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제 성폭력 사건’ 반민정 “은폐+압박+캐스팅 제외…지친다” [전문]

입력 2018-11-06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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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조덕제 성폭력 사건’ 반민정 “은폐+압박+캐스팅 제외…지친다”

배우 반민정이 이른바 ‘남배우A(조덕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지치고 버겁지만, 희망을 보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민정은 오늘(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에서 열린 '남배우A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그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아닌, 영화계의 일원으로 발언하고자 한다” 며 “개인으로 영화계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이 자리가 마지막일 것 같다. 지치고, 버겁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만 4년 동안 제 사건이 개인의 성폭력 사건으로, 가십거리의 일종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 잊히지 않도록 노력했다. 제 사건이 영화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그래서 일터에서 성폭력을 당하는 이들이 더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신상을 공개해 발언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민정은 “현재 영화계 내부에서 각종 교육과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계약서 작성 시 노출, 폭력 등에 대한 언급을 명시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비록 크지는 않더라고, 있다는 것이 매우 반갑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을 이어갔다.

또 반민정은 “2015년 4월, 사건이 있던 이후 현장에서 사건에 대한 처리가 제대로 되었다면 굳이 법적 대응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가해자를 하차시키고, 얘기를 들어주던 감독을 믿었고, 소속사 대표를 믿었다. 하지만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면서 “촬영 현장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자 그들은 사실을 은폐하기 바빴으며, 피해자인 저를 압박했다. 촬영 일정도 바꾸거나 알려주지 않으며 지속적인 고통을 안겼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반민정은 “피해자임에도 구설에 올랐다는 이유를 들며 제 캐스팅을 꺼린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솔직히 연기를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배우는 도구가 아닌 인간이다. 사법시스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고, 결과를 끌어냈다. 그런데도 제 자리에서 밀려나고 있다” 고 호소하면서 “그래도 절망보다는 미래의 희망을 보고 싶다.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리고 싶다. 영화계 내부에서 먼저 변해야 한다. 그래야 대중도 변한다. 노동권·인권침해와 성폭력 피해를 외면할 경우 영화계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피해자의 외침에 이제 답변을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민정 입장 전문>

안녕하십니까, 반민정입니다.

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이기보다는, 영화계의 일원으로 발언하고자 합니다. 개인으로 영화계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이 자리가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너무 지쳤고, 이제는 버겁습니다.

만 4년 동안 저는 제 사건이 개인의 성폭력 사건으로, 가십거리의 일종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 잊히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공대위'의 연대를 바탕으로 제 사건이 영화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그래서 일터에서 저처럼 성폭력을 당하는 이들이 더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제 신상을 공개해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영화계 내부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각종 교육과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계약서 작성 시 노출, 폭력 등에 대한 언급을 명시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관련 법안이 발의되거나, 매뉴얼 등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런 변화가, 비록 크지는 않더라도, 있다는 것이 매우 반갑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상대배우의 '직접적인 성폭력'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느라 다른 언급은 가급적 피해 왔습니다. 저는 그동안 가해자가 자신의 성폭력 사건에 활용하려는 목적으로 이재포 등 지인들까지 동원해 만든 '가짜뉴스'를 바로잡는 법적 싸움까지 하느라 만신창이가 되었고, 힘도 다 빠졌습니다. 그래서 그 외의 일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 그 일부를 말하려고 합니다.

