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래의 피에스타] 왕조의 막내 선발→클로저, 오주원의 변한 것과 지킨 것

입력 2019-10-15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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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오주원. 인천|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2004년 11월 1일. 현대 유니콘스와 삼성 라이온즈는 잠실구장에서 한국시리즈(KS) 9차전을 치렀다. 당시 경기시간 4시간을 넘기면 무승부 처리되는 규정에 우천취소까지 겹치며 ‘초겨울야구’가 성사됐다. 8차전까지 3승3무2패로 앞선 현대는 9차전 선발투수로 약관의 고졸 신인 오재영을 내세웠다. 김재박 현대 감독은 5차전 5.2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기세를 믿었다. 결과는 3.1이닝 1실점 강판. 하지만 정규시즌 30경기에서 10승9패, 평균자책점(ERA) 3.99를 기록했던 오재영은 당당히 신인왕에 등극했다. 그는 “좋은 투수가 많은 현대에서 은퇴하는 날까지 선발로 뛰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2년차 징크스가 발목을 잡았고, 3년차였던 2006년 4경기 등판의 기록만을 남긴 채 상무 야구단에 입대했다. 그가 군 복무 중이던 2007시즌을 끝으로 현대는 사라졌다. 전역 후 히어로즈로 돌아온 오주원의 역할은 불펜에 고정됐다. 입대 전 56경기 중 47경기에 선발등판했던 그는 전역 후 올해까지 481경기 중 28경기에만 선발로 나섰다. 신인왕 수상 소감으로 밝힌 현대도, 선발 자리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오재영은 ‘왕조’ 현대의 마지막 KS 선발투수로 남았다.

# 국방의 의무를 다한 뒤에도 부상이 끊이질 않았다. 팔꿈치 인대접합수술, 고관절 통증 등에 척추 마비 증세까지 겪은 탓에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자체가 기적이었다. 어머니의 권유로 2016시즌 도중 오재영에서 오주원으로 개명했다. 이름이 바뀌자 기적처럼 커리어도 달라졌다. 2016시즌부터 올해까지 4연속시즌 50경기 이상 등판하며 키움의 허리 역할을 튼튼히 하고 있다. 올해는 후배 조상우가 부상으로 이탈한 사이 마무리 투수 자리를 꿰차 57경기에서 3승3패19세이브3홀드, ERA 2.32로 ‘커리어 하이’ 기록을 썼다.

# 올해 포스트시즌(PS)에 진출한 다섯 팀의 마무리 투수만 놓고보면 만33세 오주원이 최고령이다. 하재훈(SK 와이번스), 고우석(LG 트윈스) 등 강속구로 무장한 이들과 달리 그의 평균구속은 130㎞대 중반에 불과하다. 하지만 특유의 제구력에 관록이 더해지니 타자 입장에서 쉽사리 공략하기 힘든 투수다. LG와 준플레이오프(준PO) 1차전 0-0으로 맞선 9회에 구원등판,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뒤 박병호의 끝내기 홈런이 터지며 승리투수가 됐다. 2004년 KS, 2014년 LG와 PO에 이어 세 번째 PS 승리였다.

# “2004년에는 너무 어렸다. 이후 14년간 우승을 못 할 거라는 생각도 못 했다. 우승이 간절하지 않은 선수가 있겠냐만, 나 역시 누구보다 간절하다. 고참, 어린 선수 가리지 않고 우승까지 향하는 과정에 각자가 무슨 역할을 맡아야 할지 알고 있다. 그게 우리 팀의 가장 큰 무기다.”

왕조팀의 막내에서 최고참으로, 선발에서 클로저로, 오재영에서 오주원으로…. 2004년과 2019년 사이 참 많은 것이 달라졌다. 덜컥 다가온 듯했던 우승이 얼마나 힘든지도 그 사이 절실하게 느꼈다. 오주원의 여섯 번째 가을은 어디서 멈출지 지켜보자.

인천|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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