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험한 골짜기 헤치고 막걸리 한 사발 꿀꺽! 고난의 기억도 녹네∼

입력 2011-01-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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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몸도 마음도 사르르∼
서산의 명물 지곡막걸리를 대를 이어 지켜가고있는 지곡양조장을 방문한 자전거식객팀. 양조장 발효실 앞에 마련된 툇마루에 돼지고기 두루치기, 망둥어, 갓김치, 빈대떡 등 주안상이 차려졌다. 오른쪽 끝(흰색 상의)이 양조장 사장 하광철씨다.

아침 식사는 우럭젓국이 준비됐다. 우럭젓국은 우럭을 손질해 소금간을 넉넉히 해서 말린 것을 고춧가루 없이 매운 풋고추와 파, 마늘을 넣고 끓인 것으로 게국지보다 훨씬 대중적인 남서해안의 음식이다. 생선이 소금간과 건조 과정을 거치면 회나 생물 찌개와는 완전히 다른 제3의 맛을 내는데 특히 우럭을 말린 것에 우럭젓국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은 그만큼 발효에서 오는 맛이 여타 생선에 비해 깊기 때문인 듯 하다. 아침에는 아무래도 입맛이 쓰게 마련인데 뜨거운 우럭젓국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결국엔 밥까지 말아먹을 만큼 최고의 해장음식이었다.


우럭젓국으로 속 채우고
서산을 겨냥해 남진
광폭 타이어로 바꾼 멤버들
증기기관차 굴뚝같은 입김이…

안되겠다, 자동차도로 버리고
목적지까지 가는 산길 발견
길이 아니면 가지 말랐거늘
전국일주 이후 최악의 상황이
내 눈앞에 펼쳐지네…



# 우럭젓국으로 시작한 웅도의 아침…서산을 향해 가는 길

웅도를 빠져나가는 길은 오전 8시에 열렸다. 밀물에 끊겼다가 썰물에 다시 이어지는 섬길은 왔으면 또 떠나야하는 부초 같은 자전거 나그네들에게는 버스터미널의 배차시간표처럼 올 때와 떠날 때를 알리는 여정(旅程)의 모래시계다. 하지만 굴을 캐서 살아가는 섬사람들에게는 노동의 시간표다. 물이 빠져 바다가 넓게 드러난 동안 서둘러 굴을 캐서 물이 밀려오기 전에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섬이 육지와 연결될 때는 굴을 캐야하고, 굴을 다 캐면 섬을 떠날 길이 끊기는 것은 웅도 사람들에게 일종의 숙명처럼 보였다. 한기가 뼛속까지 스미는 바람 찬 갯가에서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조새를 부지런히 놀려 굴을 캐는 것으로 일이 끝나면 좋으련만, 캐낸 굴을 까서 알맹이를 모으고 그걸 다시 갯가로 가져가 바닷물에 씻어내야 비로서 돈으로 바꿀 수 있다. 굴 한 점이 우리의 입으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 지난하고 가혹하다.

우리는 웅도 섬길을 자전거로 빠져나오며 굴 한 점에 실린 삶의 무게, 굴 한점에 서린 비수 같은 찬 바람을 떠올렸다.

자전거 식객들의 이동 궤적은 웅도에서 고구재를 넘어 대산읍으로 흘렀다. 서산을 겨냥해 남진하면서 도로번호가 38번에서 29번으로 바뀌었다. 서산길은 제법 긴 언덕이 많고 아스팔트길을 피할 우회로가 많지 않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트래드가 큰 광폭 타이어로 바꾼 뒤로는 언덕을 만날 때마다 힘겹다. 2.35인치의 광폭 타이어는 타이어 자체의 무게도 무겁지만 주행 저항이 커서 에너지 소모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허벅지가 터져나갈 듯 긴 언덕을 오를 때면 멤버들의 입에서 숨 가쁜 입김이 증기기관차의 굴뚝인 듯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어서 가끔씩 나타나는 잔설지대나 결빙구간을 지날 때는 확실한 접지력을 보장받았다.

