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럭키 몬스터’ 봉준영 감독 “BIFF 뉴커런츠 후보, 처음엔 안 믿겼죠”

입력 2019-10-11 14: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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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즙기를 파는 다단계 회사를 다니는 도맹수(김도윤 분)은 환청이 들린다. 소리가 들릴 때마다 용각산을 한 번씩 퍼 먹는다. 퇴근하면 히어로물을 보다 잠든 아내를 발견하며 씁쓸해한다. 그렇다고 그가 용기 있어 보이진 않는다. 잠시 쉬기 위해 정자에 앉았다가도 일진이 오면 바로 자리를 비켜주는 소심한 남성이다. 게다가 판매 실적도 썩 좋지 않다. 늘 꼴찌다. 그런데 빚까지 져서 사채업자에게 맞고 협박까지 당한다. 이제는 아내 리아(장진희 분)에게도 해를 가하겠다는 사채업자의 말에 위장이혼까지 하고 만다.

그런데 어느 날 환청에서 숫자가 들린다. 그는 로또를 사게 되고 1등에 당첨되고 만다. 일확천금을 얻은 도맹수는 오로지 아내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드디어 아내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한다. 하지만 곧 이내 아내를 향한 집착과 실망에 사로잡히며 분노하며 폭주를 하게 된다.

24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오른 봉준영 감독의 작품 ‘럭키 몬스터’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한 사람이 ‘한 사건’으로 인해 내재된 폭력성과 집착성이 서서히 드러나고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폭발하며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 작품이다. 평소 사람의 심리에 대해 호기심이 컸던 봉준영은 ‘도맹수’라는 아주 소극적인 남성을 선택해 그의 원초적인 본능과 욕망을 끄집에 스크린으로 펼쳐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 제작 과정으로 ‘럭키 몬스터’를 완성시킨 봉준영 감독은 웃으며 “교수님들께 늘 나는 ‘이상한 학생’이었다. 과제도 철저히 내고 말도 잘 들었는데 ‘넌 참 특이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라며 “하지만 그게 기분 나쁘진 않았다. 이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지 않나. 다양하면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도 탄생하게 됐고”라고 말했다.

Q. 우선,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후보에 오른 소감이 궁금하다.

- 전혀 예상을 하지는 못했다. 뉴커런츠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관객으로서 부산에 온 적은 있지만 제가 연출한 작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올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레드카펫 오른 소감? 내가 오르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더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에 부산국제영화제 측에 인원수를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덕분에 대부분의 배우가 레드카펫에 오를 수 있었다. 참 감사했다.


Q. ‘럭키 몬스터’를 보고 나니, 생각할수록 너무 독특한 영화였다. 이 영화의 출발점이 궁금해지더라.

- 출발점이 상당히 다양했다. 장르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초고에는 납치극, 자작극, 재납치 등 장르적인 특색이 강했다.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도맹수의 심리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됐고. 거기에 ‘뒤틀어 저버린 히어로’를 추가했다. 평소에 사람의 심리에 관심에 많아서 심리 드라마가 된 것 같다.

Q. 주인공의 이름이 도맹수다. 초반은 유약한 초식동물 같지만 나중에는 극도의 맹수가 된다. 그의 이름처럼.

- 아내가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빚을 도저히 갚을 길이 없으니 아내 리아(장진희 분)라도 살려야겠다며 위장이혼을 하지 않나. 그런데 덜컥 로또에 당첨이 돼버리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TV에서 히어로물만 보는 아내에게 자신이 진짜 영웅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고. 적을 물리치고 아내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가장 큰 적이었다면 도맹수가 충분히 폭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헤르츠’(2016)에서도 환청을 듣는 여고생의 이야기를 그렸다. 평소 사운드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소리에 대한 관심이 많다. ‘헤르츠’는 적은 예산으로 장르적인 시도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 여건을 돌파하는 데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사운드’였다.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처음 이런 시도를 해봤다. ‘럭키 몬스터’에서도 도맹수가 꿈에서 깰 때 ‘맹수류’의 사운드를 넣었다.

내게 있어서 ‘사운드’ 효과는 인간의 무의식 혹은 본능을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한 수단인 것 같다. 인간의 심리를 더 깊이 내려가고 싶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소리’인 것 같다.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계속해서 사운드 공부를 더 할 생각이다. 사운드를 이용해 다른 방식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Q. ‘럭키몬스터’가 환청은 이미지도 있다. 배우 박성준(‘럭키 몬스터’역)이 나와 DJ나 MC처럼 나와 환청이 하나의 ‘쇼’인 것처럼 보인다.

