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①] “한계 느꼈다”…박보영, ‘도봉순’ 만나고 헤어지며

입력 2017-04-22 1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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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보영이 밝힌 작품 선택의 기준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시나리오(혹은 대본), 두 번째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역할. 괴력의 여성 히어로 ‘도봉순’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은 두 기준을 충족하는 작품이었다. 박보영은 상대 역할도 방송사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초고만 보고 ‘도봉순’을 선택했다.

1년을 훌쩍 넘게 기다렸다. 박보영이 2015년 8월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종영 이후 차기작 ‘도봉순’의 촬영을 시작한 시기는 2016년 11월. 그는 그 사이 개봉한 영화 ‘돌연변이’와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의 홍보 활동에 임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이미 과거 촬영을 마친 영화니 박보영이 현장에 복귀하기까지 간극은 꽤 넓은 셈이다. 아무리 매력적인 작품이어도 배우가 이렇게 오래 작품을 기다리기는 쉽지 않다. 박보영이 ‘오 나의 귀신님’ 이후 쏟아지는 러브콜을 마다하고 ‘도봉순’을 지킨 이유는 뭘까.

“대본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도봉순이 수동적이지도 않고 남자에게 기죽지 않는 캐릭터라서 좋았어요. ‘나도 봉순이처럼 살면 얼마나 재밌을까’ 싶었죠. 초고를 보고 작가님에 대한 믿음을 가졌어요. 사실 초고 속 봉순이는 성격도 더 세고 사투리를 쓰는 캐릭터였는데 작가님이 저에게 맞춰서 수정해주셨어요.”

상대 배우 박형식이 ‘힘쎈여자 도봉순’에 합류하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진전이 없을 시기 박보영은 고민을 거듭했지만 그럼에도 ‘도봉순’을 놓지 않았다.

“뭐, 이전에도 항상 쉽게 들어간 작품은 없었던 걸요. 기다리면서도 초조하진 않았어요. ‘메인을 하기에는 아직 내 역량이 부족한가?’ ‘내 힘이 부족하구나’ 싶었죠. ‘도봉순’은 쉽게 갈 수 있는 다른 작품이 있었음에도 제가 욕심 부린 작품이에요. 잘 돼서 다행이에요. 제가 아직은 운이 좋은가 봐요.”

모계 혈통의 괴력을 지닌 여성 원톱 히어로물 ‘힘쎈여자 도봉순’. 신선한 동시에 낯선 소재이기에 박보영은 “흥행은 내려놨었다”고 털어놨다. 대중 또한 작은 체구의 박보영과 ‘괴력 소녀’의 조합에 우려를 표했다.

“(여주 원톱에) 준비하면서도 부담이 컸어요. 그래도 제가 타이틀롤만 맡은 거지 작품은 다 같이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형식 씨도 메인 남주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다 예전에 제가 했던 고민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는 고민들이죠. 그래도 제가 형식 씨보다 1-2년 먼저 고민했다고 그 모습이 귀여운 거예요. 제가 무슨 말을 할 위치는 아니지만 ‘분량만 많은 거지 다 같이 만들어가는 거야. 그때 그 상황에 최선을 다하면 돼. 걱정하지 마’라고 위로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위로했죠. 제가 든든한 척을 많이 했어요.”

박보영은 ‘도봉순’을 촬영하면서 체력적인 한계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타이틀롤답게 박보영의 분량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극 중 도봉순이 안민혁(박형식)뿐 아니라 인국두(지수)와 가족들, 친구 경심이(박보미), 백탁파 사람들 그리고 범인 김장현(장미관) 등 극의 모든 인물들과 붙기 때문이었다. 박보영은 ‘도봉순’ 촬영 전 개인적으로 운동을 하다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었지만 드라마에 해가 될까봐 알리지 않고 부상 투혼을 펼쳤다. 무사히 촬영을 마친 현재 그는 수술 및 재활을 고려하고 있다.

“분량이 많다보니 촬영할 때마다 첫 신부터 마지막 신까지 거의 대부분 나왔어요. 너무 힘들었죠. 저보다 제작진이 더 많이 고생했어요. 저는 밤샘 촬영을 해도 인사하고 가면 되지만 스태프는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다 해야 하잖아요. 폐차장 촬영 때도 ‘폭발 장면을 먼저 찍을 테니까 좀 자고 와’라고 신경써주셨어요. 저도 ‘내가 빨리 잘 해야 이 분들도 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죠.”


힘든 현장에서도 두 남동생 박형식과 지수를 다독이며 이끈 ‘현실 도봉순’ 박보영. 그렇다면 그는 누구에게 의지했을까. 전석호와 김원해, 특히 백탁파와 아인소프트 개발기획팀 오돌병 팀장(a.k.a. 오돌뼈)를 1인2역 연기한 김원해에게 많이 의지하고 배웠다고 전했다.

“김원해 선배는 선물 같았어요. 선배 덕분에 정말 재밌었죠. 애드리브를 정말 많이 하시더라고요. 선배와 연기할 때는 계산된 연기가 아니라 그 순간 제가 봉순이가 되어서 대화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너무 웃어서 막 울기도 하고 웃음을 못 참아서 제 뺨을 스스로 때리기도 했어요. 오돌뼈 연기를 하는 날에는 촬영장에 오돌뼈 그 자체로 오세요. 카메라 밖에서도 오돌뼈예요. 남자 스태프들 엉덩이를 장난스럽게 때리는가 하면 저에게 ‘어머 이 기지배. 너 화장 잘 먹었다~’고 하기도 하고요.”

선배들과 더불어 이형민 감독도 박보영에게 큰 힘을 준 존재다. 박보영이 ‘내가 잘했나’는 의구심을 느낄 때마다 이 감독은 시원한 ‘오케이’로 심리적인 안정을 줬다. 그럼에도, 연기적인 한계를 맞닥뜨렸다. 박보영은 “감독님과 모니터를 같이 못 보겠더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매 장면이 아쉽고 어려웠어요. 일상 연기를 할 때도 대사와 행동을 같이 하는 연기를 연습하는데도 잘 안 돼요. 액션도 아쉽고요. 눈물 연기도 노하우가 생기긴 했지만 잘 안 되는 날에는 막 스스로에게 화가 나 미칠 것 같더라고요. 예전에는 ‘에라 모르겠다’는 마인드였는데 지금은 ‘잘 할 수 있을까’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자신감도 떨어지고요.”

“자신에게 너무 엄격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박보영은 단호하게 “스스로에게 취하는 건 제일 위험한 일”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한계 안에서 배우는 점도 분명히 있어요. 때로는 ‘나에게 너무 많이 박한건가’ 싶기도 해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나도 나를 사랑했으면 싶은데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제 안 좋은 것을 많이 보게 되고요. 나를 못 믿는 건지…. 연초 계획도 올해는 지난해보다 나를 더 믿고 사랑하는 게 목표였어요.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사랑할 수 있겠죠?”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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