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 캐스팅의 이면 下] “꿈 이용한 돈벌이 그만”…시민들이 나섰다

입력 2019-07-02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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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단체들 제도 개선 등 적극 대처
한연노도 미성년 조합원 보호 노력


아역 연기자 지망생들을 상대로 한 일부 기획사들의 사기 행각은 방송가의 ‘고질병’으로 취급돼 왔다.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이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탓에 근본적인 근절 대책조차 마련하지 못해왔다. 이에 인권단체와 연기자노조 등이 대처에 나서고 있다.

아역 연기자 지망생 K양(14)의 어머니는 작년 가을 드라마 오디션을 연결해준 한 웹드라마 감독으로부터 자녀의 연기 교육비를 사기당했다. 벌써 세 번째다. 그는 “연기를 향한 딸의 열정이 대단해 다양한 활동을 지원했다”며 “하지만 번번이 사기를 당하자 아이가 ‘나 때문인 것 같다’며 자책했다”고 털어놨다. “자꾸만 자존감이 낮아진다”고 호소한 K양은 결국 최근 연기를 그만두고 학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전국출연자노동조합은 이 같은 피해 사례만 1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배윤환 사무국장은 “전속계약을 빌미로 한 금전 요구, 허위 PPL(간접광고) 비용 청구, 제작사 접대비 등까지 다양하다”면서 “피해 금액만 어림잡아 수억 원대를 훌쩍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논란이 된 기획사는 버젓이 활동 중이다. 명의만 빌려주는 이른바 ‘바지사장’을 대표로 앉히고 사업자등록증만 바꾸면 덜미를 잡힐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도적 보호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은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기 힘들다. 작년 10월 대법원에서 탤런트와 성우 등 방송연기자들을 ‘근로자’로 인정하는 판례가 나왔지만, 아역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한연노) 송창곤 대외협력국장은 “노동청 접수 자체가 힘든 상황”이라며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부처에도 해당 사건을 맡을 부서조차 마땅치 않다”고 토로했다.

이에 인권단체들이 적극적인 대처에 나섰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진재연 사무국장은 “지난달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의 노동 실태조사에 착수했다”며 “이를 바탕으로 제도 개선에 관련된 고민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연노도 “작년부터 미성년 연기자를 조합원으로 받고 있다. 이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침묵을 강요당했던 부모들도 변화하고 있다. 최근 관련 범죄를 저지른 일당이 검거되는 등 각종 피해 사례가 수면 위로 오른 덕분이다. 배윤환 사무국장은 “아이가 피해를 입을까 두렵다며 사태를 외면했던 부모들도 관련 보도가 이어진 후 피해 사례 제보에 동참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내는 부모가 많아질수록 인식과 제도 개선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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