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안성기 “62년 연기 인생, ‘사자’가 새 원동력이 됐죠”

입력 2019-07-26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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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에서 ‘게릴라 데이트’를 하는데 중학생들이 날 보고 ‘김상중’ 아니냐고 하더라고. 학생들이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TV나 영화를 잘 안 보나 생각하고 있어요. 하하. 세대가 다르니 나를 모를 수 있기도 하겠죠. 그럼에도 나로선 재미난 충격이었다고 할까요? 내가 더 잘해야겠어요.”

배우 안성기는 웃으며 말했다. ‘국민배우’로 살아온 지 62년. 그런 그에게는 이런 경험은 적잖은 충격일 수도 있겠지만 섭섭함보다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 크다. 이러한 점은 인터뷰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안성기는 배우로서 여전히 ‘도전’과 ‘열정’을 품고 있었다. 여전히 촬영 현장은 그의 삶에 즐거움이고 ‘로버트 드 니로’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보고 있노라면 자신은 여전히 걸어야 할 길이 있다며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사자’는 안성기에게 있어서 새로운 영역이자 도전이었다. 오컬트와 영웅서사를 옮겨다놓은 ‘사자’에서 안성기는 악을 쫓는 구마사제 ‘안 신부’ 역을 맡았다. 안성기는 “이런 스타일의 작품은 처음이다. 내 활동 영역을 넓혔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라며 “참여작이 대부분 감동적이거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다면 ‘사자’의 안 신부는 캐릭터가 강하다. 새로운 동력을 얻은 작품이 됐다”라고 말했다.

“최근에 내가 예산이 큰 영화는 잘 안 해서 아까 ‘김상중’씨 같은 사건이 생기게 되고.(웃음) 대부분 독립영화에 참여를 많이 했죠. 작은 영화에 참여할 기회가 많이 생기고 의미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긴장시키게 하는 영화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죠. 게다가 김주환 감독이 나를 생각하고 ‘안 신부’를 썼다고 하니 그 마음도 고마웠고요.”


안성기가 맡은 ‘안 신부’는 바티칸에서 온 구마 사제로 한국에 숨어든 강력한 악의 ‘검은 주교’를 찾으러 서울에 왔다. 안 신부는 검은 주교가 씌운 악령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용후(박서준 분)와 함께 악을 쫓아낸다. 극 중 구마의식을 치러야 하기에 안성기는 라틴어부터 부마자들에게 맞아 쓰러지는(?) 액션까지 소화해냈다.

그에게 가장 큰 숙제는 라틴어를 암기하는 것이었다. 기초부터 배우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한국어로 써두고 무조건 외웠다. “라틴어 외우기는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말한 안성기는 이 이야기를 하며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2002)를 회상했다. 그는 “역할 상 피아노를 정말 잘 쳐야했다. 그 때는 왼손을 한 달, 오른손을 한 달, 양손으로 한 달, 그렇게 세 달 동안 피아노를 배웠다. 촬영할 때 NG가 나면 처음부터 다시 연주했다(웃음)”라며 “‘사자’도 마찬가지였다. 라틴어 기도를 하다가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한국 오컬트 무비 대표작인 ‘곡성’, ‘검은 사제들’, ‘사바하’ 등을 보았는지 묻자 그는 “사실 무서운 영화를 잘 못 본다”라며 “집에서 TV 볼 때도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실눈을 뜨고 무서운 게 지나갔는지 볼 정도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제가 예전에 조진웅이 초청해서 ‘해빙’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무서운 영화인줄 몰랐어요. 그냥 앉아서 당했지, 뭐,(웃음) 사실 ‘검은 사제들’에서 강동원이 어떻게 하는지 되게 궁금했어요. 그런데 좀 무서운 것 같아 못 봤죠. 하하. 그래서 안 신부를 연기할 때 라틴어에 감정을 많이 실어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소리 지르고 대들 듯 싸웠죠. 외우기엔 괴로웠지만 라틴어를 연기에 잘 이용한 것 같아요.”


안성기는 ‘사자’로 액션연기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고. 그는 “구마의식을 하려면 부마자와 맞붙어 싸우는 경우도 생길 테니 상대를 물리적인 힘으로 꺾기도 할 것 같았다”라며 “첫 번째 부마자가 나한테 달려올 때 엎어치기라도 해야 싶었는데 무술감독이 그러면 안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냥 맞기만 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근육질 몸매도 감춰야 했던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등을 맞아 생긴 상처를 보는 장면이 있는데 김주환 감독이 내 몸이 너무 좋다고 하더라. 그래서 일부러 등을 구부려 약하게 나오도록 연기했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사실 안성기는 꾸준한 자기관리의 아이콘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하는 습관을 지녔다. 이날 인터뷰 전에도 체육관에서 뛰고 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체중 변화도 별로 없었다고. 그는 “45년 전에 68kg이었고 지금은 72kg정도다. 10년에 1kg 정도가 쪘다. 나잇살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내가 40년이 된 청바지를 아직 갖고 있는데 여전히 잘 맞는다”라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현장에 따라 극심한 체력이 요구가 될 때도 있으니까요. 촬영 자체가 힘들면 화면에서 그대로 드러나요. 연출자가 요구하는 것을 못 따라주면 여러 가지로 좋지 않아요. 그래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가능하게끔 몸을 만들어놓는 것이 중요하죠.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에너지를 잘 유지하는 것은 배우로서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내가 아직도 더 할 수 있다는 여지를 보여주는 거죠. 그렇게 할 수 있는 작품의 폭이 넓어지면 내가 좋아하는 현장에 더 오래있을 수 있잖아요. 체력이 정말 중요해요.”

