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피보다 진하다…유럽축구의 ‘순혈주의’ 무너지는 추세

입력 2017-04-0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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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한 프랑스 대표팀.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프랑스·독일, 이민자 출신 대표팀 발탁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가 지난 달 26일 막을 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은메달을 획득했다.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이런 쾌거에는 귀화 선수들의 역할이 컸다. ‘순혈주의’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귀화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의 이와 같은 호성적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축구장에서도 귀화 혹은 국적선택은 오랜 논란거리다. 월드컵이라는 대형 국가 대항전 이벤트가 있는 축구는 애국심, 순혈주의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 축구에서 순혈주의 장벽은 90년대 말부터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프랑스는 1998년 자국에서 월드컵을 개최하게 되자, 순혈주의를 버렸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4강 이후 월드컵 본선 진출조차 2회 연속으로 실패하자 내린 결정이었다.

이후 아프리카 알제리계 이민자 출신인 지네딘 지단을 비롯해 다비드 트레제게(아르헨티나), 패트릭 비에이라(세네갈), 드사이(가나), 튀랑(과달루페) 등 해외 이민자 출신 선수들이 프랑스 대표팀으로 발탁되었다.

프랑스의 과감한 변화는 성공적이었다. 프랑스는 자국에서 열린 1998년 월드컵과 2년 뒤 유로 2000을 연달아 재패하며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프랑스의 사례는 축구계 순혈주의 타파의 성공적인 모델이 되었다.

20세기까지 만해도 ‘게르만 순혈주의’는 독일 축구를 지배하는 정서였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명단도 독일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선수로만 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차군단’ 독일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8강 탈락, 유로 2000에서는 조별 리그 세 경기에서 단 한 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한 채 조기 탈락하면서 암흑기에 빠졌다. 독일 대표팀이 ‘녹슨 전차’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된 것도 이때였다.

위기를 극복하고자 독일은 2000년대 들어 ‘게르만 순혈주의’를 과감하게 타파했다. ‘독일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만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규정을 폐지하고, 귀화선수와 이민자 후손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펼쳤다. 미로슬라프 클로제(폴란드), 루카스 포돌스키(폴란드), 메수트 외질(터키), 사미 케디라(튀니지), 제롬 보아텡(가나) 등을 대표팀으로 선발하며 독일은 축구 개혁을 시작하였다.

독일 대표팀 외질-보아텡-케디라(왼쪽부터).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이러한 ‘탈게르만 순혈주의’는 독일 축구 부활의 원동력이 되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준우승, 2006년 독일 월드컵 4강, 유로 2008 준우승, 2010년 남아공 월드컵 4강, 유로 2012 4강, 2014 피파 월드컵 우승, 2016 유로 4강. 21 세기 들어 모든 메이저 대회에서 4강 이상에 오르는 대기록을 세우며 전차군단의 부활을 알렸다.

다중국적이 있는 축구 선수들은 애국심보다 현실적인 이유로 대표팀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브라질 출신 귀화 선수들이 많다. 주전 경쟁에서 밀려 대표팀에 선택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대표를 선택한 페페와 데쿠, 스페인 국적을 선택한 마로코스 세나와 디에고 코스타, 크로아티아 대표팀을 선택한 에두아르두 실바 등이 있다.

이미 타 종목에선 순혈주의가 옅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팀 역시 평창 올림픽을 맞아 동계 스포츠를 중심으로 교포 2·3세 선수들이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월드컵에서 다양한 피부색의 대한민국 대표팀을 만나는 것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임수환 스포츠동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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