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토크 in BIFF①] 조성하 “부국제, 데뷔 무대이자 제2의 고향”

입력 2017-10-18 10:30:00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가 한창인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바다가 시야를 가득 채우는 한 호텔 라운지에서 영부님을…, 아니 배우 조성하를 만났다. 그는 짧게 자른 흑발과 블랙 수트 차림으로 등장했다. 드라마 ‘구해줘’에서 보여준 백발의 사이비 교주(영부) 백정기는 없었다. 진한 눈빛까지 더해지니 마치 느와르 영화의 주인공 같았다. 창 너머 바다를 잠시 바라보던 그는 인터뷰가 시작되자 부국제와의 오래된 인연부터 돌아봤다.

“부국제에 처음 온 건 영화 데뷔작 ‘미소’(2004)를 통해서 였어요. 그래서인지 부국제에 와서 데뷔한 것 같은 느낌이에요. ‘미소’ 이후 거의 해마다 부국제에 왔는데 그때마다 성장한 모습으로 찾아올 수 있어서 영광이죠. 최근 몇 년은 바빠서 오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오니 좋네요. 해마다 이 시기가 되면 늘 부산국제영화제를 생각해요. 부산은 저에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죠.”

조성하는 영화 ‘타클라마칸’과 함께 제22회 부국제를 찾았다. 저예산 영화지만 주연 배우로서 개막식 레드카펫과 야외무대 인사, 관객과의 대화(GV) 등에 참석하며 작품을 알리는데 힘을 보탰다.

영화 ‘타클라마칸’은 과거에 잘나가던 남자가 한순간의 실수로 나락에 빠지게 된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조성하는 대기업 건설회사에 다녔지만, 지금은 재활용 수거 일을 하는 태식(조성하)을 연기했다. 출연은 영화배우이자 제작자 조선묵 대표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조선묵 대표님은 큰 영화로 성공한 분은 아니에요. 배우 활동도 하면서 작지만 의미 있는 작업을 하는 분이에요. 제가 시간이 났을 때 도와드리고 싶었어요. 작품도 재밌게 읽었고요. 짧은 시간이지만 영화에 참여해서 힘을 주고 싶었어요.”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따른 극장가에서 저예산에 비상업 영화는 빛을 보기 어렵다. 개봉 시기도 미정인 ‘타클라마칸’ 조성하의 출연만으로 주목받았다. 부국제 무대인사에서 환호를 이끌어냈고 공식 상영 또한 모두 매진됐다. 조성하의 힘을 부정할 수 없는 결과다.

“제 인지도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관객 한 분이라도 더 보게 하는 힘이 된다면 감사한 일이죠. 어쩌면 돈을 많이 버는 일만 할 수 있는 것도 좋겠죠. 하지만 그렇게만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관계 맺은 사람들을 돕고 싶을 때도 있고 이익을 내려놓고 돌아볼 때도 있어야죠. 의미가 깊은 작품이라면 재능 기부를 할 수도 있고요. 좋은 작품인데 많은 분이 보지 못하는 한계점과 아쉬움 때문에 선택하지는 쉽지 않지만…. 이렇게 작은 움직임을 주는 작품에 참여할 수 있어서 감사해요.”


조성하는 지난겨울 드라마 ‘THE K2’를 마친 후 2주의 시간을 ‘타클라마칸’과 함께했다. 몇 달에 걸쳐 촬영하는 보통의 작품에 비해 상당히 짧은 기간이다. 적은 예산 때문에 촬영 여건도 좋지 않았다. 재개발 구역의 주택 건물 바닥을 해머로 내리치는 치는 장면은 보기에도 아찔했다. 태식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은 단 한 번의 기회 밖에 없었다고. 열악한 현장에서도 조성하와 제작진은 ‘최선’의 태식을 그려냈다.

“살인 장면은 시간상 해질녘이었고 제작비 여건상 여러 번 찍을 수도 없어서 짧게 찍을 수밖에 없었어요. 심지어 한겨울이었죠. 감정선이 굉장히 중요한 장면인데 원 테이크 형식으로 찍었어요. 다행히 한 번에 오케이 됐죠. 해머는 가짜 망치를 만들 수 없어서 실제 망치로 한 거예요.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상황을 만들어갔어요. 카메라 각도까지 함께 적합하게 잡아냈죠. 위험한 장면이라 주의가 필요했던 장면이에요.”

조성하가 연기한 태식은 사업이 망한 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물이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사는 데도 도통 되는 일이 없다. 지나가는 행인은 신경질을 부리고 가족들은 생활비를 독촉한다. 이혼한 아내까지도 태식을 무시한다. 존중받지 못하는 삶. 그 안에서 울분을 쌓아가던 태식은 어느 날 노래방 도우미 수은(하윤경)과 하룻밤을 보내고 얽히다 살인까지 저지른다. 조성하는 그런 태식을 통해 중년 가장으로서의 애환과 소외된 자들의 어둠을 그려냈다.

“소시민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중년의 가장 태식도 20대 여성 수은도 열심히 사는 이야기예요. 그런 두 사람이 만났는데 아이러니하게 불협화음이 생기죠. ‘왜 이들은 행복해질 수 없는가’라는 물음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아들 딸 세대와 부모 세대가 함께 보고 물음을 공유한다면 서로 이해하고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더 열릴 거예요.

태식의 살인도 영화 내에서의 사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뉴스를 보면 아주 사소한 문제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충격적인 사건이 종종 보도되잖아요. ‘묻지마 살인’ 같은 사고를 미연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사회 안에서 우리가 다함께 고민해볼 문제라고 생각해요.”

조성하는 태식을 통해 배우로서 어떤 평가를 받고 싶을까. 그는 개인적인 평가보다는 사회적인 변화를 꿈꿨다. 배우가 캐릭터로, 작품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바람이었다.

“잘 사는 사회, 따뜻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데 여전히 외롭고 소외된 사람이 많잖아요.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말이 아닌 실천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연기를 잘했다’는 칭찬을 바라기보다는 우리 작품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우리를 돌아볼 기회가 되기를 바라요.”

해운대(부산)|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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