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지영기자의쫄깃한수다]죽음에대한공포를이기는법

입력 2008-02-12 09:2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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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암 환자에게 의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의연하게 받아들이세요.” “어떻게요?”(환자) “하던 대로 친구도 만나고….”(의사) 의연하라고? 말은 참 ‘쿨∼’하다. 과연 자신의 일이면 의연할 수 있을까. 독일 영화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상영 중)의 한 장면이다. 췌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자 막스는 물론 의연할 수 없었다. 홧김에 돈과 차를 훔쳐 질주하다 사고로 엠마의 농장에 오고, 둘은 우여곡절 끝에 사랑에 빠진다. 뻔한 줄 알았던 이 영화는 삶과 행복, 무엇보다 죽음에 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또 ‘허걱’할 만한 결말도 있다. 영화는 죽음을 앞둔 막스와 죽음을 대하는 엠마의 심리를 상세하게 보여 준다. 농장을 하는 엠마는 돼지를 특이하게 도살한다. 사랑한다고 말하며 안아 주고 키스해 주는 동시에 목을 순식간에 따고는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며 계속 입을 맞춘다. 어릴 적 할아버지가 돼지 목에 줄을 매달아 끌어내면 죽음을 예감한 돼지가 끔찍하게 울어 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엠마의 돼지는 신기하게도 편안하게 죽는다. 엠마는 알고 있었다.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엠마의 돼지처럼 두려움을 모르는 상태에서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불치병 환자들은 죽음을 예상할 수밖에 없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대사처럼, ‘희망은 버리고 힘을 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스위스 출신의 심리학자 엘리자베트 퀴블러로스에 따르면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대략 다섯 단계를 거친다. △자기의 병을 ‘부정’하다가 △“왜 하필 나야?” 하며 ‘분노’하고 △“조금만 더 살게 해 주면 착하게 살겠다”며 ‘타협’을 시도하다가 △증상이 심해지면서 극도로 ‘우울’해지고 △결국 죽음을 ‘수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건양대 의대 강영우(한국호스피스협회 회장) 교수는 “많은 사람이 ‘부정’과 ‘분노’의 단계에서 사망한다”며 “신앙심이 깊거나 가족 관계가 좋을수록 죽음을 잘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편안한 죽음의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는 죽음에 대해 알기.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해 보자. 그곳에 대해 준비를 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다를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누군가 함께해 주는 것이다. 호스피스들의 역할은 ‘부정’ 단계의 환자를 ‘수용’으로 이끌어 주는 일인데 그 노하우는 대단한 게 아니다. 그냥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는 거다. 사람은 외로우면 더 두려워하니까. 영화에서 죽음을 앞두고 극단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던 막스는 말한다. “사신(死神)과 거래를 했어…. 당신과 한 번 더 자는 거와 내 남은 며칠을 바꾸자고.” 그리고 둘은 들판에서 옷을 훌훌 벗고 사랑을 나눈다. ‘아파서 토하고 난리가 났는데도 제정신일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뜨겁게 위로받고 싶은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죽음보다 무서운 두려움을 이겨 내는 힘은 ‘위로’였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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