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심장과 자립심, ‘호수의 여왕’ 고진영의 원동력

입력 2019-04-08 1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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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영.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19년 ‘호수의 여왕’은 고진영(24·하이트진로)이었다.

고진영은 8일(한국시간)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 미션힐스 컨트리클럽(파72·6763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019시즌 첫 메이저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총상금 300만 달러·약 34억 원)에서 10언더파 278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전통에 따라 18번 홀(파5) 그린 옆 호수(일명 포피스 폰드)로 자신의 캐디, 매니저와 함께 뛰어들며 생애 첫 ‘메이저 퀸’ 등극의 기쁨을 만끽했다. 또한 우승상금 5억 원을 품어 올 시즌 가장 먼저 총상금 100만 달러 고지를 돌파했고, LPGA 투어 올해의 선수상 포인트에서도 압도적인 1위(123점)를 달리게 됐다.


● 호수의 여왕


우승이 결정된 8일 최종라운드는 사실상 고진영만을 위한 무대였다고 과언이 아니었다. 시종일관 선두를 달린 뒤 구름 관중이 기다리고 있는 18번 홀 그린 위로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올라섰다. 이어 우승을 결정짓는 챔피언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면서 호수의 여왕 대관식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8언더파 단독선두로 최종라운드를 출발한 고진영은 2번 홀(파5)과 5번 홀(파3)에서 버디를 잡으며 순항했다. 파3 8번 홀에서 보기를 범했지만 파5 11번 홀 버디로 이를 만회했다. 위기는 후반 라운드 중반 찾아왔다. 파3 13번 홀과 파4 15번 홀에서 연달아 보기를 기록했다. 13번 홀에서는 티샷이 짧아 투온에 실패했고, 15번 홀에서는 세컨드 샷이 벙커로 빠졌다.

2위 이미향(26·볼빅)에 1타 차로 쫓긴 고진영으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천금 같은 버디가 필요한 상황. 다행히 16번 홀(파4)에서 2m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면서 안정을 찾았다. 이어 17번 홀(파3)을 파로 막은 뒤 18번 홀에서 자신의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확정짓는 버디 퍼트를 홀로 집어넣고 그토록 고대하던 다이빙 세리머니를 펼쳤다.


● 강심장

지난해 미국 진출 후 바로 이듬해 메이저 퀸으로 등극한 고진영이 이처럼 빨리 LPGA 투어에 적응할 수 있던 원동력으로는 우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심장’이 꼽힌다.

승부처에서 더욱 빛나는 강심장은 골프선수로 차츰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굳은살’과도 같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골프를 처음 접한 소녀 고진영은 절친한 친구와 함께 운동을 즐기며 골프에 빠져들었고,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선수의 길을 걸었다. 다만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과 큰 수술을 받았던 아버지를 생각해야했던 터라 고민이 많았다. 부모님을 위해 골프를 그만둬야겠다는 결심까지도 했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 잡고 계속해 같은 길을 걸은 고진영은 더 독한 마음을 먹고 필드로 올랐다.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꼭 성공하는 선수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코스 안에서, 특히 승부처에서는 강하게 보여야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 모습들이 ‘고진영은 독하다’는 이야기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원래는 눈물도 많고 여린 편이다. 가끔은 먼발치에 계신 부모님 얼굴을 보며 울면서 플레이를 한 날도 많다. 조금은 민망하지만 가끔 그렇게 울 때도 있었다.” (2018년 1월 LPGA 투어 진출을 앞두고)

이처럼 꿈을 위해 마음을 단단하게 다잡은 고진영은 승부처마다 이 덕을 톡톡히 봤다. 이번 대회 역시 마찬가지. 후반 막판 연달아 보기를 기록하면서 심적으로 쫓겼지만, 곧바로 이를 만회할 수 있던 힘이 바로 후천적 강심장에 있었다.

고진영.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자립심

고진영을 고등학교 때부터 지켜보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의 성공과 LPGA 투어 진출을 도운 갤럭시아SM 구철 국장도 또래들보다 당찼던 소녀를 또렷이 기억한다.

“2012년 아마추어 대회에서 고진영을 처음 만났다. 지금도 첫인상이 생생하다. 두 눈매가 살아있었다. 악수를 하는데도 다른 선수들과 달리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손을 꽉 잡더라. 경기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20대 중반 나이답지 않은 ‘자립심’도 빼놓을 수 없다. 2017년 10월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우승으로 이듬해 미국 직행 티켓을 얻은 뒤의 일화가 이를 잘 말해준다.

당시 고진영은 해외 진출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가족과 스폰서 문제 등 고려해야할 점이 많은 탓에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 모두가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점을 고진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홀로 신중히 고민한 끝에 미국 진출이라는 도전을 택했다.

대신, 자기 자신과 굳은 약속 하나를 했다. 이번만큼은 부모님의 보살핌 없이 자신과 매니저만 투어 생활을 해나가기로 했다. 가족과 함께한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혹여 이러한 환경이 자신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이처럼 자립심을 바탕으로 세계무대로 발걸음을 넓힌 고진영은 진출 2년 만에 모두의 로망인 메이저 퀸과 호수의 여왕으로 등극하고 감격의 눈물을 펑펑 흘렸다.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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