1.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 했거늘…’ 대요리에서 지곡면사무소쪽으로 넘어가는 산길을 자전거를 끌고 넘는 허영만 화백. 자동차가 달리는 아스팔트길을 피하려다 점점 미궁같은 산 속으로 빠져드는 중이다. 사진|이진원

2. 엎친데 덮친격으로 길이 없는 험산에서 바퀴마저 고장났다. 새 튜브 교체 작업중인 필자. 얼굴에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사진|김경민



# 허영만 화백도 치를 떤 전국일주 최악의 난코스

지곡면 대요리를 지나며 자동차도로를 버리고 야산과 논밭으로 연결된 뒷길을 택했다. 먼지 많고 시끄러운 아스팔트길을 벗어나 호젓한 마을길로 들어서자 페달링에 힘이 실린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오늘의 목적지인 지곡양조장으로 연결되는 산길을 찾아냈으나 우리는 이 산길에서 자전거 전국일주 시작 이후 가장 힘든 경험을 하게 된다.

산길은 초입부터 심상찮았다. 지난 가을 태풍 곤파스에 정면으로 타격을 받은 탓에 아름드리 밤나무며 참나무들이 쓰러져 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한 시간 가까이를 타다가 끌다가, 결국 자전거를 들러 메고서야 능선에 도달했다. 능선상에 도착해 한참 지도를 살펴보고 있을 때 허화백과 나머지 멤버들이 도착했는데 모두들 땀에 범벅이 되어 오뉴월 개처럼 혀를 길게 빼물고 있다.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도, 요트로 영해 외곽선을 일주할 때도, 그랬지만 허영만 화백은 어지간해서는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힘들다고 고백했다가 노약자로 찍혀 전국일주팀에서 빼버리면 어떡하냐? 절대 말 못하지.”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털썩 주저앉는 그의 표정에는 ‘이거 못할 짓이다’라는 듯한 감정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우리가 돈을 좀 갹출해서 너한테 뇌물이라도 줄까? 그러면 좀 자주 쉬게 해줄래?”

앞장서 길을 찾는 임무를 맡은 내가 산길로 이어진 코스의 상황이 좋지 않자 길을 찾는데 골몰한 나머지 휴식 없이 줄창 내빼버리자 따라오느라 힘들었던 것이다.


자전거 여행 중 추수가 모두 끝난 간척지 논에서 자주 보게 되는 풍경이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커다란 알약처럼 보이는 원통형의 흰색 덩어리들. 빈 들판 여기저기에 놓여있는 이것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사료용 볏짚이었다. 알곡을 털어낸 볏짚을 원형베일러라는 기계로 거둬들여 플라스틱 성분의 포장재로 단단히 감아둔 것. 이렇게 압축해 묶어두면 약간 덜 마른 볏짚이 마치 메주가 뜨듯 안에서부터 숙성되어 부드러워지고 영양가도 높아져 소가 먹었을 때 소화가 잘 되는 사료가 되는 것이다.

볏짚 김치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 정식 명칭은 ‘곤포사일리지’(Bale Silage, 또는 Balage). 원래는 외국에서 수입해왔으나 이제는 국산화 되어 대규모 논에서는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곤포사일리지가 생겨난 뒤 사라진 풍경은 볏짚을 높다랗게 쌓아놓은 노적가리. 요즘 구제역으로 전국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소를 먹이기 위해 만들어둔 곤포 사일리지를 먹을 소가 과연 남아날지 의문이다. <삽화>

“혼자만 통과 못하는 거야?”
산길로 들어서자 태풍 곤파스에 쓰러진 나무들이 곳곳에서 앞을 가로 막았다. 기울어져있는 밤나무 아래를 자전거를 탄 채 통과하려던 한 대원이 마지막 순간 배낭이 걸려 실패하는 것을 허영만 화백 등이 지켜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다. 사진|김경민



지옥코스 벗어난 우리 몰골…“산짐승이다!”


능선길 제쳐놓고 계곡길 선택
태풍에 넘어진 나무들과
질퍽한 늪지에 발목까지 빠지고

드디어 지곡막걸리 양조장 도착
3대째 내려온 시큼한 막걸리와
돼지고기 두루치기에 넋 나가
주안상 달려들어 배부터 채우자!


