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샌디에이고 코치’ 홍성흔 “다음 목표는 감독입니다”

입력 2017-10-20 05:30:00

대단한 친화력 그리고 열정이다. 홍성흔은 지난 9월 샌디에이고에서 코치 연수 중 정식 코치로 계약을 맺었다. 마이너리그 감독까지 꿈꾸는 홍성흔의 파이팅은 역시 남달랐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어머! 진짜 홍성흔이야!”

19일 오전 서울의 한 영어학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주부 원생들 사이로 기골이 장대한 사내가 한명 등장했다. 다부진 체격에 깔끔하게 차려 입은 옷맵시가 원생들의 시선을 순식간에 집중시켰다. 훈훈한 외모까지 더해 학원생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있는 이 사내는 바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정식 코치’ 홍성흔(41)이었다.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홍성흔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뒤 올해 초 미국으로 코치 연수를 떠났다. 샌디에이고 산하 루키팀에서 연수를 받다 정식 코치로 ‘취업’했다. 낯선 타지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어낸 뒤 일시 귀국한 그를 만났다.


-오랜만이다. ‘맨땅에 헤딩’한다는 심정으로 떠났을 텐데, 골을 넣고 돌아왔다. 자세한 근황을 전해 달라.

“골씩이나 되나(웃음)? 고맙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정식(Formal) 코치로 일하게 됐다. 첫 출발은 인턴코치였는데, 이제는 월급을 받는 구단의 일원이 됐다. 시즌이 끝나 얼마 전에 한국에 들어왔다. 국내에 있는 동안에도 꾸준히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학원을 끊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 시간에 나와 수업을 듣는다.”


-야구장이 아닌 영어학원을 다니는 홍성흔이라….아직은 낯선 게 사실이다.

“미국 현지에서 생활을 해야 하니 영어를 배우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나. 더군다나 이제 내 직업은 선수들을 가르치는 코치다. 타국 선수들을 지도하려면 정확한 문장과 어휘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기초적인 문법이나 어휘에 대해서 반드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 이룰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해 꾸준히 학원을 다니고 있다.”

시즌 종료 후 한국으로 돌아온 홍성흔은 야구장 대신 영어학원으로 출근해 미국에서 감독이 되는 특별한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가장 궁금한 게 있다. 정식 코치 제안은 어떻게 받게 된 것인가.

“지난 9월이었다. 여느 때처럼 인턴코치 일정을 소화하던 중이었다. 구단 관계자가 갑작스레 나를 불러 세우더니 내 향후 계획에 대해 이것저것 묻더라. ‘내년 계획이 뭐냐’, ‘한국에 돌아가냐 아니면 미국에 남느느’ 등 꽤나 자세한 부분을 물어봤다. 미국에 남아 계속 코치직에 도전할 것이라 말하니 깜짝 놀랄만한 말을 꺼냈다. “축하해 홍, 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정식코치가 됐어. 우리와 함께하자”라고 하더라. 너무 깜짝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손발이 막 떨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신인지명을 받았을 때보다 더 기뻤다.”


-보직도 함께 정해졌나.

“구단은 크게 두 가지 역할을 내게 원하고 있다. 배터리 코치 혹은 타격 코치로 일해주기를 원하더라. 감독은 타격 쪽을 맡아줬으면 하는 것 같다. 내년 스프링캠프 미팅에서 최종 결정이 날 것 같다. 올해 인턴코치로 있을 때는 배터리 코치를 메인으로 하고, 타격 쪽을 보조로 맡았다.”


-구단이 어떤 점을 긍정적으로 본 것 같나.

“사실 나 말고도 인턴코치가 두 명 더 있었다. 대만과 일본에서 온 친구들이었는데 모두 통역과 함께 생활했다. 나도 초반에는 두산에서 붙여준 통역과 함께 있었는데, 최종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통역을 곧 돌려보내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영어가 짧으니 야구장에 남들보다 더 일찍 나와서 더 늦게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오전 7시 30분에 시작되면 두 시간 전에 출근해 먼저 일정을 확인했다. 해석과 선수분석 리뷰를 만드는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늦게 퇴근한 이유는 더 단순하다. 일정이 끝난 것인지 아닌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언제 불러줄지 몰라 괜히 가장 늦게까지 야구장에 남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되게 성실하다고 느낀 것 같았다. 또 내가 워낙 파이팅이 넘치지 않나. 적극적인 모습도 좋게 봤다고 하더라.”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차이는 분명 있을 것 같다.

“물론이다. 한국은 아무래도 정서상 코치와 선수들의 지도관계가 수직적이지 않나. 미국은 그런 게 전혀 없다. 수평적인 관계에서 코치가 선수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자기가 뛰어난 지도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선수가 다가와 자문을 구한다. 예를 들어 ‘이렇게 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지금 좋다. 그런데 이렇게 해보면 더 좋을 것 같다’라고 설득력 있게 얘기를 해야 한다. 그렇게 선수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코치만이 계속해서 생존할 수 있다. 선수들이 찾지 않는 코치는 곧바로 잘린다.”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입고 동료들과 기념촬영을 한 순간 역시 특유의 유머러스한 매력이 느껴진다



-결과적으로 보면, 인정을 받은 것 아닌가.

“내 입으로 말하긴 좀 쑥스럽다(웃음). 선수들이 나를 좋아하고 많이 따르긴 한다. 내가 리뷰를 써서 발표하는 시간이 되면 선수들이 전부 다 모인다. 부족한 영어로 애를 써가면서 말하는 게 재밌어 보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또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서 얘기하니 흠칫 놀라더라.”


-본인이 한국에서 쌓아올린 커리어를 지도받는 선수들도 알고 있나.

“전혀 모른다. 또 그 곳에서는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다. 배트플립으로 유명했다는 정도만 알더라(웃음). 나는 도전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런 커리어를 내세우고 싶지 않았다. 밑바닥에서 시작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진심으로 이 일을 사랑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다른 일들은 모두 그 다음 순서였다. 정식코치가 되고 난 후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저 지금 선수들을 가르치고, 함께 뒤섞여 대화하는 게 즐겁다.”


-미국으로 갈 때 코치를 목표로 떠났다. 이제 목표를 이뤘는데, 혹시 다음 목표도 말해 줄 수 있나.

“10년 혹은 더 빠르면 7, 8년 안에 감독을 해보고 싶다. 루키든 더블 에이든 어디서든 상관없다. 바닥부터 도전한 내가 과연 어디까지 올라 갈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 미국에서 지도자를 시작한 이상 지휘봉은 한번 잡아봐야 하지 않겠나. (만약 한국에서 제의가 온다면?) 아직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금은 미국에서 내 목표를 이루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일단은 미국무대에서 감독에 도전하겠다.”


-공교롭게도 한국에 들어와 있는 기간에 두산 후배들이 플레이오프(PO)를 치르고 있다. 혹시 방문할 생각은 없나.

“여러모로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게 가을야구다. 괜히 내가 가서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조용히 가서 인사를 하고 오는 정도는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선배인데, 맛있는 거라도 잔뜩 사들고 가야하지 않겠나. 그게 한국시리즈가 될지 플레이오프가 될 지는 아직 모르겠다. 모두 열심히 뛰는 게 보기 좋더라. 늘 그랬듯 항상 멋진 경기를 해줬으면 한다.”

장은상 기자 awar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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