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피플] 아디 “선수생활 떠올리면 눈물…코치로 더 큰 환희 느끼고 싶다”

입력 2014-02-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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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서울의 레전드 용병 아디가 17년간의 프로생활을 마감하고 올 시즌 코치로 새롭게 축구인생을 시작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최용수 감독의 제안에 코치직을 수락했다. 스포츠동아DB

■ FC서울 선수에서 코치로 새 출발 아디

한 팀서만 8년 뛰고 지도자 된 용병 1호
외국인선수 관리와 수비 코치 역할 맡아
까다로운 데얀도 고분고분했던 군기반장
“잘 통하는 최용수 감독께 많이 배울 것”


FC서울 아디(38)코치 얼굴에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아직도 선수생활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 듯한 표정이다”는 ‘질문을 던진 직후였다. 서울에서 작년까지 8시즌 동안 264경기를 뛰며 외국인선수 한 클럽 최다출전 기록을 갖고 있는 철각, 5번이나 K리그 베스트11에 선정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보유한 철벽수비의 주역, K리그 역사상 가장 욕심 많고 개성 강한 외국인 공격수 데얀(장쑤 세인티)을 꼼짝 못하게 했던 군기반장. 그런 아디가 인터뷰 도중 흐느꼈다. 서울은 작년 말 아디에게 선수 은퇴와 코치직을 제안했다. 외국인선수가 한 팀에서 8년을 뛰는 것도 흔치 않은 일. 코치까지 하는 것은 아디가 최초다. 그만큼 서울은 아디를 각별하게 생각했다. 아디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17년간의 선수 생활을 끝내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아디는 1∼2년 더 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한 달 이상 고심한 끝에 코치직을 수락했다. 아디가 서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데 최용수 감독의 영향도 컸다. 아디는 “최 감독과는 늘 대화한다. 서로 이해하고 뭘 원하는지 아는 사이다. 코치로서 최 감독과 함께 선수 때보다 더 많은 환희를 느끼고 싶다. 최 감독이 나를 인도한 부분이 컸다”고 털어놨다. 2014시즌 지도자로 새 출발을 앞둔 아디 코치를 2일 구리 챔피언스파크 훈련장에서 만났다.


-코치 제안을 받아들인 결정적인 이유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나는 앞으로 1∼2년 더 충분히 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코치 계획이 없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나를 생각해준 것에 감사했고, 서울과 함께 한 지난 8년의 역사를 앞으로 이어가고 싶었다.”


-다른 K리그 팀에서 뛰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나.

“상상해본 적이 없다.”


-선수생활에 향수가 아직 남아있는 듯한 표정이다.

“솔직히 아직 뛰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내 아내와 아들, 딸 모두에게 정말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잠시 울음) 미안하다. 이해해 달라.”


-화제를 바꿔보자. 한국말은 어느 정도 하나.

“조금 이해하는 정도다. 선수들과 대화하고 코칭스태프 이야기도 제대로 알아들으려면 빨리 익혀야 한다. 열심히 배우고 있다.”


-귀화할 생각은 없었나.

“솔직히 한국에서 이렇게 오래 있을 줄 몰랐다. 한국에 오기 전 중국에서 뛸 때 귀화 제안을 받은 적은 있었다.”


-2006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첫인상은.

“오래 있기 어려울 것 같았다. 처음에는 한국 사람들의 마음도 닫혀 있다고 생각했다. 또 윗사람에게 예를 강조하는 문화도 이해하지 못했다. 음식도 너무 매웠다. 심지어 햄버거도 맵더라.(웃음) 하지만 지금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좋다. 내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보다 더 예의바르다는 말을 듣는다. 매운 음식도 좋아하게 됐다. 딸아이는 오히려 브라질 음식을 안 먹으려고 해 큰일이다.”


-코치로 몇 차례 훈련을 했는데 어떤가.

“선수들도 나도 코치에 대한 인식이 아직 덜 된 듯 하다. 형에서 코치로 불리니 나도 어색하긴 하다.”


-가장 말을 안 들을 것 같은 선수는.

“에스쿠데로다. 하하. 아디 코치라고 부르면서도 재미있다는 듯 씩 웃고 있더라. 앞으로 관리에 좀 들어 가야할 것 같다.”


-외국인선수 관리와 수비 코치 역할을 맡았는데. 외국인선수 관리에 대한 나름 원칙이 있다면.

“축구 뿐 아니라 축구를 잘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적응해야 할 부분이 있다. 언어나 문화 같은 것들이다. 이런 부분을 알려주려 한다. 또 선수 가족들에게 신경 쓰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데얀(장쑤 세인티로 이적)처럼 개성 강하고 욕심 많은 선수도 아디 앞에서는 공손했다고 하던데. 그 비결은.

“사실 데얀은 정말 자기 의견이 강했다. 천성이 그랬다. 여기서도 자기 생각대로 안 되면 말이 참 많았다. 하지만 그의 생각을 한꺼번에 바꾸기보다 불평을 하나하나 들어주고 이해하면서 차분하게 타이르듯 대화하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서울에서 가징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제주와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이다.(2010년) 후반전 결승골을 넣었고, 우리 팀이 우승했다. 가끔 자다가도 그 때 기억이 난다. 사실 그 때 크게 다쳐서(그해 10월 광대뼈 함몰되는 큰 부상당했지만 챔프전에 출장) 게임 못 뛸 줄 알았는데 회복이 빨랐다. 부상이야 어찌됐든 일단 게임을 뛰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최용수 감독이 2006년 플레잉코치로 올 때 아디가 입단했다. 최 감독이 플레잉코치, 코치, 수석코치, 감독대행을 거쳐 감독까지 하는 모습을 옆에서 모두 지켜봤다. 아디에게 최용수 감독이란.

“좋은 관계로 늘 대화한다. 서로 이해하고 뭘 원하는지 아는 관계다. 코치로서 최 감독과 함께 선수 때보다 더 많은 환희를 느끼고 싶다. 최 감독이 걸은 길을 쭉 봤는데 정말 많은 노력과 희생을 요구하더라. 최 감독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코치 제안을 받아들이는 데 최 감독이 나를 인도한 부분이 컸다.”

구리|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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