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인터뷰] 한국축구 향한 기성용의 솔직한 고백 그리고 조언

입력 2019-04-1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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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에선 은퇴했지만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더욱 커졌다. 10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수많은 국제대회를 뛴 기성용이 11일(한국시간) 영국 뉴캐슬 트레이닝필드에서 스포츠동아와 만나 대표팀을 향한 무한한 애정, 뉴캐슬 생활기 등을 전했다. 뉴캐슬(영국)|허유미 통신원

태극마크는 내려놓았지만 한국축구를 향한 사랑은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더 애틋해졌다.

기성용(30·뉴캐슬). 지난 10년간 한국축구를 지탱했던 ‘캡틴 키’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최근 정든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이제는 한 명의 팬으로서 태극전사 동료들을 응원하게 된 기성용이 11일(한국시간) 영국 뉴캐슬 훈련장에서 스포츠동아와 마주앉았다. 새로운 둥지에서의 생활로 말문을 연 기성용은 이내 한국축구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태극전사 동료들을 향한 애틋한 감정을 마음껏 풀어놓았다. 다음은 기성용과 일문일답.


● “영국 잔류 택한 이유는…”

-뉴캐슬에서의 첫 시즌이었는데.


“우선은 새로운 팀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초반에는 2018러시아월드컵이 겹쳐있어 여러모로 준비가 덜 됐었다. 바로 경기를 다 뛸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훈련을 통해 몸 상태를 조금씩 끌어올렸다. 그러다가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부상을 당했다…. 돌이켜보면 업 앤 다운이 조금 심한 시즌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강등권 위험이 있었지만 지금은 팀이 많이 올라섰다(11일 현재 15위). 선덜랜드와 스완시 시티 시절보다 강등 스트레스가 덜할 느낌이다.

“그렇다. 아무래도 당시보단 스트레스나 압박감이 확실히 덜 하다. 다만 시즌이 아직 끝나진 않았기 때문에 끝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다. 그래도 지난 시즌보단 수월한 느낌이다.”


-뉴캐슬이라는 도시에서의 생활은 어떤가?

“생활은 스완지보다 훨씬 낫다. 도시 자체가 큰 덕분에 나는 물론 와이프도 생활하기가 편하다. 스완지에서는 정말 할 게 거의 없었다, 하하. 그러나 여기에선 교회도 가깝고, 돌아다니며 보고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많다보니까 괜찮다. 물론 런던만큼은 아니지만(웃음).”


-뉴캐슬 입단 소식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었다. 당시 배경이 궁금하다.

“우선 고민을 많이 했었다. 영국에 남아야 할지, 다른 리그로 도전해야 할지를 놓고 기로에 섰다. 스스로 ‘어디가 나에게 좋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결론은 EPL 잔류였다.

“현재 EPL 자체가 워낙 경쟁력이 강해졌다. 보다시피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8강에 EPL 4팀이 올라가 있다. 내가 굳이 다른 리그를 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에 있으면서 최고의 선수들과 같이 부딪힐 수 있는 시간을 더 오래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던 찰나에 뉴캐슬에서 제의가 왔고, 일이 빨리빨리 진행이 됐다. 아무래도 내가 영국에서 뛰다보니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님도 나를 잘 알고 있었다. 나 역시 뉴캐슬이라는 구단이 얼마나 큰 팀이고 좋은 선수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베니테즈 감독은 명장으로 알려져 있다. 직접 경험해 본 베니테즈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좋은 지도자이시다. 배울 점이 많다. 전술적으로도 그렇고 선수들을 대하는 법도 그렇고. 감독님만의 철학 등이 확고하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다. 물론 모든 감독님이 선수들을 100%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내가 보기엔 여러 가지로 배울 점이 많은 감독님이다. 경험 역시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감독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선수들에게 크게 와닿지 않나 싶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베니테즈 감독과 뉴캐슬의 계약이 만료된다.


“구단 입장에서는 당연히 감독님이 남길 바라고 있다. 다만 감독임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모르지만 말이다. 계속 남아주시면 구단이나 선수들, 팬들로서는 너무 좋은 일이다. 일단은 우리는 기다릴 뿐이다.”

