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태극낭자들은 어려운 US오픈에서 강할까

입력 2019-06-03 1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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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왜 태극낭자들은 어려운 US오픈에서 강할까

제74회 US여자오픈이 벌어진 찰스턴 컨트리클럽은 무려 99개의 벙커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린 주변은 더 어려웠다. 요행으로는 절대로 스코어를 낼 수 없는 변별력이 뛰어난 코스였다. 바람은 강했고 날씨는 더웠다.

그린은 딱딱했다. 감자튀김을 연상시켰다. 평소의 탄도와 회전으로는 공을 세울 수 없었다. 남자선수들처럼 스윙하는 렉시 톰슨(24·미국)조차 애를 먹었다. 어느 대회보다 세컨샷이 중요한 어려운 코스에서 우리 선수들은 강했다. 이정은(23·대방건설)은 우승을, 유소연(29·메디힐)은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태극낭자’의 힘을 또 한번 과시했다.

코스가 어려울수록 실력 차이는 드러난다. US여자오픈은 매년 장소를 달리해 진행되는데 유독 어려운 코스를 택하기로 유명하다. 이정은의 US여자오픈 우승으로 태극낭자들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메이저대회 통산 30승을 기록했다. US여자오픈에서 가장 많은 10승을 챙겼고, 위민스 PGA챔피언십에서 7승, 여자브리티시오픈에서 6승을 거뒀다. ANA인스퍼레이션에서 5승, 에비앙마스터스에서 2승을 보탰다. 메이저대회의 역사가 각기 달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유난히 US여자오픈과 인연이 깊다.

우리 선수들은 골프를 처음 배울 때부터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치지 않는 능력을 익혔다. 땅이 좁다보니 한국 골프장은 좁은 지역에서 최대한의 긴장감을 주는 코스세팅을 선호한다. 산도 많다. 그런 지형을 이용해 코스가 어렵고 OB, 해저드 지역도 많다. 이런 곳에서 처음 골프를 시작한 선수들은 정확하게 원하는 곳으로 보내는 능력을 먼저 배워야 한다. 교과서 같은 폼으로 항상 일관된 템포로 스윙을 하는 우리 선수들은 덕분에 메이저대회에서 경쟁력이 높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특히 트러블 상황에서 위기를 빠져나오는 능력이 필요한 대회에서 유난히 강한 이유다.
큰 경기는 배짱이 승패를 가른다. 많은 선수들이 메이저대회 우승의 부담감에 스윙템포가 빨라지며 평소의 기량을 내지 못했다. 우리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상황을 이겨내는 훈련을 많이 받았다. ‘제2의 박세리’ ‘제2의 박인비’를 꿈꾸며 운동신경이 좋은 많은 꿈나무들이 일찍 골프채를 잡았다. 아마추어 때부터 치열하게 또래들과 경쟁했다. 성장해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선수가 된 뒤에도 경쟁은 이어진다. KLPGA 투어에서 매주 치열하게 순위경쟁을 하면서 심장을 단련하다보니 어지간한 위기에서는 흔들리지 않는다. 선수들의 강철 멘탈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많은 국제대회 경험도 경쟁력을 높였다. 높은 세계랭킹을 받아서 자주 메이저대회에 출전하며 경험을 꾸준히 쌓았다. 이정은도 2017년 세계랭킹 43위 자격으로 출전한 US여자오픈에서 5위를 차지하며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 같은 ‘메이저 퀸’ 고진영(24·하이트진로)과 유소연, 박성현(26·솔레어)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박세리가 처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를 밟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많은 선수들이 미국 무대를 누빈다. 우리 선수들끼리 함께 훈련하고 서로 정보를 주고받다보면 노하우도 많이 쌓인다. 박세리가 맨땅에 헤딩하며 몸으로 배웠던 것들이 한국선수들에게 차곡차곡 쌓여서 이제는 모두가 공유하는 자산이 됐다. 그것이 한국 여자골프의 진짜 힘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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