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용 기자 흉상, 손기정 동상 옆에 설치

입력 2017-08-25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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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1936년 일장기 말소사건 주역’ 동아일보 이길용기자 흉상 제막식

일장기 지운 손기정 사진 게재로 옥고
8월 27일부터 동아일보 무기한 정간
해방 이후 황금사자기 고교야구 창설
한국체육 근대화 위해 선도적인 역할


일제 강점기 항일투쟁에 앞장선 언론인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의 흉상이 손기정 동상 옆에 나란히 설치된다. 1936년 그 유명한 ‘일장기 말소 사건’의 두 주인공이 무려 81년 만에 다시 한 자리에 서게 됐다.

사단법인 한국체육언론인회와 한국체육기자연맹은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체육진흥공단, 대한체육회 등의 후원을 받아 제작한 이길용 기자의 흉상 제막식을‘일장기 말소 사건’81주년을 맞는 8월 25일에 진행한다. 행사는 서울 중구 손기정로에 있는 손기정 공원과 기념관에서 열린다. 흉상 제막식과 함께‘이길용 기자의 스포츠와 시대정신’이라는 주제로 포럼도 열린다.

한국체육언론인회와 한국체육기자연맹은 시대정신을 일깨우고, 한국체육 근대화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이길용 기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비록 많이 늦었지만 흉상을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체육관련 기관과 단체의 도움 뿐 아니라 독지가의 후원을 받아 4월부터 흉상 제작에 들어갔다.

흉상은 가로 60cm, 세로 40cm, 높이 190cm 크기다. 서울시 미술장식 심의위원을 맡고 있는 조각가 이용철 씨가 제작했다.


동아일보 체육주임 이길용(당시 37세) 기자는‘일장기 말소 사건’을 주도했다. 동아일보는 일제 강점기였던 1936년 8월 9일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일장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금메달을 획득한 손기정의 소식을 호외 등으로 발 빠르게 전했다. 이후‘조선의 아들 손기정’이라는 시리즈기사를 보도했다. 그러던 8월 25일 동아일보는 2면에 손기정이 올림픽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사진을 보도하면서 유니폼에 새겨진 일장기를 보이지 않게 처리한 뒤 내보냈다. 독자들은 크게 반겼지만 일제는 분노했다. 결국 동아일보는 8월 27일부터 무기한 정간을 당했다.

‘일장기 말소 사건’에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던 이길용 기자와 현진건 사회부장 등 8명은 악명 높은 종로경찰서로 연행돼 갖은 고문에 시달렸고, 구속됐다. 동아일보는 9개월이 지나서야 다시 신문을 발행할 수 있었지만 이길용 기자는 일제치하에서 언론사 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

해방 이후 그는 동아일보로 복직해 사업부장을 지냈다. 이 기간동안 한국체육이 근대화되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동아일보가 여전히 주최하고 있는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창설한 이가 바로 이길용 기자다.

동아일보DB


이길용 기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는 한국체육기자연맹은 한국마라톤 성지인 손기정 체육공원에 이길용 기자 흉상을 설치함으로써 청소년들의 애국애족 의욕을 북돋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또 장기 침체에 빠진 한국마라톤에 국민적인 관심도가 높아지는데도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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