국가대표 시절 기성용. 스포츠동아DB


● “태극마크 10년…행복했지만 지치기도 했다”

-국가대표 은퇴를 했다. 당시 결심 배경과 심경이 궁금하다.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은퇴를. 10년이란 시간을 뛰다보니 고민이 길었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정말 ‘도저히 못 하겠다’는 정도의 나이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축구국가대표팀에서 충분히 오랜 시간을 뛰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고민들을 하기 시작하게 된 이유다.”


-조금 지친 느낌이었나.


“계속 영국과 한국을 왔다갔다 하다보니까 내 스스로 육체적으로 지쳐가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치더라. 계속 주장을 하면서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항상 대표팀에 대해 정말 고민을 많이 하다보니까…. 대표팀을 한번 다녀오면 한 달 내내 내가 계속 그(대표팀) 생각만 하고 있더라. 한 번은 와이프가 옆에서 ‘이제 좀 내려놓고 그만 생각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주장이고, 월드컵 최종예선과 같은 중요한 경기들이 있다보니 계속 놓지 못했다. 거기서 내가 많이 지쳤던 것 같다.”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겠다.

“내가 아무래도 나이가 점점 들어가다 보니 주말에 영국에서 경기를 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한 뒤 다시 경기를 하는 스케줄이 정말 힘들었다. 어렸을 때 영국에서 한국을 거쳐 동아시아나 중동아시아로 가는 일정을 어떻게 소화했는지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다. 다만 누구도 이 스케줄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더라. 감독님이나 코치님 모두 ‘너를 정말 이해하겠다’는 느낌보단 그냥 형식적으로 ‘아 넌 참 힘들겠다’ 정도로만 이야기를 한다. 이 문제를 교감하고 이해하려는 부분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정말 힘든데, 정말 너무너무 힘든데 위로를 받지 못했다. 조금이나마 나를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조금 더 편하게 축구를 했겠다 싶어서 더욱 아쉽다.”


-결국 선택은 국가대표 은퇴였다.

“이러한 강행군을 내가 앞으로 언제까지 할 수 있느냐라는 고민이 시작됐다. 더 나아가서는 ‘내가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 차라리 내가 은퇴를 하는 편이 맞겠다’고 생각했다.”


-구자철(30·아우크스부르크)도 함께 은퇴를 택했다.

“(구)자철이에게도 얘기했다. 우리 민폐 끼치지 말자고. 나도 자철이도 부상을 당하면 회복을 하고 뛰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한 채 그냥 다 뛰었다. 주사 맞고 뛰고, 약 먹고 뛰고…. 당연히 그러면 몸 상태 회복이 더디다. 자철이 역시 계속해 그런 부분을 참고 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피로 누적이 많이 됐다. 다만 그런 친구가 항상 대표팀에 와서 비난을 받고 이러다보니, 주눅이 드는 모습이 딱 보였다. 그런 선수들이 많이 있다 대표팀에는.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나도 주장이었을 때 어떻게든 그러한 선수들을 북돋으려고 열심히 이야기도 했지만, 사실 경기장에서 반전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미련은 남지 않았나.

“지금도 사실 ‘이렇게 끝났구나’라는 감정이 든다. 한 1~2년이면 상관이 없는데 10년을 해왔기 때문에…. 추억도 많고 아쉬운 감정도 많다. 비록 대표팀에서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동료들과 뛰고 생활했던 기억은 지금도 행복하게 남아있다.”


-이청용(31·보훔)은 아직 태극마크를 달고 뛰고 있다.

“(이)청용이도 많이 힘들 수밖에 없다. 다음 2022카타르월드컵이 열리는 때면 청용이도 35살이다. 그러면 청용이가 할 수 있는 몫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베테랑으로서 경기 분위기 바꿔 주는 부분과 같은. 물론 쉽지 않을 테다. 분명히 쉽지 않지만 그게 현실이다. 말로만 ‘내가 준비해서 잘해야지’ 한다고 되지 않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일은 때론 어쩔 수 없는 현실과도 같더라.”


-은퇴 당시 파울루 벤투 감독과는 어떤 대화를 나눴나.

