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자’ 안성기 “라틴어 대사 수두룩…이거 야단났다 싶었죠”

입력 2019-07-31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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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안성기는 영화 ‘사자’를 통해 “젊은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빼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는 “힘들지만 기분은 좋다”고 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어느덧 67세…영화 ‘사자’로 돌아온 국민배우 안성기

통째로 암기! 죽기 살기로 외웠죠
요즘 젊은 관객들은 날 잘 몰라봐
한국영화 100년 중 62년 함께해
더 오래 현장에 남고 싶은 마음뿐


배우 안성기(67)는 매일 아침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연기자가 되고나서 오랫동안 유지한 생활 습관이다. 덕분인지 30대부터 지금까지 몸무게 변화가 거의 없고, 요즘처럼 여름이면 반팔 티셔츠 사이로 드러난 양쪽 팔에서 단단한 근육도 엿보인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웃음) 원시인들은 먹으면 바로 사냥하러 나갔다고 하잖아요. 운동도 비슷해요. 밥 먹는 것과 똑같은 일이에요. 운동을 해야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거든요. 물론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배우가 직업이니 가능해요. 일과 연관됐으니까요.”

운동도 운동이지만, 사실 안성기 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한 배우는 없다. 햇수로 62년에 이르는 연기 경력을 통틀어 개인적인 일로 대중에 실망을 안긴 적이 없다. 늘 깔끔한 모습으로 대중과 소통했고, 왕성한 활동으로 여전히 현역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31일 개봉한 영화 ‘사자’(감독 김주환·제작 키이스트)는 그런 안성기의 새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한동안 저예산 영화 등에 주력해온 그가 오랜만에 여름 시즌을 겨냥한 대작의 주연으로 관객 앞에 나섰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개봉을 준비하는 안성기를 25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세상이 빨리 변해서인지 영화에 대한 생각도 자꾸만 달라진다”는 그는 “변화와 함께 하면서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사자’가 그런 마음을 실천하게 한 작품이라고도 말했다.

영화 ‘사자’ 속 안성기의 모습. 악에 맞서는 구마사제 역이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1년 전 외운 라틴어 대사, 지금도 줄줄

‘사자’의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안성기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규모가 큰 영화구나”였다. 규모부터 떠올린 데는 이유가 있다. “몇 년간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영화를 하다 보니 갈증 비슷한 게 생겼다”며 “젊은 관객과 친근해지고 싶은 마음도 커지던 차였다”고 했다.

“게다가 캐릭터 이름까지 ‘안 신부’잖아요. 감독이 저를 생각하면서 만들었다니까 고맙기도 하고 믿음도 생겼어요. 제가 영화를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무엇이든 전하고자하는 메시지가 있었어요. 요즘엔 많이 다르죠. 장르적인 재미가 때로는 더 중요하기도 하고요.”

‘사자’는 세상을 뒤엎으려는 악령(우도환)에 맞선 구마사제 안 신부와 격투기 선수 용후(박서준)가 벌이는 이야기다. 로마 바티칸에서 파견돼 악령이 깃든 이들에 구마 의식을 행하는 신부를 연기한 안성기는 “모든 게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면서 운명을 건 인물”이라며 “동시에 인간적이면서도 현실적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역할 탓에 극 중 대사의 절반은 라틴어로 소화했다. 구마 의식을 치를 때 마치 주문처럼 라틴어를 쏟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낯선 언어를 익혀야 했지만 정작 촬영장에서 NG 한 번 없이 매 장면을 소화했다. 지난해 여름 영화를 촬영했으니 1년이 지났는데도 지금껏 툭 치면 영화 속 라틴어 대사를 줄줄 내뱉을 정도도 입에 익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선 ‘이거 야단났다’ 싶었죠. 방법이 있나요, 통째로 외울 수밖에. 못 외우면 죽음이니까, 안 하면 배우를 못하니까. 죽기 살기로 하면 다 됩니다. 하하하!”

영화에선 악령에 맞서면서 오싹하고 섬뜩한 상황에 자주 직면하지만 정작 안성기는 ‘무서운 장면’은 단 1초도 볼 수 없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촬영할 땐 프레임 밖의 상황이 보이니까 무섭지 않지만 출연하지 않은 공포영화를 한 장면이라도 보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아 사는 데 불편함을 느낄 정도”라고 했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가 공포영화의 예고편이 나오면 “눈감고 귀까지 막는다”는 이야기를 할 땐 자신도 멋쩍은지 웃음을 터트렸다.

배우 안성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사자’ 덕분에 젊은 팬들 생겼다”

안성기는 젊은 관객과의 소통을 바라고 있다. ‘사자’에 나선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저한테 관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자주 노출되지 않으니까 젊은 관객은 저를 잘 몰라요.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요. 예전엔 저와 맞지 않을 것 같은 역할이나 작품이라도 제안을 받으면 참여하는 뜻에서 할 때도 있었는데 지나보니 결국 내 손해, 영화 손해더라고요. 이젠 답을 내렸습니다. 제 눈에 좋아야, 관객도 좋아해요.”

‘사자’ 개봉과 맞물려 안성기는 각종 시사회부터 무대인사, 방송 출연에 온라인 라이브 토크쇼까지 나서고 있다. “힘들지만 기분 좋다”며 “같이 출연한 박서준, 우도환 덕분에 그 친구들의 팬들이 나까지 잘 챙겨주고 있다”면서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안성기에게 ‘사자’는 여러 모로 새로운 출발이 될 작품이다. 흥행 여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제작진이 후속편을 기획 중인 만큼 안성기 역시 이에 기대를 걸고 있다. “요즘은 ‘유니버스’라고 하지만 나에겐 ‘시리즈’라는 단어가 익숙하다”며 “나이가 자꾸 들지만 영화에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캐릭터라면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5세 때 고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에 출연하면서 연기와 연을 맺은 안성기는 62년간 한 길을 걷고 있다. 올해 한국영화가 100년을 맞았고, 그 시간 가운데 절반 이상을 배우로 살아온 주인공이 바로 안성기다.

“요즘 자주 듣는 말이 ‘100년 중 62년을 그 속에 있었다’는 겁니다. 하하! 제가 언제까지 연기할 수 있을지 모르죠. 다만 오랫동안 현장에 남고 싶어요. 개인적으론 지난 100년간 세계 속의 한국영화로 성장하기까지 훌륭한 영화인들이 있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고 기억하길 바랍니다.”


● 안성기

▲ 1952년 1월1일생
▲ 1957년 영화 ‘황혼열차’ 데뷔
▲ 1960년 영화 ‘하녀’ 아역 등
▲ 군 제대 뒤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로 본격 배우의 길
▲ 1981년 영화 ‘만다라’부터 1986년 ‘겨울나그네’ 1992년 ‘하얀전쟁’ 1993년 ‘투캅스’ 2011년 ‘부러진 화살’ 등 60여 편 주연
▲ 1982년 대종상 남우주연상, 1990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등
▲ 30여 년간 한 브랜드 커피 광고 모델 활동도 유명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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