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토크①] 김원해 “‘난타’ 10년, 내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입력 2017-05-17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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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토크①] 김원해 “‘난타’ 10년, 내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누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초심(初心)을 잃어간다. 어떻게 보면 이런 변화는 당연하고 인위적으로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또 자신의 잃어버린 초심을 되찾고자 한다.

하지만 한 번 잃어버린 초심을 되찾기란 쉽지 않다. 굳건한 의지만으로 되찾을 수 없어서 초심이라는 것이 그토록 귀중한 것이다. 그나마 완전히 초심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자신이 시작했던 뿌리를 끝까지 지키는 정도일 것이다.

현재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명품 조연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배우 김원해가 여전히 무대를 지키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10년 넘게 연극 ‘짬뽕’에서 연기를 펼쳐온 그는 “매년 5월은 ‘짬뽕’을 하는 달로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연극 무대가 확실히 에너지가 많이 소비돼요. 그래도 저에게는 연극 무대가 가장 익숙하니까요. 몸의 내구성이 연극을 하는데 최적화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연극에는 NG도 없고 커트도 없이 두 시간 가량을 마음껏 연기할 수 있어요. 그래서 배우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죠. 이렇게 긴 호흡으로 연기할 수 있는 매체가 없잖아요.”

다른 배우들도 말해주었던 ‘연극의 매력’을 감안하더라도 한 작품에 10년 동안 참여하며 연기를 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지금처럼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김원해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상황에서 오로지 ‘연극의 매력’만으로 그가 ‘짬뽕’ 무대에 오르는 이유가 설명되지는 않았다.

“배우는 결국 어쩔 수 없는 광대예요. 그런데 이 광대의 운명이라는 게 세상에 뭔가 기여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결국은 현실과 타협을 하게 돼요. 이번 연극 ‘짬뽕’은 5.18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여기에 참여하면서 제가 오랫동안 사회에 묻어둔 빚을 갚는 느낌이에요.”

이런 이유를 빼더라고 ‘짬뽕’은 김원해에게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배우라는 직업 자체에 회의를 느끼고 모든 것을 놓으려고 했을 때 김원해를 ‘연기하는 사람’으로 남아있게 해 준 작품이기 때문.

“10년 동안 ‘난타’를 했고 뉴욕 브로드웨이에도 진출했었어요.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제 개인적으로는 이뤄놓은 게 하나도 없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브랜드 자체는 엄청 커졌는데 그 안에 배우들은 보이지 않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배우 자체에 대한 회의가 들었어요. 방황도 많이 했고 그 사이에 김밥 집을 운영했죠. 그 시기에 모든 걸 놓아버리려고 했었어요.”

김원해에게 있어 어쩌면 ‘난타’는 애증의 대상인지도 모른다. 10년이라는 시간을 쏟아 동료 배우와 함께 이뤄놓은 최대의 업적인 동시에 ‘배우’ 김원해를 무너뜨릴 뻔 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짬뽕’을 연출한 친구에게서 새벽에 전화가 왔어요. 한참을 저에게 울분을 토해내더라고요. ‘김원해, 배우 아냐? 연기하는 사람 아니냐고!’ 하면서 욕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그 날 그 전화를 받고 굉장히 많이 울었어요. 그 때 일을 계기로 ‘짬뽕’을 함께 하게 됐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꾸역꾸역 힘든 시기를 지나온 김원해이기에 그가 보여주는 연기가 진정성을 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김과장’, ‘힘쎈여자 도봉순’은 물론 영화 ‘히말라야’, ‘아수라’에 이르기까지, 김원해는 지금 그 힘든 시절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예전에 많이 활동 못해서 요새 더 많이 하는 것 아니냐고요? 맞아요. 그게 제일 큰 것 같아요. 워낙 무명 생활이 길었으니까. 모든 배우들이 이런 생각을 할 텐데 일이 없을 때 무슨 영화나 드라마를 보든 ‘날 시켜줬으면 더 잘했을 텐데’라는 착각을 해요 남의 작품을 보면서 자신을 이입하는 건 배우로서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남의 작품에 감정이입만 한 20년 하잖아요? ‘불러만 주면 연기로 다 죽여 버리겠다’는 그런 생각은 안 들어요. 불러주면 감사하고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게 되는 거죠.”

김원해는 꽤 혹독한 무명 시절을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명품 조연’ 소리를 듣기까지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린 셈이다. 그래서 김원해는 지금이 더욱 소중한 동시에 두렵다.

“사람들이 아홉수라는 걸 겪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19살 때는 아무 걱정이 없었어요. 그런데 29살 때는 정망 고민이 많았어요. 한 서른 살쯤 되면 뭐라도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 것도 이뤄져 있는 게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좀 달라요. 제가 생각했던 50대 때의 모습이 있는데 그것보다 좀 더 이뤘어요. ‘조금 덜어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을 때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의 저는 늘 행복하고 감사해요.”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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