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민우혁, ‘9회말 2아웃’이라는 절망에서 찾은 ‘배우’라는 희망

입력 2015-07-28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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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 민우혁은 “연예인 야구단 구단주인 이승엽 형님이 주신 모자 쓰고 공연 중이에요.영광이죠”라고 말했다.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키 187cm의 훤칠한 키, 또렷한 이목구비의 잘생긴 얼굴. 말이라도 걸면 생긋 웃으며 꽃미남 미소만을 발산하고 유유히 사라질 것 같은 느낌까지, 마치 동화책에서 본 백마 탄 왕자님이라도 튀어나온 것 같다. 뮤지컬배우 민우혁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꽃미소와 함께 입을 여는 순간 ‘언니’라 부르고 싶을 만큼의 수다가 시작된다. 실제로 주변인들에게 ‘언니’, ‘아줌마’ 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그다. 오죽하면 “인터뷰에선 수다 떨지 말고 필요한 답변을 하세요”라는 아내의 문자까지 받았다.

하지만 수다만큼 속 깊은 대화가 어디 있을까. 작품이야기부터 그의 인생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들을 수 있었다. 현재 민우혁은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이하‘너빛속’)’에서 불운의 야구천재 김건덕으로 열연하고 있다. ‘너빛속’은 1994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이승엽과 김건덕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투수로서 승승장구하는 김건덕이 갑작스레 겪게 되는 좌절과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성장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민우혁과 김건덕은 참 많이 닮았다. 민우혁 역시 과거 야구선수였고 부상으로 인해 쓰디쓴 좌절을 맛봤다. 그는 “내가 어릴 적 아버지가 야구를 참 좋아하셨다. 그래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야구 선수가 되겠다고 했다. 되게 힘들었지만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춘기가 오면서 노래를 부르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방망이로 야구공을 치는 것보다 방망이를 거꾸로 들고 노래 부르는 게 더 좋았다. 춤 연습이 그렇게나 재미있었다.

“집안 사정이 안 좋은데 저 야구 시킨다고 뒷바라지 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야구를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부상을 입어서 2년간 야구를 하지 못했어요. 대학생이 될 때 프로야구팀에서 함께 연습을 해보자고 제안도 들어왔었는데 또 그 시점에 인대가 거의 끊어지는 부상을 입었어요. 그래서 ‘정말 내 길이 아닌가보다’ 싶었죠.”


야구를 그만둬야겠다는 말은 이미 목구멍까지 찼지만 정작 부모님께 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야구 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 대화를 할 수 없는 환경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부모님을 향한 지극한 마음이 더 컸다. 특히나 그는 인터뷰를 하며 “아버지”라는 말을 참 많이 꺼냈다. 유독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 커 보였다. 민우혁은 “이런 이야기는 처음 꺼내본다”라며 사연을 조심히 털어놨다.

“어렸을 때 제가 식탐이 많아서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혀가 입속으로 말려들어가서요.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에 살아서 병원에도 갈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죽을 뻔한 저를 아버지가 필사적으로 살려내셨어요. 말려들어간 혀를 빼려고 가진 애를 쓰셨죠. 그래서 아버지 손에 상처도 입으셨어요. 그래서 그런가, 아버지에게 늘 좋은 아들이고 싶었어요. 칭찬 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걸 하는 아들이 되고 싶었어요.”

민우혁은 용기 내어 부모님께 말씀드렸고 크게 실망하셨지만 아들의 뜻을 전적으로 지지하셨다. 그렇게 배우 민우혁의 인생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모델로 이 바닥에 들어왔다. 살을 빼고 오라는 말에 한 달 만에 20kg를 감량했다. 모델 일을 하면서 길거리 캐스팅이 돼 잠깐의 가수 생활을 한 뒤 군 복무 후 뮤지컬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오디션을 보게 되면서 예전엔 꿈도 꾸지 못한 일들이 그의 앞에 펼쳐졌다. ‘젊음의 행진’을 시작으로 ‘김종욱 찾기’, ‘풀하우스’, ‘총각네 야채가게’ 등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차근차근 배우의 길을 가서 만난 것이 ‘너빛속’이다. 그에게 ‘야구’가 운명이긴 운명인가 보다. 배우가 되면서까지 이 작품을 만난 것을 보면. 하지만 그때와 지금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감정을 감추지 않는다는 점. 장남이기 때문에, 아버지 때문에 그동안 힘들어도 표정 한 번 찡그린 적이 없던 그가 야구 선수 역할을 하는 배우가 돼 무대에 서서 진솔한 그의 감정을 쏟아놓고 있다.


“누구 앞에서 한 번도 울어본 적도 없는데 연습을 시작하면서부터 눈물이 막 쏟아지는 거예요. 첫 공연 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울음이 터졌고 집에 가는 길에서도 숨을 헐떡이면서 울었어요. 한 번은 너무 울어서 아내가 무슨 일이냐고 놀란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관객에게 그런 감정을 내비친다는 게 참 좋더라고요. 예전엔 참 많은 용기를 내야 했는데 김건덕이자 민우혁으로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좋아요.”

‘김건덕’이라는 인물을 통해 ‘9회말 2아웃’과 같은 인생의 고난과 절망을 거쳐 성장하는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 이 작품을 통해 민우혁은 “현재의 내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 작품을 연습하면서 역동적인 안무와 체력 소모 그리고 강속구 폼 등도 굉장히 중요했지만 좌절에 빠진 삶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건덕에게 무심한 줄만 알았던 아버지가 모아둔 스크랩북과 친구들의 위로 그리고 스스로의 성장까지 마치 ‘빛의 속도’로 생각이 바뀌잖아요. 그 장면이 가장 와 닿았어요. 현재의 내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는 관객들에게도 “희망은 있다”라는 것을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를 통해 느끼고 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살다보면 부딪히는 일도 많잖아요. 그 부딪힘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조금 긍정적으로 바라보신다면 또 다른 탈출구가 생기거나 뭔가 좋은 대안이 생길 거라 생각해요. 김건덕 코치가 뛰는 선수는 아니지만 훌륭한 선수를 양육하는 코치가 되신 것처럼 우리에겐 늘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공연을 보시고 그런 좋은 마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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