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데샹의 실리축구를 보면서 떠오른 영감들

입력 2018-07-17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2018러시아월드컵에서 프랑스 축구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끈 데샹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손에 땀을 쥘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언더독(이길 확률이 적은 팀)을 열심히 응원한 건 사실이다. 크로아티아가 자책골과 페널티킥(PK)을 허용할 때는 힘이 쭉 빠졌다. 프랑스 선수의 과장된 동작에 심판이 속았다는 억울함과 저게 PK가 맞나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동점골이 터졌을 때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치 한국축구를 응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2018러시아월드컵 16강부터 3경기 연속 연장승부를 펼쳤던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결승에서도 투사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지친 기색이 거의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뛸 수 있을까하는 존경심이 들 정도로 쉴 새 없이 몰아쳤다. 하지만 프랑스는 철옹성이었다. 얄미울 정도로 잘 막아냈다. 틈이 보이긴 했지만 곧바로 메웠다. 90분 동안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탄탄한 수비와 빠른 역습으로 상대를 물리쳤다. 점유율 39%로도 우승은 충분했다.


데샹 감독의 실리축구가 빛을 발했다. 우리가 알던 ‘아트(Art)’를 지워버렸다. 화려함 대신 오직 이기기 위한 작전으로 수를 놓았다. 데샹이 “엄청난 경기를 하진 못했지만 정신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우리는 승리할 자격이 있다”고 말한 우승 소감이 그의 철학을 대변해준다.
2012년부터 프랑스를 지휘한 데샹이 가장 잘한 건 제대로 된 조직력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이번 대회 출전국 중 가장 몸값이 비싼 팀이다. 개성 강한 어린 선수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자기 잘난 맛에 축구를 할 수도 있었다. 자칫 팀워크가 붕괴돼 자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데샹의 리더십이 이런 우려를 씻어냈다. 자신보다는 동료를 먼저 생각하고, 팀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는 선수가 감독을, 그리고 감독이 선수를 절대적으로 신뢰할 때에만 가능한 분위기다. 이게 우승 원동력이다.


2018러시아월드컵에서 프랑스 축구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끈 데샹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데샹을 통해 지도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는 한 사람의 감독이 대표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를 보여줬다.


감독은 단순한 자리가 아니다. 전술 주입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한 팀이 나아갈 방향을 설계하는 위치다. 그 그림 속에서 선수들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선수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할 때 조직력이 완성된다. 특히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로도 통솔할 수 있어야한다. 이를 통해 선수들에게 동기부여와 목표의식을 심어줄 때 비로소 팀은 강해진다.


지금 한국축구는 다음 4년을 이끌 새 감독을 찾는 중이다. 큰 대회 우승 경험과 우리의 축구철학에 부합하는 지도자가 영입 조건이다. 여기서 ‘우리의 축구철학에 부합’하는 감독에 방점을 찍고 싶다. 우리는 강력한 조직력이 필요한 팀이다. 아울러 압박과 기동력이 극대화되어야하는 팀이다. 이런 걸 제대로 이해하고 실전에서 우리를 강하게 해줄 지도자가 절실하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런 감독을 뽑아야만 4년이 순조롭다. 데샹이 실리축구로 세계를 제패했듯, 우리도 우리 특유의 색깔로 월드컵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게 이번 대회의 교훈이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체육학박사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