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토크①] 채시라 “연기 복귀? 시어머니가 재능 아깝다고 재촉하세요”

입력 2017-10-25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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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시라가 공개한 1984년 ‘여학생’ 4월호 표지. 사진|채시라 인스타그램 캡처

1984년 10대 시절 초콜릿 광고를 통해 데뷔한 채시라. 데뷔 33년차인 그는 인생의 3분의2를 연기와 함께 살아온 베테랑 배우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가 배우를 자신의 업으로 받아들인 건 아니다. 발레리나와 외교관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중학생 채시라를 배우로 이끈 건 단 한 장의 사진이었다.

“서점에 갔다가 표지에 실린 올리비아 핫세가 너무 예뻐서 잡지를 구매했었어요. 응모권을 보고 본전이 생각나서 엽서를 보냈죠. 큰 기대 없었는데 제가 당첨됐어요. 호암아트홀에 상품을 찾으러 갔더니 저를 위아래로 훑어보곤 ‘표지 찍자’는 거예요. 거절하고 돌아왔는데 이후로도 계속 집으로 연락이 왔어요. 아버지가 ‘절대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허락하셨어요.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데 추억 삼아서 한 번 해보지 그래’라면서요.”

그렇게 채시라는 1984년 ‘여학생’ 4월호 표지를 장식했다. 이를 계기로 여러 화보와 아이스크림 광고를 연달아 찍었고 운명의 초콜릿 광고를 만났다. 운명을 만나기 직전, 채시라의 학창시절은 어땠을까. 평범한 소녀 채시라는 무용과 영어를 좋아하는 ‘똑 부러진’ 학생이었다.

“중학생 때 TV에 발레리나가 나오면 흉내를 많이 냈어요. 무용에 소질도 있어서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어요. 영어도 좋아했어요. 잘 때도 밥 먹을 때도 영어책만 뚫어져라 보고, 영어 테이프를 반복해 듣곤 했죠. 언어 교육은 듣는 게 먼저잖아요. 반복학습법을 하다 보니 영어 성적도 좋았어요. 활동이 많아지면서 성적은 조금 떨어졌지만 영어와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싶었어요. 영어 선생님이나 외교관이 되고 싶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제 작품이 외국으로 나간 경우도 있으니까 ‘문화 외교’를 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어느 정도의 꿈은 이룬 것 같아요. 하하.”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하이틴 스타로 주목받은 채시라는 1985년 청소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로 연기에 발을 들였다. 이 또한 채시라의 초콜릿 광고를 눈여겨본 PD의 러브콜을 통해 성사됐다. 32년 전 현장을 생생하게 떠올리던 채시라는 당시 자신의 연기에 대해 “로봇 같았다”고 평가했다.

“학예회에서도 연기를 해 본 적이 없었어요. 광고 촬영 때는 잘 웃으니까 문제 없었는데 대사를 외워서 연기하는 건 또 다른 문제잖아요. 걱정을 많이 했는데 PD님이 ‘걱정하지 마라. 다 가르쳐주겠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다독여주셨어요. 당시 대학 입시로 연영과로 고민하던 때라 해보겠노라 다짐했죠.

암기력이 좋다 보니 대사는 잘 외웠어요. 동선도 계속 되뇌면서 연습했죠. 첫 녹화 때 최소한 혼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실수도 안했고요. 데뷔 치고 0점까지는 아니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로봇 같았어요. 하하. 1년 정도 하다 보니까 연기도 늘고 한층 자연스러워졌죠.“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채시라는 ‘샴푸의 요정’ ‘거인’ ‘조선왕조 오백년-대원군’을 거쳐 1991년 인생작 ‘여명의 눈동자’에 캐스팅됐다. ‘여명의 눈동자’는 채시라에게 있어 배우로서의 터닝 포인트. 이후 ‘아들과 딸’ ‘서울의 달’ ‘최승희’ ‘왕과 비’ ‘해신’ ‘천추태후’ ‘다섯 손가락’ 등에 출연했다. 현대극과 시대극 그리고 사극을 넘나들며 누구보다 왕성하게 활동했다.

“저는 배우의 꿈을 가지고 도전한 게 아니라 우연히 발을 디딘 사람이잖아요. 운명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운이 좋았죠. 운명에 순응하며 왔는데 알고 보니 제 천직이었던 거죠. 한 작품 한 작품 끝낼 때마다 제가 한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결과물이 왔고 칭찬도 사랑도 많이 받았어요. 슬럼프나 위기는 딱히 없었어요. 정말 감사하죠. 저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30여 편의 드라마 출연작. 1990년대까지만 해도 채시라는 1년에 한 작품 이상 꾸준히, 성실하게 선보였다. 그러나 가수 겸 사업가 김태욱과 2000년 결혼한 후에는 작품 수가 현저히 줄었다. 배우보다는 아내 엄마 며느리의 삶에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내레이션과 홍보대사 등을 통해 대중문화예술인의 역할은 해왔지만 온전히 ‘배우 채시라’의 드라마는 2015년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마지막. 여전히 팬들은 채시라의 드라마를 그리워하고 있다.

“시어머니도 제 재능이 아깝다고 하세요. ‘육아보다는 활발히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요. 하하. 저는 하나에 몰입하면 완전히 빠지는 스타일이거든요. 예전에 그 대상이 작품이었다면 아이가 생긴 후에는 엄마 역할이 더없이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죠. 절대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잖아요. 푹 빠져 있다 보니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네요. 저는 한 작품을 하더라도 정말 열정을 쏟아서 하고 싶어요. 제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기다리고 있어요.”

→베테랑 토크②로 이어집니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채시라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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