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암살’ 최덕문 “나라에 목숨 바친 독립군들, 그 청춘 생각하면 눈물”

입력 2015-07-31 1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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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대작 영화 포스터 촬영, 눈물이 났습니다.”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제작 케이퍼필름)이 개봉하기 전 진행된 쇼케이스에서 배우들이 나눈 수많은 이야기 중 가장 강하게 내리꽂힌 말이었다. 그 한 마디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 그의 배우 인생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암살’을 통해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 배우 최덕문이다.

‘암살’에서 헝가리 마자르에게 기술을 전수 받은 폭탄 전문가이자 행동파 독립군 황덕심 역을 맡은 최덕문은 최 감독의 전작인 ‘도둑들’에서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어느 장면에서 나왔는지 기억을 훑어보자. 김수현에게 키스를 선사한 호텔 지배인을 기억하는가. 바로 그 사람이다. ‘도둑들’이 스크린에서 내려가고 촬영 메이킹을 다큐멘터리로 만들 때 최 감독은 최덕문에게 내레이션 요청을 했다. 당시 최덕문은 ‘김혜수, 김윤석, 전지현, 이정재 등 주연 배우도 아닌 나를?’이라며 은근히 최 감독의 차기작 출연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그 기대가 진짜가 됐다. 작년 최 감독은 아내이자 케이퍼필름 안수현 대표와 함께 최덕문이 출연한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를 관람했고 명동 주변 골뱅이집에서 넌지시 ‘암살’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시나리오를 본 상태였지만 황덕심 역에 대한 부담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처음에 황덕심 부분을 읽고 부담이 됐어요. 내가 이렇게 큰 역할을 맡아도 되나 싶었죠. 그러고 나서 ‘암살’ 시나리오가 전체적으로 읽었는데 또 읽어도 재밌더라고요. 자꾸 읽어도 ‘아, 맞아. 안옥윤(전지현)이 쌍둥이었지?’라는 깜짝 놀라게 되는? 하하. 마지막 장면은 호불호가 있던데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어요. 친일파 염석진(이정재)가 단죄를 받잖아요. 처벌을 받지 못하고 끝나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딱 죽더라고요. 전 좋았어요.”

광복 70주년인 올해에 ‘암살’이 세상으로 나온 것은 의미가 있다. 살면서 잊어버리기 쉬운 조국의 역사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던지고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죽어간 많은 독립군들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긴다. 최덕문 역시 마찬가지다. 배우 인생에 있어서 대작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이름을 올리며 포스터에 당당히 들어간 것도 기분이 좋지만 무엇보다 한국인으로서 이 영화를 촬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큰 의미였다.

“포스터 촬영을 하면서 배우들을 보는데 독립군들의 모습이 교차되는 기분이었어요. ‘아 저 사람들, 이제는 없네. 다 죽은 사람들이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젊은 나이에 나라 구하겠다고 청춘을 바친 거잖아요.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하죠. 그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불쌍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저는 손톱의 때만큼도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할 거예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배우들의 진정한 마음이 오롯이 담긴 ‘암살’은 티켓 파워로 연결되고 있다. 개봉 9일 만에 500만 명의 관객을 돌파하며 2015년도에 가장 강한 흥행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 상반기 주춤했던 충무로를 일으킨 구세주이기도 하다. 이 성적에 최덕문 역시 “관객들에게 정말 감사드리고 있다. 이 소재가 무척 무겁지만 이해하기 쉽게 만들려고 밤낮으로, 국내외로 많은 스태프들이 고생했다. 이 영화를 만든 기쁨도 크지만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니 더 기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데뷔 이래 처음으로 부모님을 VIP 시사회에 초청하기도 했다. 영화 포스터에 나온 아들을 보며 “아들, 이번에는 시사회에 좀 부르지?”라고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에 VIP 시사회에 초청했다. 극장에서 그가 관객들에게 무대 인사를 할 때 누구보다 큰 목소리와 환호로 호응해주시던 부모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고.

“아버지가 뒤에서 손 흔드시는데 아들로서 보람됐어요. 영화관에서 포스터 보시면서 ‘우리 아들 여기 있네’라며 좋아하시는 모습도. 시사회 다음날 ‘영화 재밌더라. 우리 아들이 자랑스럽다’라고 문자 보내셨더라고요. (웃음)”

부모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질문을 던졌다. 배우가 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을까. 지금은 연예인이 최고의 직업이라고들 하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연예인은 ‘딴따라’나 ‘어릿광대’에 불과했다. 배우가 되겠다고 하는 아들을 말렸으면 말렸지, 지지해주는 부모는 결코 없었을 시대였다. 그 역시 “당연히 부모님께서 안 좋아하셨다”고 웃으며 말했다.


“고등학교 때 연극반을 했었고 친구들과 자연스레 연극영화학과를 가야겠다는 생각했어요. 같이 무대를 꾸미는 게 재미있었거든요. 그런데 대학에 다 떨어졌어요. 하하. 그래서 아버지가 ‘재수를 할래, 군대를 갈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재수를 결심했는데 아버지가 ‘연극영화학과는 안 된다’고 조건을 거셨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성문영어문법’과 ‘수학의 정석’도 봤어요. 그런데 시험이 다가오니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께 ‘저 연극영화학과 가면 안 되나요’라고 했더니 재떨이가 날아오더라고요. 하하.”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나. 기어코 그는 원하는 연극영화학과로 진학했다. 대학 졸업 직전 연극 ‘지하철 1호선’으로 연기자 데뷔를 한 최덕문은 지금까지 TV 드라마, 스크린 그리고 무대까지 섭렵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처음부터 평탄한 길을 걷진 않았다. 쪽잠을 자면서 밤새 아르바이트를 했고 극장 청소를 하며 살아왔다. 그는 “어느 날 편의점 점장이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을 알고 약간 자존심이 상했었다. 내 생애 아르바이트는 거기서 끝냈다. 배우로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후 영화 오디션을 수없이 보러 다녔다. 하루에 오디션을 3번 보고 3번 떨어지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버텨내자는 집념으로 지금 여기까지 왔다.

“대학로 후배들이 가끔 전화 와서 술 사달라고 해요. 그러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어봐요. 그러면 딱히 해 줄 말이 없어요. 버티라는 말 밖에. 최근에 연기를 하다가 유명을 달리한 친구들이 있었잖아요. 참 그들을 보면 한없이 서러워요. 그래서 또 버티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물론 (박)원상이 형이나 (황)정민이나 지금은 정말 잘 돼서 사랑 받는 배우들이 됐지만 그들도 어렸을 땐 참 힘들었어요. 그래서 지금 후배들에게 버틸 만 했다고 말해요. 공연하는 게 재미있었고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게 즐거워서 버틸 수 있었다는 거. 그 말 밖에 할 수 없어 속상하기도 해요.”

그래서 최덕문은 더 열심히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좋은 다리 역할을 하는 선배가 되고 싶다”라며 “후배들이 작품 활동을 하면서 힘든 마음보다 재미있는 마음이 드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극단 차이무의 단원인 그는 20주년 공연인 ‘원 파인 데이(One Fine Day)’에 들어간다고 말하며 “많이 보러 와주세요”라는 홍보도 잊지 않았다.

“배우들은 ‘무대’밖에 도망갈 곳이 없어요. 현실에서는 숨을 곳이 별로 없거든요. ‘무대’라는 공간은 우리에게 재밌는 곳이잖아요. 결코 무섭거나 두려워해선 안 되겠죠. 늘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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