2019년은 한국영화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62년간 한국영화와 함께 한 안성기는 그야말로 한국영화의 산증인이다. 1957년 아버지의 친구인 김기영 감독 작품 ‘황혼열차’로 데뷔를 하게 된 안성기는 아역배우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영화 ‘10대의 반항’(1959), ‘하녀’(1960) 등에 출연했다. 성인이 돼서는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고래사냥’(1984),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칠수와 만수’(1988), ‘남부군’(1990),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 ‘하얀전쟁’(1992), ‘투캅스’(1993), ‘태백산맥’(1994),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여러 가지 얼굴로 관객들을 찾았다.

또한 2000년대에는 ‘실미도’(2003)로 한국의 첫 천만 관객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후에도 ‘라디오 스타’(2006), ‘화려한 휴가’(2007), ‘페어 러브’(2010), ‘부러진 화살’(2012), ‘신의 한수’ (2014), ‘화장’(2015), ‘사냥’(2016) 등에서 인상적인 역할로 관객들 앞에 나섰다. 60년간 영화인으로 그가 남긴 작품은 약 130편 가까이 된다.


안성기는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 사람들은 영화를 참 좋아했다. 그럼에도 한국영화를 향한 시각이 안 좋았던 이유는 정치적으로 유신체재에 살다보니 검열이 너무 심했다. 주로 계몽영화, 순수 문예영화, 반공 영화, 새마을운동 영화 등이 주를 이뤘고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 다 같이 관람하기엔 부적합한 여성 영화들이 판을 이뤘다”라며 “당시는 영화 본연의 모습을 잃었었다. 참 암울했다”라고 말했다.

“배우로서 제게 의미있는 작품은 ‘바람 불어 좋은 날’이었어요. 시대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잘 담은 영화였죠. 1980년대는 격변의 시대였기에 그게 가능했어요. 그래서 저 역시 그 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많이 선택했고 사회성 있는 작품에 출연을 많이 했죠. 그래서 멜로는 많이 못했죠.(웃음)”

안성기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스크린 쿼터제’라고 언급했다. 그는 “1990년대는 한국영화 점유율이 13~15% 정도였다”라며 “영화인들이 거리에 나와서 목소리를 낸 것은 전 세계적으로 없을 것이다. 그 당시에 반대의견도 많았지만 인정을 많이 받았다. 한미FTA로 인해 ‘스크린 쿼터제’가 깨지긴 했지만 당시에는 한국 영화의 자생력이 있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 영화 점유율이 절반을 넘어서지 않나요? 우리 영화가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생겨서 참 기분이 좋아요. 2000년대는 필름이 디지털화 되면서 적은 자본으로 큰 효과를 이뤄낸 거죠. 젊은 시절, 제가 가장 부러웠던 것이 할리우드 영화 메이킹 필름 보면 슬레이트를 탁 치고 한참 뒤에 ‘액션!’을 외치는 것이었어요. 한국은 필름값이 굉장히 비쌌기 때문에 슬레이트 치는 스태프가 시간이라도 끌면 엄청 욕을 먹었거든요. 이제 한국 영화가 가진 숙제는 좋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 같아요.”

한국 영화계의 큰 선배인 안성기도 사명감을 갖게 됐다고. 더 이상 대세 배우는 아니지만 할리우드에서 꾸준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연기를 하는 이들을 보면 열의가 생긴다고 말했다. 영화 ‘인턴’의 로버트 드 니로를 예를 들며 “그 배우가 43년생인데 아직도 너무 매력적이지 않은가. 나도 10년 정도는 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작품이었다”라고 말했다.

“배우로서 매력이 없어지면 빨리 관둬야한다는 생각을 해요. 스스로 내려놔야죠. 하지만 그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좀 욕심을 부리고 싶네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90세인데 연출을 하면서 연기도 하지 않나요?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영화계에 남아있다는 것이 제겐 희망적입니다. 꾸준히 노력하고 도전해서 세월과는 상관없이 쭉 갈 수 있는 배우가 되길 바라요. 그게 제 스스로의 숙제이기도 하고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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