“내가 가장 죄송한 분이 벤투 감독님이시다. 반대라고 말하기보다는 일단 은퇴는 내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물론 내 주위 가족이나 지인들과 조금 의견을 나눴지만 결론은 내가 내렸다. 감독님과는 많이 대화를 못했다. 감독님이 처음 오셨을 때, 내가 감독님께 은퇴 얘기를 꺼내면 감독님이 배려를 해주실까봐 말씀드리지 않았다. 배려라는 것도 나만 받다보면 누군가 불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정한 뒤 감독님께 ‘내가 대표팀을 떠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감독님께서도 ‘네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이해해주셨다. 물론 지금도 개인적으로는 죄송하다. 처음 오셨을 때 내게 ‘같이 가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그 약속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 “외부에서 선수들을 흔들지 말아야 한다”

-주장 바통은 손흥민(27·토트넘)이 이어받았다.


“내가 대표팀을 떠나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있다. 외부에서 대표팀을 흔드는 세력이 너무 많다. 지금 (손)흥민이가 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다. 모든 부담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 부담감을 흥민이가 얼마나 잘 이겨내고 또 주위 동료들과 잘 나누느냐다. 내가 있을 때도 정말 말도 안 되는 논란이 많았다. 이제 은퇴를 했으니까 이야기를 하자면 소리아 논란, 중국화 논란, 히딩크 논란, 트릭 논란 등등. 이처럼 외부에서 대표팀을 자꾸 흔들어 놓으니까 그 분위기를 수습하지 못하겠더라. 선수들이 벌써 다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보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는다.


-전직 캡틴으로서 조언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대표팀은 월드컵이라는 목표를 보고 길게 가야 한다. 잘잘못은 월드컵 이후 따지면 된다. 그전까지는 우리가 일단 최대한 대표팀을 도와줘야 한다. 팬들은 물론 언론과 협회도 말이다. 그러지 않으면 지난 8년 동안처럼 중간에 감독님이 사퇴하시고, 새 사령탑이 오는 일이 반복된다.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다 보면 앞으로도 희망이 없을 것 같다. 지금은 정말 좋은 선수들도 많고 한국축구가 발돋움할 가능성이 큰 시점인 만큼 더욱 의기투합해야한다.”

“최근 어린 선수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조금은 조심스럽다. 이 친구들이 많은 부담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아마 앞으로 이 선수들에게 앞으로 여러 가지 상황이 닥쳐올 테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내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기대가 크다. 정말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나 지금은 이 어린 선수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축구를 부담 없이 했으면 좋겠다. 특히 해외에 있는 친구들은 경기를 뛸 때도 있고 못 뛸 때도 있을 텐데, 한국에서는 선수가 경기를 못 뛰면 ‘명단 제외’ 같은 기사들이 나온다. 이강인(18·발렌시아) 같은 경우도 그 나이에 벌써 유럽 무대 중심에 있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대단한 일이다. 기대치가 높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그냥 이 친구들이 부담 없이 했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한국축구를 위하고 응원하는 길이다.”

기성용은 스포츠동아와 만나 독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다 직접 사인을 하며 인사를 대신 전했다. 뉴캐슬|허유미 통신원


● “은퇴 이후의 삶은 아직 모르겠네요”

-기성용에게 축구선수 이후의 삶이란?


“아직 딱히 계획한 바는 없다. 일단 감독은 안 할 것 같다(웃음). 모르겠다. 축구 쪽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축구를 평생 해왔으니 축구쪽으로 계속 무언가를 할 것 같다. 그곳이 한국이든, 외국이든.”


-기성용에게 가족이란?

“난 가족 때문에 살고 있다. 딸도 잘 크고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컸다. 내가 가장이니까 우리 가족들을 책임지고 보살펴야한다. 우선순위는 가족이다. 가족이 있으니까 내가 있다. 앞으로 진로 선택에 있어서 가족이 내게 가장 중요하다.”


-기성용에게 팬이란?

“국가대표 은퇴를 하면서 팬분들께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다. 나는 팬분들께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다만 내가 지금 대표팀에서 은퇴해서 보답 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다. 그래도 확실한 사실은 팬분들의 응원 한마디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는 점이다. 항상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뉴캐슬(영국)|허유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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