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피플]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서원선소믈리에

입력 2009-01-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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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500cc에도취하는데와인은하루1000종도거뜬”
와인을 잘 모르는 데 추천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청받는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아마도 스트레스에 미쳐 버릴지 모른다. 밀레니엄서울힐튼 호텔 프렌치 레스토랑 ‘시즌스’의 서원선 소믈리에에게 와인은 처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공고를 졸업하고 1994년 이 호텔에 입사한 그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일폰테’에서 일하게 됐는데 유럽 손님이 많은 이곳에서 다른 식당과는 다른 풍경을 발견했다. 식사에 무조건 와인을 곁들이는 문화다. 수프만 먹을 때도 와인을 마시는 유럽인들은 주문 받으러 온 그에게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요구했다. 선배들의 조언으로 화이트와 레드 와인 각각 2개를 달달 외워 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밑천이 금방 떨어지는 법.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998년부터 와인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와인을 혼자 책만 보고 공부해서는 모르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카베르네 소비뇽은 무슨 향이 난다는데, 실제로는 어떤 지 알 수 없잖아요. ” 2000년 호텔은 와인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그에게 ‘보르도와인아카데미’에서 교육 받도록 권유했다. 3개월 코스를 마친 뒤 그는 와인에 푹 빠져버렸다. 맥주는 500cc만 마셔도 취할 정도로 주량이 약했지만 각종 와인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하면서 와인을 익히기 시작했다. “한달에 8일 휴일을 받는 데 휴가까지 쓰면 10일을 쉴 수도 있어요. 그런데 하루만 쉬고 나머지 휴일에는 와인 행사와 모임을 다녔어요. 초등학교 4학년짜리 아들이 아빠 얼굴 보고 싶다고 할 정도죠. 평일에는 오전 9시 집에서 나와 새벽 1시가 돼야 집에 들어가고, 휴일에도 마찬가지니까요. 와인 엑스포를 다니는 게 너무 좋았어요. 가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에도 1000종의 와인을 마시는 데, 보통 삼키지 않고 다시 뱉잖아요. 그런데 저는 삼키지 않고는 알 수 없어 80%는 다 삼켰어요. 완전히 와인에 미쳤죠.” 2005년 그는 프랑스 산지로 7일 간의 일정으로 떠났다.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하루 평균 4곳 이상의 와이너리를 찾아 다녔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지는 타이트한 일정에 몸은 녹초가 됐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5대 샤토는 다 돌았어요. 옆에 오존, 안젤루스 등에도 갔고요. 오후 5시면 일정이 끝났지만 해가 기니까 남은 시간엔 다른 샤토를 찾아가서 또 와인을 테이스팅했죠. 한번은 지네스테 사무실에 가서 테이스팅 할 기회가 있었는데 하프 보틀 80병이 깔려 있어, 그걸 다 시음하고 나니 또 옆방으로 이동시켜 수십 병의 와인을 시음하도록 하더라고요. 이가 정말 시꺼멓게 되고 얼얼할 정도로 했던 것 같아요. 밤에 숙소로 돌아와서도 함께 간 사람들과 또 와인을 마셨고요.” 2006년 호주와 뉴질랜드 와이너리를 경험한 그는 2007년에는 10일 일정으로 다시 보르도, 상파뉴, 부르고뉴 지역 와이너리를 찾으면서 더욱 와인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그 결과 지난해 호텔에서 정식으로 소믈리에라는 타이틀을 부여받았고, 호텔 내 식음료 매장 직원들을 대상으로 와인 교육도 시작했다. “와인은 정말 혼자서 배우기 힘들잖아요. 손님이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 누구나 똑같이 설명할 수 있는 테이스팅 매뉴얼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교육을 하고, 누가 제안을 하더라고 정확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1기 교육을 마쳤고, 올해는 식음료 매장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와인을 높은 사람이 마시거나 즐기는 걸로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비싼 와인을 좋게 얘기하는 문화는 잘못됐다는 게 신념이다. 그는 가장 감명 깊게 마신 와인으로 대형마트에서 8000원만 주면 살 수 있는 ‘그린타워’를 꼽았다. “이사하는 날이었는데 갑자기 와인을 마시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마트에서 산 그린타워를 세수 대야에 얼음 풀어 넣어 뒀다가 이삿짐을 나르고 난 후 땀을 뻘뻘 흘린 상태에서 마셨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좋은 와인이 맛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죠. 하지만 그 상황에서 어떤 와인을 마시느냐 하는 선택이 중요한 것 같아요. 와인의 매력은 다양함과 복잡함입니다. 계속 생각하게 만들고, 마시게 하죠.” 글·사진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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