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그들을 말한다] 프로야구 삼성 박진만 “화려한 수비? 결국 무너진다”

입력 2018-12-1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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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역사에 남은 유격수 박진만은 어느덧 4년차 코치가 됐다. 가끔은 선수들의 플레이가 답답할 때도 있지만 이를 묵묵히 삭힌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좋은 코치’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동아DB

프로들은 누구나 자기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 있다. 신체 및 정신적으로 가장 건강한 젊은 시절, 소위 ‘전성기’라고 불리는 시점의 이야기다. 이는 대부분 ‘선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을 때 써내려갈 수 있다.

혼자만의 힘으로 최고 수준까지 올라서는 이는 거의 없다. 이들에게는 늘 뒤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 ‘그림자’들이 있다. 바로 코치다. 거친 원석을 수 없이 미세하고 정교한 손놀림으로 가다듬어 ‘보석’으로 만드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 역할의 중요성은 아직까지도 현대스포츠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야구는 타격, 수비, 투구, 주루 플레이 등 코칭의 요소가 구기 종목 중 가장 많은 스포츠 중 하나다. 각 분야에 특화된 선수들에게는 누구나 자신에게 잊지 못할 평생의 ‘인생 코치’가 있다. [코치, 그들을 말한다]에서는 곳곳에 숨어 있는 코치들의 노고를 들어 그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삼성 라이온즈 박진만(42) 코치는 ‘국민 유격수’라는 타이틀을 역대 KBO리그 선수들 중 가장 이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인물이다. 쉬워 보이는 듯한 타구처리는 탄탄한 기본기의 결과물이었고, 깔끔해 보이는 송구는 강한 어깨의 산물이었다. 최고의 프로야구선수에서 이제는 후배들을 지도하는 ‘코치’가 된 그에게 현장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비시즌 일정도 꽤 시간이 지났다. 그나마 숨 돌릴 시간이라고 볼 수 있나.

“시즌 중에는 아무래도 가족들이랑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다. 홈, 원정을 계속 쫓아다니다 보면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내가 아이들 케어를 전담한다. 아침에는 학교에도 데려다 주고 하니 시즌 때보다 일찍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그 바쁜 와중에 선수들까지 살뜰히 챙긴다고 들었다.


“서로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떨어져 있다 보니 ‘잘 지내냐’는 식의 안부 전화도 있고, 또 개인 훈련하는 선수들이 몸을 잘 만들고 있는 지도 궁금해 연락하기도 한다. 필요하다고 할 경우에는 가서 조금씩 훈련을 봐주기도 할 계획이다.”

삼성 박진만 코치. 스포츠동아DB


-수비코치를 전담하다 작전코치까지 도맡았다. 유독 바쁜 시즌이었던 것 같다.

“육체적으로는 매우 힘들었지만 야구적으로 얻은 게 많은 한해였다. 그 전까지는 수비에만 집중하다 보니 국한된 영역 같은 게 있었는데, 작전코치를 겸하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공격 쪽에서 여러 상황이 발생하는 걸 보고 ‘판단’에 도움이 많이 됐다. 수비와도 연계가 되는 장면이 많더라. 선수들과 끊임없이 상황을 전달 받고 설명해주니 여러모로 얻은 게 많았다.”


-내년이면 어느덧 코치 4년차다. 익숙하기도 할 텐데 그래도 선수시절과 차이를 느끼나.

“쉽게 말해 선수 때는 내 것만 하면 됐다. 내 포지션에 대해서 그것만 깊이 있게 알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걸 나에게 맞춰서 했다. 그런데 코치는 선수에게 모든 걸 맞추는 입장이다. 모든 선수를 관리하고 하나하나 신경 쓰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 일정을 맞추는 것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많았는데, 선배 코치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또 나만의 방법도 여럿 생기다 보니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

-구체적으로 선수들 지도는 어떻게 이뤄지나.

“1군 선수들은 시즌 도중 개인적인 기술 훈련을 크게 시키지 않는다. 그런 부분은 이미 스프링캠프에서 완성시켜서 시즌에 투입한다. 시즌에는 경기 운영적인 측면에서 얘기를 많이 해주는 편이다. 체력과 순발력 위주로 훈련을 시킨다. 2군 및 젊은 선수들은 기술 훈련을 시키는데, 선수들마다 장·단점이 다 다르다. 좋은 건 더욱 더 살리고, 부족한 부분은 어떻게 해서든 고치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길게 프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기를 강조하는 코치로 유명하다.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어린 선수들 중에는 화려한 플레이에 중점을 두는 선수들이 은근히 많더라. ‘멋’있는 플레이를 보고 따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들이 화려한 플레이 한두개 하는 걸 보고 그걸 따라하려 하면 큰일이 난다. 화려한 것만 생각하는 선수는 결국 나이 먹어서 무너진다. 내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핸들링과 이후 공을 빼는 동작이다. 이 둘은 나눠져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동작이다. 부드럽게 연결이 되어야 급한 순간에도 실책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선수들 중에는 이 두 동작인 분리돼 로봇처럼 공을 던지는 선수들이 있다.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이다. 내야수에게 여유 있는 상황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작은 부분이지만 급한 상황에서는 한두발을 더 빨리 잡아낼 수 있는 기본기다.”

삼성 박진만 코치. 스포츠동아DB


- 최고의 유격수였다. 그래서 오히려 선수들의 미진한 플레이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 아닌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 아니겠나(웃음). 그러나 코치는 그런 부분을 절대로 밖으로 표현하면 안 된다. 그럴 때일수록 격려하는 게 맞다. 본인도 낙담하고 있는데, 코치까지 뭐라고 하면 선수가 어떻겠나. 나는 앞에서 얘기를 안 하고, 그냥 관련된 훈련을 나중에 시킨다. 사람이다 보니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다. 실책을하고 고개를 숙이며 덕아웃으로 들어오면 나는 오히려 더 나무란다. ‘너는 지금 삼성의 베스트여서 그라운드에 나가는 거다. 네가 고개를 숙이면 그 자리를 바라는 다른 선수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냐’라고 말한다.”


- 박 코치 역시 누군가의 코칭을 받아 최고의 선수가 된 것이라 본다.


“물론이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 김재박 감독님께서 큰 틀을 잡아주셨다. 그리고 세부적인 수비 능력은 정진호 당시 코치님께 지도를 받았다. 입단해 3~4년간 정말 피땀 흘리면서 배웠다. 그때 여러 기본기들을 확실히 장착했던 것 같다. 프로 인생의 뿌리를 만들어 주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나도 그때 코치님에게 배웠던 지도철학을 하나하나 습득해 후배들에게 전하고 있다. 코칭 능력은 그렇게 세대를 흘러 연결된다고 본다. 지금 나한테 좋게 배운 선수 누군가가 또 언젠가 지도자를 한다면 정 코치님의 그 코칭 능력을 따라 전하지 않을까 한다. 그게 코치들의 숨은 기쁨이라고 본다.

장은상 기자 awar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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