- 도맹수는 굉장히 억압된 인물이다. ‘럭키 몬스터’는 도맹수가 감춰온 욕망이나 폭력성이 형상화된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주변인들이 절대 볼 수 없는 도맹수의 모습이랄까. 그 모습을 점점 더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방송의 형태를 지니게 됐다. 처음엔 라디오, 그 다음엔 TV쇼, 그 다음엔 생중계와 같은 형식으로 만들었다.

또 도맹수가 한 번도 갖지 못한 폭력적인 본능을 발현하는 캐릭터라 박성준에겐 보라색 후드티를 입혔다. 어렸을 때 광기에 해당되는 색이 보라색이라고들 말하지 않았나. 그리고 ‘럭키몬스터’의 외형이 중고교 시절, 도맹수를 괴롭히거나 때렸을 것 같은 불량한 학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Q. 도맹수는 환청이 들릴 때면 용각산 가루를 탈탈 털어 넣는다. 실제 효능이 있는 건가? (웃음)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때 인중을 긁는다는 설정도 웃기면서도 독특하더라.

- 용각산이 환청을 잠재워준다는 효능은 없다. (웃음) 자신에게 말을 거는 ‘럭키 몬스터’의 소리를 잠재우는 거다. 이 외에도 이 영화가 시대를 파악하기 어려운 모호한 느낌이 들길 바랐다. 요즘 사람들은 용각산을 잘 안 사먹을 것 같지만 또 생각보다 약국에서 잘 팔린다고 하더라. 뭔가 촌스러운 것 같은데 현시대에도 있는 약을 골랐다. 또 용각산이 하얀 가루이지 않나. 나만의 꿍꿍이를 담아놓기도 했다.

평소에 사람의 심리에 관심이 많아서 손동작 등을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여러 동작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때가 있는데 속마음과 달리 표현하고자 할 때 코를 만지거나 눈동자가 다른 곳으로 가 있다. 그런데 나는 인중을 긁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덕분에 배우가 인중이 새빨개지도록 긁어야 했지만.

Q. 복권이 당첨이 된 후, 도맹수는 집이나 차가 아닌 아내가 먹고 싶어 할 음식을 배달시킨다.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이다.

- 관객 중에 “아내를 굳이 찾아야 돼?”라고 하는 분들도 꽤 있더라. (웃음) 하지만 도맹수는 처음부터 병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아내에게 무척 집착했다. 또 고아원에서 함게 자라 리아 대신 맞기도 하고 리아가 기댈 수 있게 해줬다. 리아는 자기의 열등감을 해소시키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저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게다가 일확천금을 얻어도 돈 쓸 줄을 모르는 거다. 보통 복권에 당첨되면 대부분 부동산이나 자동차를 사러 간다. 하지만 도맹수는 그럴 줄 모르는 거다. 아내가 돌아왔을 때도 근사한 호텔 레스토랑이 아닌 경양식을 하는 가게에 데려가지 않나. 사람이 바로 바뀔 수는 없는 것 같다.


Q. 김도윤, 장진희 등은 어떻게 캐스팅을 하게 됐나.

김도윤은 ‘곡성’의 양이삼 역을 연기하는 것을 보고 바로 전화를 했다. 그 영화를 통해 김도윤을 처음 봤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또 나홍진 감독님이 캐스팅을 했다면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웃음) 도맹수가 분량이 매우 많았고 김도윤이 굉장히 잘 해낼 거라 생각했다. 무작정 소속사로 전화해 시나리오를 보냈고 이틀 뒤에 연락이 와서 캐스팅을 하게 됐다. 장진희는 원래 다른 역을 하기로 돼 있었는데 당시 날 것의 느낌이 나서 ‘리아’역으로 대본 리딩을 했고 바로 리아로 캐스팅했다.

Q. 감독이 된 이유가 있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괴롭지만 재미있고 내가 만든 것을 보고 싶어서 감독 일을 시작했다. 예전부터 어머니가 내가 뭔가를 쓰면 칭찬을 하셨는데 그게 지금 내가 창작을 하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영상’을 선택한 이유는 뭐든지 다 만들 수 있어서다. 사운드도 넣을 수도 있고 여러 효과를 넣어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Q. 늦은 나이에 감독이 되기로 했다.

- 그 동안 실천을 안 한 거다. 하하. 대학졸업을 하고 광고회사에 들어갔다. 나름 창작에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선택한 직업이었지만 내가 주체가 되긴 어렵더라. 그래서 직장을 관두고 2015년에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 들어갔다. 사실 아카데미도 세 번 지원했다가 합격한 것이다. 그 때가 34살이었다. 실제로 영화를 만들다 보니 재미있다. 물론 점점 상업영화를 만들면 창작에 관해 제약이 있을 수 있지만 광고인으로서 경험이 있기에 어렵지 않다. 설득은 정말 잘할 수 있다.(웃음)

Q.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금 대본을 쓰려고 준비 중이다. 스릴러 공포물을 해보고 싶다.

부산|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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