능선에서 쉬면서 지형을 살펴보자니 능선길은 길고, 바로 아래로 비록 잡목이 우거져있으나 희미하게 사람이 다닌 흔적이 있는 계곡길은 곧장 지곡면사무소 뒤쪽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지친 대원들을 이끌고 코스를 빨리 마칠 욕심에 넓고 확실한 능선길을 제쳐두고 희미한 계곡길을 택했다. 스마트폰의 위성지도로 보니 능선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4분의 1쯤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최악이었다. 명색이 산악지형에 걸맞게 만들어진 MTB인만큼 이 정도 내리막길쯤은 총알처럼 쏟아져내려갈 수 있을 것으로 보았으나 산길은 내려갈수록 점입가경. 초입에서 보였던 사람이 다녔던 흔적은 어느새 사라졌고 태풍에 넘어진 나무뿐 아니라 빽빽한 잡목이 자전거와 옷에 걸려 타고가기는커녕 끌고 가는 것도 버거웠다.

만일 현명한 네비게이터였다면 여기서 포기하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가 정상적인 산길로 코스를 변경했을 것이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이미 내려온 거리가 아까웠던 것이다.

골짜기를 따라 잡목의 밀림을 뚫고 지지부진 고도를 낮춰가다가 설상가상의 상황을 만났다. 나무들이 뒤엉켜 쓰러져 있는 길을 트라이얼 선수라도 되는 양 위태롭게 내려가던 중 앞바퀴에서 ‘퍽’ 하는 폭음이 들려온 것이다.

날카로운 나무 뿌정귀에 찔려 펑크가 난 것으로 생각했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자전거 바퀴의 금속 공기주입구가 나무에 부딪히며 부러져나가 있다.

펑크는 고무를 덧대어 접착제로 때우면 되지만 밸브가 부러졌으니 튜브 자체를 교환해야 했다. 낙엽이 발목까지 빠지고 비탈져 제대로 서있기도 힘든 비탈진 산길에서의 튜브 교체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하지만 수난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골짜기가 내려갈수록 질퍽한 늪지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발바닥이 젖더니 기어이 발목까지 진흙에 빠졌다. 여기저기서 발이 진흙에 박혀 나뒹구는 대원들이 속출. 뻘밭 같은 골짜기를 벗어나보려 해도 잡목이 너무 빽빽해 달리 갈 곳이 없다.

지도상으로는 불과 1.5km인 거리를 개미귀신 집에 빠진 개미처럼 버둥거리며 천신만고 끝에 내려와 산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을 때 우리의 몰골은 산짐승, 또는 패퇴하는 빨치산에 가까웠다.

허영만 화백은 “야, 아까 뇌물이라도 주자고 한 것 취소다. 아예 쟤를 여기다 묻어버리고 가자”라며 치를 떨었다.

썰물때마다 드러나는 웅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길을 건너고 있는 자전거식객들. 이 길은 하루 두차례 간조시에만 열린다.



# 막걸리 한 사발, 두루치기 한점에 ‘고난’의 기억 저멀리…

서산-태안에서만 판매되는 지곡막걸리 양조장에 도착했을 때 예정에 없이 산길을 헤맨 뒤끝인지라 허기는 극에 달해 있었다. 양조장에 들어서자마자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양조장 주인 내외가 준비해둔 돼지고기 두루치기 냄새에 넋이 나갈 지경. 인사를 나누는 둥 마는 둥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고 주안상에 달려들었다.

일제시대부터 이어져온 지곡막걸리는 쌀만 쓰는 순곡주인데다 보존제를 넣지 않고 옛 탁주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막걸리 애호가들 사이에 정평이 나있다.

최근의 막걸리 열풍을 타고 전국적으로 꽤나 이름이 알려져 있으나 판매구역을 여타 도시로 확대하지 않는 것도 변질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지곡양조장 사장인 하광철씨(58)의 부친이 창업한 뒤 이제 하씨의 장남인 하상원씨(30)까지 3대째 막걸리에 집중해오고 있다.

시큼하고 아련한 막걸리와 집에서 담은 고추장으로 볶은 돼지고기에 방금 전까지 길도 없는 산 속을 자전거를 끌고 짐승처럼 헤매던 고난의 기억은 눈 녹듯 사그라들었다.

거기에 가을에 낚시로 잡아 말렸다 찜으로 쪄낸 망둥어와 잘익은 갓김치…. 막걸리 잔이 오갈수록 허화백의 얼굴도 불그스레하게 익어갔다.



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timbersmith@naver.com
사진|이정식 스포츠 포토그래퍼 moto14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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