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가 몽블랑 펜을 간직한 이유

입력 2019-01-1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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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배영수(38·두산 베어스)는 인터뷰 자리에 고급 필기구를 손에 들고 왔다. 흰색별이 선명한 몽블랑 볼펜이었다. 영문으로 배영수의 이름도 새겨져 있었다. 수첩이나 메모지는 없었다. 자랑하기 위해 갖고 왔을까? 솔직히 그런 마음도 있었겠지만 더 깊은 다짐이 있었다.

묻기도 전에 “얼마 전에 친구들이 이름까지 새겨 선물해줬다”며 웃었다. ‘앞으로 더 오래 연봉 계약서에 사인하라는 뜻이냐?’고 묻자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맞다! 친구들이 여러 의미를 담아 선물했다. 혹시 아나 프리에이전트(FA) 계약도 한 번 더 할지”라며 더 크게 웃었다.

2001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20세 나이로 13승을 올렸던 배영수는 2000년대 ‘푸른 피의 에이스’로 불렸다. 시속 150㎞의 빠른 공으로 리그 최고의 우완 투수로 꼽혔다. 부상 위험을 알고도 마운드에서 투혼을 불태우며 공을 던졌다.

20대의 헌신은 부상과 수술로 이어졌다. 고통스러운 재활을 이겨냈지만 강속구는 사라졌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더 정교한 커맨드로 삼성의 두 번째 전성기를 함께했다.

세월의 흐름은 또 다른 시련을 안겼다. 지난해 한화 이글스는 배영수에게 은퇴를 권유했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전성기 때보다 커맨드는 더 좋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가 많았고 스스로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4개월 동안 소속 팀이 없었던 배영수는 두산 베어스에 입단했다.

김태형 감독은 1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팀 창단기념식 후 취재진과 만나 “배영수는 선발 후보 중 한명이다”고 기대했다.

배영수는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강팀에서 내 몫을 다하고 싶다. 삼성을 떠난 이후로 선발을 고집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선발이든 불펜이든 우승에 역할을 학 싶다”며 “야구를 하면서 직구 최고 스피드가 150㎞인 적도 있었고 128㎞이었던 적도 있었다. 지난 4개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베테랑들에게 냉정한 시기에 두산이 날 선택해준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창단기념식에서 배영수는 25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었다. 뜻밖의 선물이다. 25번은 에이스로 활약했던 삼성 시절 번호였다. 한화에서는 37번과 33번을 달았다. 두산 25번은 양의지의 번호였지만 NC 다이노스로 떠나면서 비게 된 번호다.

배영수는 “두산 팬 분들은 양의지가 떠나면서 아쉬움이 클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번호다. 오랜만에 25번 유니폼을 입고 거울에 서니 기분이 묘했다”고 말했다.

배영수의 통산 승수는 137승이다. KBO리그 현역 투수 중에서 가장 많은 승리. 역대 KBO투수 중에서는 5번째로 많은 승리다. 그러나 위대한 기록은 과거의 영광이다. 현역 투수는 오늘 마운드에 올라야 한다. 배영수 스스로도 “올해 못하면 끝이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계약서에 사인하라고 선물한 펜이 더 소중한 이유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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