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 도구 없이 부엌에 몰렸던 양상문, 팬 향한 진심 남았다

입력 2019-07-20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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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문 감독. 스포츠동아DB

조리 기구 없이 부엌에 내몰렸다. 결론은 충격의 자진사퇴. 자신이 원하던 바를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옷을 벗었다. ‘양상문 2기’는 결국 아쉬움으로 귀결됐다. 하지만 양 감독의 롯데 팬 향한 진심만은 선명히 남았다.

롯데는 19일 오전 “양상문 감독과 이윤원 단장이 동반 사임했다”고 밝혔다. 양 감독은 17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 패배 후 사장단에 의사를 전했고, 줄곧 사임의 뜻을 품고 있던 이 단장은 전반기 종료 시점인 18일 뜻을 밝혔다. 사표는 수리됐고, 19일 공식 발표됐다. 공필성 수석코치가 남은 시즌 지휘봉을 잡는다. 구단 측은 조속히 차기 단장 인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94경기 34승58패2무(승률 0.370)로 최하위. 양상문호의 전반기 성적이었다. 실제로 롯데는 거의 매 경기 공수에서 답답한 모습을 수차례 노출하며 팬들의 강도 높은 질타에 시달렸다. 양 감독은 “프로 아닌가. 성적이 부진하면 질타받는 건 당연하다”고 이를 감내하고자 했다. 하지만 도를 넘은 비방이 이어졌고, 스트레스의 시간이 깊어졌다.

양 감독이라고 손을 놓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고질적 약점으로 지적받던 안방에 대한 보강 의사를 수차례 드러냈지만 카드가 맞지 않았다. 내부 판단으로 ‘코어 유망주’라고 평가받던 자원까지 트레이드 매물로 내놨지만 타 구단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결국 롯데 내부의 육성 실패가 영향을 미친 것이다.

현장에서 원했던 프리에이전트(FA) 영입도 없었다. 마운드와 안방 자원이 연이어 시장에 풀렸지만 롯데는 빈손이었다. 외국인 선수 교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양 감독은 제대로 된 조리 도구 없이 부엌으로 떠밀린 꼴이었다.

선수들도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19일 퓨처스 프라이데이에서 만난 고승민은 “기사를 보고 알았다. 너무 충격이었다. 감독님께서 칭찬을 많이 해주셨는데 이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자책했다.

전반기 내내 양 감독을 지탱한 건 단 하나, 팬이었다. 양 감독은 퇴진 시점에도 구단을 통해 “전반기의 부진한 성적이 죄송스럽고 참담하다. 사랑했던 팬들에게 송구스럽다. 팀을 제대로 운영하려 발버둥 쳐 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지금은 내가 책임을 지는 게 팀을 살리는 길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야구장에 와주신 팬분들의 위로와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약속을 못 지켜서 죄송하다. 특히 좋은 경기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던 어린이 팬의 얼굴이 마음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퇴진 후 이러한 공식 입장을 내세운 감독은 여태껏 없었다. 감독이기 이전에 롯데를 사랑했던 양상문이기에 가능했던 행보였다.

창원|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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