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월드컵, 영상분석, 그리고 정보전쟁

입력 2017-11-14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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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국축구에 영상분석이라는 개념이 처음 도입된 때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이란계 미국인 압신 고트비를 기술분석관(또는 비디오영상분석관)으로 영입해 재미를 톡톡히 봤다.

편집된 영상을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보고는‘이런 기술도 있구나’하고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선수 출신이자 공학도 출신인 고트비는 복잡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는 선수들의 경기모습을 비디오카메라에 담아 컴퓨터로 분석한 뒤 그 정보를 히딩크에게 전달했고, 히딩크는 이를 활용해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했다. 훈련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물론 전술을 설명할 때도 영상을 적극 활용했다.

이런 방식을 처음 접한 태극전사들은 마냥 신기해하면서도 관심을 집중했다. 영상분석은 선수들의 전술 이해도를 높이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결국 영상분석은 대표팀의 전력강화에 도움을 줬고, 고트비는 한국의 4강 진출에 큰 힘을 보탰다는 평가를 받았다.

월드컵 이후 K리그에는 영상분석 열풍이 불었다. 그 덕에 고트비는 수원 삼성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다른 프로구단들도 너나할 것 없이 영상분석시스템에 관심을 가졌다. 선수들의 전술 이해도와 상황 대처능력에 도움을 주기 위해 해외의 다양한 분석 프로그램을 들여와 활용했다.

압신 고트비 전 축구대표팀 비디오영상분석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요즘의 영상분석기술은 첨단 수준이다. 그 영역은 확대됐고, 세밀해졌다. 영상에는 각종 데이터가 가미됐고, 애니메이션 효과도 첨가됐다.

10일 열린 콜롬비아와 평가전에서 한국대표팀의 영상분석이 화제가 됐다.

대표팀은 콜롬비아전을 앞두고 많은 준비를 했다. 신태용호가 출범한 뒤 4경기에서 승리가 없었다는 점은 더 많은 준비를 요구했다. 영상분석도 더 철저했다. 콜롬비아의 최근 5~6경기의 전체 영상을 살폈다. 선수 개인은 물론 수비별, 공격별 등 그룹별 영상도 마련했다.

승리를 향한 절박함이 준비과정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고요한이 중원에서 콜롬비아의 에이스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막아낸 게 영상분석의 효과로 알려지면서 관심은 더해졌다. 특히 스페인 출신의 토니 그란데 기술코치가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를 동원해 승리에 도움을 준 점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란데 코치는 신태용 감독의 전술을 보강해주고, 선수들에게 상대팀 장단점에 조언을 해준 것으로 전해진다.

그 전달이 영상을 활용하면서 효과를 극대화했다고 한다. 간결하고 압축적인 영상과 그란데 코치의 깊이 있는 설명이 시너지효과를 본 것이다. 선수들은 콜롬비아와 평가전을 앞두고 본 영상이 큰 도움을 줬다고 한결같이 만족감을 표시했다.

비디오영상미팅은 세계 어느 나라든 다 한다. 이는 쉽게 말해 상대 팀의 경기장면 영상을 보여주면서 전술을 설명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어떻게, 무엇을, 얼마나 설명하느냐가 중요하다. 비싼 돈을 들여 경험이 풍부한 코치를 영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섣부른 판단인지는 몰라도 지금 그 효과를 서서히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표팀 관계자는 “영상분석을 할 때 우리가 놓쳤던 부분을 새로 합류한 코치들이 챙겨줄 수 있다.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선수들의 이해도를 높이는데도 효과적이다. 그는 “새로 온 경험 풍부한 외국인 코치가 영상을 보면서 전술을 설명할 때 선수들은 아무래도 색다른 느낌을, 또 무게감을 느끼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제 월드컵 본선까지 7개월 남았다. 다음달 본선 조 추첨이 이뤄지면 본격적인 정보 전쟁이 시작된다. 영상분석, 기술분석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것이다. 부탁하고픈 건 축구협회의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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