓고 프로그램 북을 놓고 팔았다. 공연이 시작되면 극장 맨 끝에서 선배들의 연기를 매일 보면서 대본을 통째로 외워버렸다. 그러던 중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무대 위에 다섯 명이 필요한데 여배우 한 명이 결혼을 해서 공연을 할 수가 없게 됐다. 지방공연도 돌아야 했기 때문에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극단에서 배우를 뽑는 오디션을 진행했었다”라며 “그 때 문성근 선배가 ‘미경이 한 번 시켜보자’고 했고 얼떨결에 오디션을 봤다. 대본은 이미 다 외운 상태여서 김석만 연출이 ‘너 내일부터 올라가’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날벼락이 떨어졌지. 하하. 정말 죽기 살기로 무대에 올랐어요. 정말 지금 생각하면 간도 크다. 하하. 1인 13역을 했으니까. 그렇게 4월부터 9월까지 그 공연을 했어요. 속으로 ‘난 쫓겨나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극단에서 바로 다음 작품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싫지가 않았어요. 연습 때는 ‘나 왜 이렇게 못하지?’라며 정신없이 따라하지만 조금씩 알게 되는 무대, 연기에 대한 느낌이 좋았어요. 그리고 그 마음이 점점 커지고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됐고 두려움 없이 무대에 설 수 있었죠.”

하지만 잠시 공백기를 가져야 했던 때도 있었다. 1995년 예쁜 딸을 낳은 김미경은 육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배우의 꿈을 내려놨다. 처음에는 출산을 하면 바로 무대로 복귀할 생각이었다. 친정어머니도 기꺼이 손녀를 돌봐주겠다고 하셨던 터였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의 예쁜 눈망울을 보며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울던 아이가 ‘아가야’라는 내 목소리를 들으니 울음을 딱 그치더라. 순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아이를 떼놓고 연기를 하려고 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배우를 관두기로 결심했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던 중 ‘모래시계’의 송지나 작가를 만났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다시 연기를 해볼까 한다”라고 말하자 송 작가는 “그 때 되면 누가 널 받아줘. 오래 쉬면 아무도 안 찾아. 잃어버린 감각은 어떻게 찾을 거야”라며 들이 내민 대본이 ‘카이스트’(1999)였다.

“육아에 전념했지만 연기에 대한 갈증은 꾸준히 있었어요. 공연 보러 오라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공연장에 가면 연기가 너무 하고 싶을까봐 극장 근처에는 발도 안 디뎠어요. 그러던 중 만난 사람이 송지나 작가였는데 ‘일주일에 하루만 나와서 촬영해. 방송 메커니즘이라도 익혀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연기를 시작했는데 카메라가 앞에 있고 하니 영 적응을 못하겠더라고요. 연기도 영 어색하게 한 것 같아 다시는 못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30년을 하게 됐어요.”

브라운관에 진출을 하면서 연기에 대한 재미, 용기를 갖게 해준 사람은 故 김종학 PD였다. 그는 ‘대망’을 촬영했을 당시를 떠올렸다. 김미경은 “드라마는 카메라 안에 갇혀서 연기한다는 생각이 강했을 때인데 고 김종학 감독이 그런 나를 자유롭게 해줬다”라며 “그냥 나보고 알아서 하라며 일종의 날개를 달아줬다. 그래서 정말 즐겼다. 망아지처럼 뛰어도 다녔다. 하하. 그러다가 드라마 연기에 감을 찾았던 것 같아요.”

‘카이스트’를 시작으로 ‘대망’, ‘상두야 학교가자’, ‘태왕사신기’, ‘며느리 전성시대’, ‘태양의 여자’, ‘성균관 스캔들’, ‘동안미녀’. ‘골든타임’, ‘너의 목소리가 들려’, ‘주군의 태양’, ‘상속자들’, ‘괜찮아, 사랑이야’, ‘힐러’, ‘슈퍼 대디 열’, ‘용팔이’, ‘또! 오해영’, ‘20세기 소년소녀’, ‘고백부부’ 등 수많은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시청자들에게 모습을 내비쳤다.


김미경은 30년간 연기자로 살아오며 자신이 잘한 일은 그다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재미있어서 시작을 했고 나름 굴곡도 많았다. 나름 잘 한 게 있다면 크고 작은 역할을 따지지 않고 연기했다는 것? 분량의 많고 적음을 떠나 연기를 하는 건 연기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연기했던 인물들은 내 공부가 됐고 지금의 내 연기 자산이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연기는 아직도 어려운 일이다. 연기는 진심을 다하는 일이 아닐까. 그런데 이 진심이라는 것의 끝은 어디일지 모르겠다. 내가 마음을 다해 연기를 하고 있나 자가진단을 하기도 한다”라고 덧붙였다.

“정말 단적인 예로, 드라마는 처음 보는 사람의 따귀를 때리기도 하고, 뽀뽀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어쩔 수 없지만, 배우로서 너무 아쉽죠. 연기라는 게 서로 교감을 하는 건데 뭔가 내 연기가 전달이 되지 않은 채 주고 받는다는 기분이 들면 가끔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라는 기분이 들 때가 있죠. 스스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아쉬우니까요. 그런 진심,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앞으로도 그는 진심을 다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죽을 때까지 연기할 거니까요.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믿어요. 어떤 역할이든 정직하게 해 내는 게 배우가 할 일이잖아요. 매번 어려움에 봉착하지만 최선을 다해 하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 ‘진심’을 보여주는 연기자가 되는 게 꿈이에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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