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장혜진 “‘기생충’과 소속사 계약 동시에, 복이 굴러들어와”

입력 2019-07-06 13: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사람이 운이라는 것이 있나 봐요. 봉준호 감독님한테 작품 제안을 받았을 때, 오랜 지인 김숙이 소속사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이게 무슨 일이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기분이 묘했어요.”

올해 배우 장혜진에게 대운이 들어선 듯 하다.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에서 강인한 엄마 ‘충숙’ 역을 맡으며 호평을 받은 장혜진은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배우였다. ‘밀양’, ‘우리들’, ‘용순’, ‘어른도감’, ‘니나내나’ 등에 출연하며 영화 관계자들의 눈에 익은 배우였지만 이렇게 큰 규모의 작품에서 큰 역할을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직접 전화를 했다.

“그냥 만나자”는 말에 장혜진은 봉준호 감독을 만나러 갔다. 그를 만난 봉준호 감독은 영상 하나를 캡처한 사진을 보여줬다. ‘우리들’에서 인상을 일그러트리는 장혜진의 모습이었다. 그는 “‘왜 그랬어?’라며 인상을 찌푸린 장면이었다. 시종일관 환하게 웃는 엄마 역할이었는데 그 표정을 보고 ‘충숙’ 역을 해보지 않겠냐고 했다”라고 말했다.

“작품 이야기를 많이 할 줄 알았는데 수다만 두 시간을 떨었죠. 대화가 마지막을 달려가던 때에 ‘살을 좀 찌웠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작품을 같이 하자는 제안에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는데 시나리오를 받고 더 걱정이 됐어요. 괜히 폐나 끼치는 게 아닌가 싶고.”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맘을 추스른 후 장혜진은 체중을 15kg을 찌웠다. 2시간에 한 번씩 떡을 먹으며 살을 찌웠고 봉 감독이 ‘OK’를 할 때까지 계속 찌웠다. 살을 찌운 덕분에(?)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 참석 당시 장혜진을 보고 아무도 그가 ‘충숙’역을 한 배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칸 영화제의 실수로 ‘기생충’ 공식 상영에 앞서 배포된 보도자료에 장혜진의 사진이 잘못 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장혜진은 “오히려 나를 못 알아보니 더 쾌감이 느껴졌다. 내가 체중관리를 잘했다는 의미일 테니”라고 웃으며 말했다.

‘기생충’의 충숙은 운동선수 출신이다.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힘으로 사람을 깔끔하게 제압한다. 그는 “전공이 연기이다 보니 한국 무용, 발레, 요가 등을 다 해봐서 운동선수 역할은 문제가 없었다”라며 “아무래도 남자도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서 타고난 운동선수 설정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정은 언니를 발로 ‘뻥’찼을 때 칸에서는 박수가 터졌다. 사실 너무 끔찍한 장면인데 그들에겐 코믹한 요소로 느껴졌나 싶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호흡 중 하나는 장혜진과 이정은이었다. 박 사장(이선균 분)집에서 쫓겨난 문광(이정은 분)은 지하실에 숨겨둔 남편의 존재를 기택(송강호 분) 가족에게 들키자 충숙에게 “언니”라 부르며 눈감아달라고 하고 충숙은 이를 매몰차게 거부한다. 하지만 상황이 변하자 충숙이 도리어 “동생”이라 하며 빌게 된다. 두 사람의 대립구도는 보는 내내 심장이 저릿하게 한다.

이정은과 이 장면을 촬영하며 “죽이 참 잘 맞았다”는 장혜진은 “힘든 촬영에 졸려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정은 언니와 함께 하니 너무 행복했다. 연기적으로 내가 부족하니 ‘언니 나 절대 버리지 말아라’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라고 말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를 찍기 전에 작품으로 이정은 언니 연기를 봤었죠. 주변 분들도 늘 극찬을 했던 터라 기대를 했었는데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잘하시더라고요. 실제로 만난 언니는 아니나 다를까 상상 이상의 사람이었어요. 거의 붙어 다니다시피 했죠. 언니가 감독님과 연기 이야기를 하는 것만 들어도 너무 행복했어요.”

‘기생충’이 세상에 알려진 후 장혜진은 연일 축하 인사를 받으며 지냈다고. 그는 “예전에는 ‘쟤는 왜 안 될까’란 이야기만 들었고 주변 사람들이 더 안타까워 했다:라며 ”그런데 ‘기생충’ 이후에 가족들과 지인들이 기사만 나면 알아서 ‘톡’을 보내주며 모니터를 해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기쁨을 더 일찍 드렸으면 얼마나 좋을까도 생각하지만 지금도 감사해요. ‘기생충’ 출연 확정이 났을 때 가장 기뻐해준 건 대학 동기인 이선균이었어요. 시나리오를 보고 선균이가 전화와서 ‘혜진아, 진짜 축하한다’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눈물이 다 날 지경이라면서.”

장혜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1기 출신으로 1998년 영화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으로 데뷔했다. 이후 결혼을 해 출산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연기 생활을 잠시 하지 않기도 했다. 다른 일을 도전했지만 연기만큼 재미있는 일을 찾기 어려웠다. 약 10년을 쉬고 만난 작품은 ‘밀양’(2007)이었다. 촬영 현장에 있으며 그는 “그래, 이거지!”라며 연기는 자신의 천직임을 다시 깨달았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피가 다시 끓어오르더라고요. 촬영하며 배우들이랑 밥도 먹고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좋았어요. 너무 행복했죠. 바닥부터 시작해도 버틸 수 있을 에너지가 생겼어요. 어릴 땐 이 재미를 몰랐어요. 그 당시에는 제 스스로도 연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점수로 평가되니 거기에 너무 민감했던 것 같아요. 사실 그게 다가 아닌데 말이죠.”

차기작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장혜진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그 동안 자신을 선택해준 사람들에게 빚을 갚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도 언급했다. 특히 무명이었던 자신을 늘 챙겨준 송은이와 김숙에게도 감사를 전하며 늘 도움이 되고 싶다고 전하기도 했다.

장혜진은 “내가 드러나는 것보다 공감 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바램이 있다면 누군가 내 연기를 보고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배우로서 그보다 더 감사한 일은 없을 것 같다. 또 조금은 모자라도 서로에게 힘이 되는 작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전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 등 은혜를 갚아야 할 분들이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 저를 배우로 불러다 써주시는 등 도움을 받은 분들이 너무 많아요.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지나가는 여자’라도 할 수 있을 정도인걸요. 받은 만큼 돌려드릴 수 있는 배우가 되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