2015년 4월, 사건이 있던 이후, 현장에서 사건에 대한 처리가 제대로 되었다면 저는 굳이 법적 대응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때 믿었습니다. 사건 직후 가해자와 삼자대면을 시키고, 가해자를 바로 하차시켰으며, 제 얘기를 들어주던 감독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전속계약을 맺었던 소속사 대표를 믿었습니다. 영화 스태프들과 영화 제작사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이후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촬영 현장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자 그들은 그 사실을 은폐하기 바빴으며, 피해자인 저를 압박했고, 촬영일정도 바꾸거나 알려주지 않으며 지속적인 고통을 안겼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당시에는 그들을 믿었고, 여성주연이었기에 끝까지 촬영을 마쳐야 한다고 생각해 그 몸과 정신으로 촬영을 강행했습니다. 그러다 더 견딜 수가 없어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도 저는 영화 촬영 당시 제가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1심에서 무죄선고가 난 후, 항소심을 준비하며 받게된 자료를 보며 저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저는 제게 직접 섭외전화를 했던 영화 총괄PD로부터 노출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고, 당시 소속사 대표에게도 이 부분을 강조해 소속사 대표와 총괄PD의 계약 체결 후 '노출은 없다'라는 확인문자까지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영화가 드라마 장르의 영화로 신체노출이 없다고 알고 계약을 했으며 촬영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법정에 제출된 영화제작사 대표의 녹취록에서 '현장에서 벗기면 된다'라는 식의 대화가 오갔다는 것을 듣고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 자리에는 당시 제 소속사 대표도 있었다고 합니다.

엄연히 계약서를 쓰고, 노출여부까지 검토했으며, 소속사까지 있었던 주연배우인, 연기경력이 오래된 저도, '현장'에서 제 의사나 계약내용과는 상관없이 노출을 강요받을 수 있던 겁니다.

지금 현실은 성폭력 범죄로 유죄확정판결을 받은 자가 그 이후에도 피해자인 저와, 영화계 자체를 비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에 대해 책임을 묻거나 제지하려는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이 정말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제 영화계가 나서서 변하고 싸워야 합니다. 무명배우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한 영화의 주연을 맡고 계약서까지 썼으며, 소속사까지 존재했던 저도 영화촬영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사건 이후 '현장'의 특수성을 강조하며 이루어졌던 수많은 인권침해와 성폭력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상당수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말하는 피해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감독의 책임 운운하며 가해자에 대한 동정과 옹호를 할 시간에, 영화계 내부에서 반성을 하고 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일말의 희망을 놓지는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젊은 영화인들이 피해자인 저와 연대했으며, 작은 변화이지만 영화계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영화계에서 현재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침묵과 방관이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배우입니다. 물론 이제 이 말을 과거형으로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피해자임에도 구설에 올랐다는 이유를 들며 제 캐스팅을 꺼린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연기를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배우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며, 저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현대사회 구성원입니다. 그래서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 사법시스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를 끌어냈습니다. 그런데도 전 제 자리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개인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더 해야 할까요.

그럼에도 제 사건과 관련해 영화계에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신체노출, 폭력 등 민감한 장면이 들어가는 영화의 경우 배우에게 사전에 그 내용을 설명한 후 계약서에 반영하고, '현장'을 핑계로 자행되던 인권침해 및 성폭력에 대해 영화계 내부에서 피해자 구제와 가해자 징계, 책임자의 책임 범위 확대 등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연기자들 역시 상대배우와 연기에 대한 사전합의를 해야 하며, '연기·애드립'을 핑계로 상대배우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건 배우의 기본입니다. 영화계 내부의 성인지감수성을 제고하기 위해 교육도 지속해야할 것이며, 피해를 입은 후 법적 절차를 밟는 피해자를 위해 지원과 연대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자리에 나서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제 사건의 처리만으로도 힘든 상황에서 저를 외면하는 영화계를 위해 제가 어떤 말을 한들 변화로 이어질 수 있겠느냐는 회의감도 솔직히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절망보다는 미래의 희망을 보고 싶습니다.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리고 싶습니다. 많이 지쳤고 정말 버겁습니다. 제가 왜 싸우는지, 왜 신상을 공개하며 발언하는지, 부디 영화계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좀 알아줬으면 합니다. 영화계 내부에서 먼저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중들도 변합니다. 노동권·인권침해와 성폭력 피해를 외면할 경우 영화계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피해자의 외침에 이제 답변을 주십시오.동아닷컴 이슬비 기자 misty8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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