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토크①] “마흔넷에 영화 데뷔”…‘악역 전문 광대’ 김병옥의 길

입력 2017-06-14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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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데뷔한 김병옥은 34년차 배우다. 한 해에만 출연작이 영화 서너 편과 드라마 대여섯 편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에도 영화 ‘보안관’이 개봉했고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에 이어 ‘엽기적인 그녀’가 방송 중이다. ‘열일’한 덕분에 이제 작품에서 김병옥을 찾는 것은 꽤나 익숙하다.

그렇기에 더욱 놀라운 점은 김병옥이 충무로와 여의도로 분야를 넓힌 지 1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첫 영화는 ‘클래식’(2003). 20년 동안 묵묵히 무대를 지켰던 김병옥은 영화 ‘올드보이’(2004)를 통해 대중에 눈도장을 찍었다.

“‘올드보이’ 때 마흔 넷이었어요. 그전까지 영화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저에게 관심이 없었어요. 오디션은 많이 봤는데 다 합격이 안 됐죠. ‘어쩌면 죽을 때까지 영화를 못 찍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열심히 연극을 하면서 살았죠. 어느날 당시 ‘올드보이’ 조감독이었던 이계벽 감독이 공연을 보고 박찬욱 감독에게 저를 추천해 준 거예요. 그게 인연이 되면서 이후로도 작품을 만나게 됐죠.”

김병옥은 유해진 정은표 장영남 박희순 등 극단 목화 후배들보다 한참 후 충무로에 데뷔했다. 불혹이 지나 뒤늦게 뗀 발걸음. 힘들지는 않았을까.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힘들더라고요. ‘아직도 연극하냐?’ ‘먹고 살만 한 모양이네?’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했어요. 제가 연극배우라고 말해도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잖아요. 평생 연극을 한 번도 안 보는 분들도 많고요. 무대에서 마음껏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지위도 계급도 어떤 것도 없다는 점은 힘들었어요. 늦게 매체로 넘어왔지만 조금씩 자리매김도 하고 있어서 동료나 후배들이 보기에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저 다 고맙죠. 예순을 앞두고 있는데 늦게 나온 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다 싶어요.”


현재도 무대는 독립영화와 더불어 제작자와 연출자들이 신선한 얼굴을 발굴하고자 눈여겨보는 통로다. 김병옥 또한 연극배우가 재조명 받는 것에 고무적인 입장을 보였다.

“재능을 가진 후배들이 되도록 많이 매체에서 보여졌으면 좋겠어요. 보는 관객과 시청자에게도 좋고 배우 본인에게도 발전적인 기회가 될 수 있으니까요. 좋은 실력을 한쪽에 국한하지 말고 드라마나 영화나 그 어디서든 많이 알리고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제 진실한 바람이에요. 그게 본인에게도 사회적으로도 작품에게도 좋죠.”

김병옥은 3페이지에 달하는 필모그래피를 찬찬히 훑어봤다. 역할의 비중을 떠나 14년 동안 그가 출연한 작품은 약 70편. 정말 쉼 없이 달렸다.

“1년의 휴식도 두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해온 것 같아요. 큰 역할이든 작은 역할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나름대로는 참 숨 가쁘게 해왔네요. 제가 작품을 가릴 입장은 못 되는데다 선택받는 입장이다 보니 웬만하면 하려고 해요. 가장으로서 해결해야할 경제적인 어려움도 많고요. 출연작 작품들을 보면 잘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돌이켜보면 어떤 작품은 안할 수도 있지 않았나 싶어요. 앞으로는 굳이 내가 안 해도 되는 작품인지 아닌지를 많이 생각해야할 것 같아요.”


이토록 솔직했다. 김병옥은 자신의 ‘원동력’으로 가족을 꼽았다. 여기에는 자녀 학비, 결혼 자금, 내집 마련 등 현실적인 고민들이 잇따랐다.

“늦게 왔으니 정말 열심히 해야죠.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입장이 있잖아요. 이사만 열 두 번은 한 것 같아요. 집사람은 힘들어서 더 이상 이사를 못하겠다고 했는데 ‘2~3년만 더 고생해보자’고 했어요. 예순에는 우리 집을 장만하는 게 목표예요.”

가장으로서의 목표와 더불어 배우로서의 목표를 물었다. 여기에도 그는 지극히 현실적인 답변으로 말문을 열었다가 심금을 울리는 명언으로 마무리했다.

“사실 제가 어떤 목표를 정한다고 해도 세상은 내 생각과 무관하잖아요. 생각대로 되지 않죠. 내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어떤 작품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현실은 달라요. 다만,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연기할 거예요.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게 광대의 길인 것 같아요. 가진 것은 없지만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춤을 추라’면 추고 ‘칼을 휘두르라’면 휘두르는 게 제 길이 아닌가 싶어요. 점잖고 예의 바르게 나의 길을 가야죠.”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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