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의 칸&피플]베일 벗은 ‘공작’ 무거운 침묵과 뜨거운 박수 사이

입력 2018-05-12 1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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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20분 동안 객석은 숨죽였다. 냉전의 끝자락, 남북한에서 벌어진 첩보전을 담은 영화는 칸 국제영화제에 모인 관객을 그렇게 무거운 침묵 속으로 몰아넣었다.

남북한의 판문점선언 이후 더욱 긴박하게 흐르는 한반도 정세, 뒤를 잇는 동아시아의 치열한 외교전, 앞으로 열릴 첫 북미 정상회담까지. 최근 남과 북에서 벌어지는 북한 핵 폐기와 평화의 시대 선언으로 인해 세계의 시선이 한반도로 향해 있다.

바로 이 때 공개된 영화 ‘공작’(제작 사나이픽쳐스)을 향해 칸 국제영화제는 관심을 놓지 않았다. 세상과 함께 걸어가려는 영화와 영화제의 선택,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국시간으로 12일 오전 6시, 현지시간으로 11일 밤 11시 칸 국제영화제 공식부문인 미드나잇스크리닝을 통해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베일을 벗은 ‘공작’은 20여년 전 남북한에서 실제로 벌어진 첩보전을 과장하거나 덧붙이지 않고 ‘현실’에 충실해 완성해냈다. 실화이기에 더 아프게 다가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려운 작품. 처음 공개된 자리에서 전해지는 분위기는 ‘묵직한 침묵’ 그리고 ‘뜨거운 박수’였다.

영화가 상영된 2시간20분 내내 객석은 줄곧 침묵했다. 영화가 던지는 마지막 냉전시대의 차가운 공기를 그대로 전달받은 듯한 분위기. 보통 미드나잇스크리닝 부문은 칸 국제영화제를 통틀어 관객이 가장 자유롭게 작품을 관람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이로 인해 환호와 박수 웃음도 자주 터지지만 ‘공작’만큼은 예외였다.

침묵의 끝은 뜨거운 박수였다.

남과 북에서 벌어진 일들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결말에 이른, 엔딩에서는 오랜 침묵을 깬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번 영화로 처음 칸의 레드카펫을 밟은 황정민과 이성민, 주지훈은 감격한 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특히 이성민은 관객의 기립박수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도 보였다.


○“북으로 간 스파이에서 출발”

‘공작’은 한반도의 상황 인지가 없다면 사실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특히 해외 관객에겐 더 하다.

1993년 북한 핵 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진 한반도의 위기 고조,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당시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안기부가 벌이려던 이른바 ‘북풍 사건’ 등은 남북한의 특수한 정서와 상황을 알지 못하면 난해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게다가 기존 첩보전에서 익숙히 봐온 긴박한 상황 속 쫓고 쫓기는 추격전 등 액션도 찾아볼 수 없다. 담담하게, 때론 덤덤하게 1990년대 남북의 현실을 들여다본다. 때문에 칸에 모인 관객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 게 사실이다.

상영 뒤 만난 몇몇 관객은 뜻밖에도 “스토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한 이슈가 연일 세계 각국에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영향과 더불어 영화를 영화로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도 엿보였다.

연출을 맡은 윤종빈 감독은 “‘공작’의 시작은 북으로 간 스파이, ‘흑금성’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국내 첩보 사상 가장 성공적인 대북 공작으로 평가받는 이야기에 매료된 감독은 “현실적이고 과장되지 않은, 진짜 첩보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졌다”고도 했다.

영화는 정보사 소령 출신으로 안기부에 스카우트된 박석영(황정민)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통하는 그는 1993년 북핵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북한 고위층 내부로 잠입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그렇게 대북 사업가로 위장한 박석영은 베이징 주재 북한 고위 간부 리명운(이성민)에게 접근하고, 북한 권력층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안기부를 중심으로 집권여당과 북한 수뇌부 사이에 벌어지는 은밀한 거래를 감지한 그는 자신이 줄곧 지킨 신념이 흔들리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영화는 판문점선언의 시대로 통하는 지금, 우리가 불과 20여년 전 겪은 내적 외적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담아내면서 결코 지나칠 없는 메시지를 던진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더욱 흥미로운 영화임에도 분명하다.

칸(프랑스)|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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