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생일’ 설경구 “사명감으로 출연NO, 실제론 잔소리 안하는 아빠”

입력 2019-04-02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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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인터뷰] ‘생일’ 설경구 “사명감으로 출연NO, 실제론 잔소리 안하는 아빠”

영화 ‘생일’ 속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감정이 지나치게 담백해서 당황스러웠다. 그런 아버지 정일을 연기한 배우 설경구도 “나도 처음엔 당황했다”고 슬픔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배회하는 캐릭터를 만난 소감을 전했다.

“정일이가 남의 자식 보는 듯이 아들의 죽음을 대하잖아요. 처음엔 당황했지만 영화가 지녀야할 기능적인 장치라고 생각해요. 정일은 뒷모습을 통해서 관객들이 영화를 보게 하기 위한 장치요. 이야기에 훅 들어가지 말고, 주변에서부터 정일과 함께 들어가보자는 뜻이죠. 그런 점에서 정일은 관찰자고, 당사자고, 관객 같은 역할이에요.”

가장으로서 돈을 벌기 위해 외국에서 일을 하다가 뒤늦게 가족에게 돌아온 정일. 설경구는 정일의 감정을 그리움과 후회라는 단어로 설명, “죄책감을 안고 가족에게 돌아온 인물이다. 감정 표현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라는 말에 잘 맞아 떨어지는 사람”이라며 “감정을 꾹꾹 억누르려고 했었다”고 연기 포인트를 이야기했다.

연기하면서는 감정을 억눌렀지만 관객 입장에서 영화를 볼 때는 많이 울었다. 설경구는 “비겁하게 집에서 끊어가면서 봤다”며 ‘생일’의 하이라이트인 롱테이크 생일 모임 장면을 언급했다.

“당시 50명이 넘는 배우들과 롱케이크식으로 촬영을 하면서 엄청난 힘을 느꼈어요. 50여 명이 한 사람처럼 움직이는 것 같은 엄청난 몰입감이요. 잊을 수가 없고 정말 고마웠죠. 그 현장의 느낌이 정말 강렬했어요.”


그러면서 “나는 슬픔을 외면할 줄도, 정면 돌파할 줄도 모른다. 그냥 받아들인다”고 정일과는 다른 실제의 설경구를 소개했다. 덧붙여 실제로도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하는 배우이기에 집에선 어떤 아빠인지도 묻자 그는 “나는 놀아주는 법을 잘 모르는 아빠다. 우리 아버지가 나랑 잘 안 놀아줬었다”며 “하지만 잔소리는 안 한다. 자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준다”라고 답했다.

“저는 슬픔을 피하는 방법도 모르고, 돌파하는 방법도 몰라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둡니다. 슬픔을 받아들이는 걸까요? 정일 캐릭터는 이전에 제가 연기했던 아버지 역할과는 달랐어요. 예전에는 늘 당사자였고 흥분하기 일쑤였는데, 아까 말했듯이 정일은 당사자이자 관찰자거든요. 저는 온전히 배우의 시각으로 이 영화, 이 캐릭터와 함께 하기로 한 거예요.”

배우의 시각. ‘생일’은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개봉 전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영화이기도 하다.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혹은 상처를 위로하기 위해 시인은 시를 썼을 테고, 가수는 노래를 불렀을 테고, 그래서 배우 설경구는 연기를 했을 뿐이다.

“사명감, 의무감 때문에 ‘생일’에 출연한 것은 아니에요. 참사 후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출연한 것도 아니고요. 확대하면 그 가족들, 우리 이웃이지 않나요? 보편적인 시각에서 보면 우리의 이웃 이야기를 다룬 영화예요. 담백한데 많은 이야기를 포용하고 있었고 어떤 감정도 강요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특히 “여러 의견을 존중한다. 나 역시 4월이 되면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노란 리본으로 바꾸며 가끔 날짜가 헷갈리면 굉장히 미안해한다. ‘생일’을 찍었지만 나도 예전처럼 똑같이 살아가지 않겠나”라며 “감독님의 말이 가슴에 닿았다. ‘위로를 하는데 시기는 문제되지 않는다’는 게 중요하다”라고 ‘생일’에 담긴 의미를 전했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공격하는 사람 등 다양할 거예요. 하지만 가장 무서운 건 잊히는 것이겠죠. ‘생일’이 큰 역할을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개봉하더라도 저를 포함해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고, 잊을 사람은 잊을 거예요. 하지만 특정한 프레임 안에 넣을 영화는 결코 아니고, 작은 위로 한마디 전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최대한 많은 분들을 ‘생일’ 모임에 초대하고 싶어요. 우리는 같은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있잖아요. 저는 위안 받으면서 촬영을 했고, 그 마음이 관객들에게도 전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영화 ‘생일’은 2014년 4월 16일 세상을 떠난 아들의 생일날, 남겨진 이들이 서로가 간직한 기억을 함께 나누는 이야기다. 설경구, 전도연 등이 출연하며 4월 3일 개봉된다.

동아닷컴 전효진 기자 jhj@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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