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1987’ 의사 이현균 “오연상 선생님,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

입력 2018-01-29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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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인터뷰] ‘1987’ 의사 이현균 “오연상 선생님,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

1987년 1월 스물두 살 대학생이 경찰 조사 도중 사망하고 사건의 진상이 은폐되자,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용기 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1987’.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부터 6월 민주항쟁까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했다.

‘1987’에서 시대의 영웅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자 노력한, 보통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1987’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실존 인물들을 모티브로 했다. 사건의 물꼬를 튼 서울지검 최검사(하정우)도 사건의 진실을 담은 옥중서신을 전달하는 교도관 한병용(유해진)도, 사건 축소 사실을 담은 옥중 서신을 내보내는 재야 인사 이부영(김의성)도 실존 인물에서 가져온 캐릭터다.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사건 현장의 진실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을 검안한 후 고민치사의 가능성을 최초로 제기한 오연상 의사다. 실존 인물의 이름을 영화에 그대로 썼다. 공연계에서 이미 연기력을 입증 받은 배우 이현균이 맡아 열연했다. 실제 사건에 실제 인물.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캐릭터를 이현균은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연기했을까. 이현균을 만나 ‘1987’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Q. 영화 ‘1987’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요.

A. ‘1987’ 조감독님이 우연히 제 연극 무대의 사진을 보고 실존 인물과 비슷한 모습을 보셨나 봐요. 조감독님을 통해 오디션 제안을 받았어요. 처음부터 오연상 역할이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오디션 당시에 네 개 정도 역할의 대본을 받았거든요. 오연상 역할만 영상을 한 번 더 찍었어요. 장준환 감독님의 고민 끝에 여러 배우들 사이에서 제가 캐스팅됐어요.


Q.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지만 자료가 많진 않아요. 어떻게 연구했나요.

A. 선생님이 어떤 심리와 마음의 갈등이 있었을지, 동기 부여의 계기는 무엇이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는 겪어본 적 없는 일이기 때문에 선생님의 인터뷰를 많이 찾아봤죠. 인터뷰를 통해 선생님의 마음을 보려고 노력했어요.


Q. 동작구 내과에 실존 인물을 찾아가볼 수도 있었을 텐데요.

A. 찾아가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볼까 고민도 했어요. 그런데 어떤 부분에서는 독이 될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자칫 제가 선생님을 따라하고 흉내 내는 게 될까 봐요. 나 스스로 고민하고 감독님과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Q.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 본 선생님의 마음은 어떤 모습이던가요.

A.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옳은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하셨더라고요. 선생님뿐 아니라 영화에 나오는 실존 인물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본분을 지키신 거죠. 그 마음을 계속 생각했어요.



Q. 살을 일부러 찌웠다고 들었어요.

A. 외적으로 비슷한 느낌을 내기 위해서 살을 찌웠어요. ‘1987’ 분장 선생님이 오연상 선생님을 찾아가서 머리와 안경 등 선생님의 스타일을 준비하셨더라고요. 분장을 받았는데 진짜 선생님의 느낌을 받았어요. 신의 한 수였죠. 덕분에 제가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죠.


Q. 완성작을 본 오연상 선생님은 무슨 말씀을 하셨나요.

A. 영화를 보기 전에는 뵀는데 시사회 후에는 못 뵀어요. 실망하셨거나 별로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전해들은 바도 없는데 선생님의 반응이 저도 되게 궁금해요.


Q. 세면대 앞에서 기자에게 진실을 전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A. 재촬영 한 장면이에요. 인물이 고민하는 지점이 보여졌으면 해서 감독님과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찍었는데 생각보다 잘 안 나오더라고요. 보통 사람이 그런 결정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잖아요. 인물의 표정과 심리가 드러나야 하죠. 재촬영 때 타이트 바스트샷으로 찍었는데 잘 나온 것 같아요. 감독님께 감사해요.


Q. 장준환 감독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A. 집요하면서도 따뜻한 분이었어요. 배우가 자유롭게 할 수 있게끔 해주면서 더 끌어내주시더라고요. 배우의 생각을 많이 물어봐주셨어요.


Q. 스크린 데뷔작 ‘감시자들’(2013) 이후 두 번째 영화예요. 두 작품 사이에 공백이 꽤 기네요.

A. 영화를 할 기회를 얻지 못했기도 하고 ‘감시자들’ 이후에 공격적으로 뛰어들 입장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죠. 공백기 동안 연극을 계속 하고 있었어요. 이제는 전문적인 회사에 들어왔으니 작품을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Q. ‘방법을 몰랐다’는 것은 마음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군요.

A. 연결고리가 없었어요. ‘감시자들’도 오디션이 아니라 단편 영화를 함께했던 감독님이 조의석 감독님과 동문이라 응원 차 촬영장에 갔다가 현장에서 캐스팅된 거거든요. ‘현균 씨 목소리가 좋네요. 영화에 잠깐 나오는 건데 같이 할 수 있을까요?’라고 하시면서요. 아버지도 제가 ‘감시자들’ 어디에 나왔는지 잘 모르시더라고요. 하하. 그래도 좋은 추억으로 남았어요.

이후로는 ‘해야 하는데’라는 마음만 있었지 방법을 몰랐어요. 이번 영화를 하면서는 이전과 다른 마음으로 임했어요. ‘1987’에 이어서 ‘상류사회’도 하게 됐는데 이후로도 계속 작품이 연결됐으면 좋겠어요. 금방 업계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있는데 잘 연결되어서 작품을 많이 하고 싶어요.


Q. 함께 해보고 싶은 감독님이나 배우, 장르가 있나요.

A. 정해놓지 않았어요. 누구든 만나면 좋은 일이고 즐거운 일이죠. 저는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Q. ‘1987’에 많은 배우들과 출연했지만 호흡은 되게 적었어요. 이중에서 한 명만 꼽자면요.

A. 욕심이지만 다 만나고 싶어요. 특히 유해진 선배와는 꼭 한 번 같이 해보고 싶어요. 같은 현장에서 이야기를 한 두 마디라도 해보고 느껴보고 싶어요.



Q. 20대 연극영화학과 시절부터 돌아보면 어떤 느낌인가요.

A.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싶어요. 많이 부족했던 부분이 떠올라요. 아직도 부족하지만 한 단계씩 오를 때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래도 조금씩 나아졌다는 것에 감사해요. 연기적인 성장 말고 개인적인 성장이요. 저를 일깨워준 분들에게도 고맙고요. 대단히 온 것도 아니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더 파이팅해서 가야겠죠.

고등학교 선생님 중에 현재 PD를 하는 분이 계세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버틴 너도 대단하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울컥하더라고요. 저는 제가 잘 버틴 게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어요. 주위에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제가 이 길을 계속 가도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려고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Q.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A. 저를 많이 알리고 싶어요. 많은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배우가 되겠다는 것보다는 작품이 주어지는 그 역할로 만나고 싶어요.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다 보면 제가 하고 싶은 연기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제가 되고 싶은 배우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영화도 드라마도 연극도 제가 잘 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여건이 되는 한 많이 참여하고 싶어요.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다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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