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는 군림했다 그리고 포효했다

입력 2019-04-15 1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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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보다 극적이고 화려한 독무대는 없었다. 골프팬 아니 스포츠팬들이라면 누구나 소름이 돋았을 만한 하루. 전 세계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골프 황제’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여전히 군림하고 있다’고. 그리고 ‘계속해 포효하리라’고.

타이거 우즈(44·미국)가 그토록 그리던 ‘그린재킷’을 무려 14년 만에 되찾았다. 우즈는 15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파72·7475야드)에서 막을 내린 제83회 마스터스(총상금 1150만 달러·약 113억 원) 최종라운드에서 2타를 줄여 4라운드 합계 13언더파 275타를 기록하고 정상을 밟았다.

2005년 통산 4번째 ‘명인 열전’ 제패 이후 비상과 추락을 반복하던 황제는 우승을 확정지은 뒤 자신을 향해 응원을 보내던 구름관중 앞에서 힘껏 포효했다. 1997년 즉위식 당시 아버지 얼 우즈(2006년 작고)와 얼싸안고 감격을 만끽하던 20대 우즈는 22년이 흐른 지금, 자랑스러운 40대 가장이 되어 자녀들과 함께 진한 포옹을 나눴다.

누구도 쉽사리 예상하지 못한 우승이었다. 44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전성기보다는 다소 떨어진 기량 그리고 마스터스라는 무대가 주는 위압감까지…. 그러나 우즈는 자신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온몸으로 증명해보였다.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빨간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를 입은 채, 현지시간으로 오전 9시20분 최종라운드를 출발한 우즈는 4라운드 내내 비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가벼운 미소조차 쉽게 짓지 않았다. 그린재킷을 향한 목마름만이 우즈를 지배하고 있었다.

13언더파 단독선두 프란체스코 몰리나리(37·이탈리아)에게 2타 차이로 뒤져있던 우즈는 쉽사리 리드를 잡지 못했다. 몰리나리가 전반 침착한 파 세이브를 이어가면서 선두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이처럼 견고하던 간극이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은 ‘아멘 코너(난이도가 높아 선수들이 신에게 기도라도 하면서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11~13번 홀)’ 중 하나인 파3 12번 홀이었다. 몰리나리의 티샷이 물가로 빠졌고 더블보기가 기록됐다. 같은 홀을 파로 막은 우즈와 몰리나리는 11언더파 공동선두가 됐다. 이어 파5 15번 홀에서 몰리나리가 세컨샷을 다시 물가로 빠트린 반면, 우즈는 버디를 낚으면서 13언더파 단독선두로 뛰어올랐다. 승기를 잡은 우즈는 16번 홀(파3) 티샷을 1m 옆으로 붙인 뒤 회심의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쐐기를 박았다. 이어 17번 홀(파4) 파 세이브 이후 18번 홀(파4) 챔피언 퍼트를 통해 14년만의 정상 복귀를 자축했다.

1997년 마스터스 사상 최연소 챔피언이자 최초의 흑인 우승자로 등극했던 우즈는 2001년과 2002년 그리고 2005년 추가로 그린재킷을 수집했지만, 이후 외도 스캔들과 약물 운전 논란 그리고 허리 부상이 겹치면서 나락의 길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재기를 향한 끈질긴 노력으로 다시 전성기급 기량을 되찾았고, 마침내 이날 레드셔츠 위에 그린재킷을 다시 걸쳐 입으면서 황제의 5번째 대관식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날 전 세계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광경을 현장에서 지켜본 패트론(갤러리의 마스터스식 표현)은 4만 명이었다.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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