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상’ 설경구 “수수께끼 같은 영화, 나도 외롭고 두려웠다”

입력 2019-03-18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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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설경구는 영화 ‘우상’을 촬영하면서 “외롭고 두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집요한 요구를 해오는 감독과의 작업에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고 했지만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시나리오 읽자마자 답답함 엄습
낯선 톤의 연기와 치열했던 현장
감독도 나도 서로에게 “돌아이”

2주 뒤엔 새 영화 ‘생일’도 개봉
불한당원 열렬한 응원 내겐 감동

“시나리오를 받을 때부터 친절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들었는데도 처음 읽을 땐 아주 답답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은 아니었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했다.” 배우 설경구(51)의 첫 반응도 관객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영화 ‘우상’(제작 리공동체영화사) 시나리오를 받아봤을 때 자신 역시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놨다. 20일 개봉하는 영화가 시사회 등을 통해 먼저 얻은 반응도 비슷하다. 은유와 사유를 넘어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해 받아들여야 할지 난해하다는 평가가 곳곳에서 나온다.

설경구도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는 노릇이다. 1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작품을 하는 동안 외로웠고, 어떤 면에선 두려웠다”고 했다.


● “우리 모두 몹쓸 병에 걸린 게 아닐까”

배우나 감독의 설명조차 듣지 않고 본다면 ‘우상’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긴 더 어렵다. 구성과 캐릭터 활용, 촬영 방식에 이르기까지 낯선 표현을 택해서이기도 하지만 좀처럼 눈치 챌 수 없는 ‘불친절한 속임수’가 곳곳에 포진한 탓이 크다. 그래서일까. 설경구는 개봉을 앞둔 요즘 영화와 관련해 쏟아지는 질문을 받고 이에 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인터뷰에서조차 GV(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우상’은 각기 다른 위치에서 살아가는 세 인물이 얽히고설키는 상황을 통해 인간이 지닌 맹목적인 믿음이 사실은 허상일 수 있다는 질문을 던진다. 설경구는 신혼여행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장애인 아들의 사건을 홀로 추적하는 아버지 유중식을 맡았다. 사고를 낸 장본인은 유력 정치인 구명회(한석규)의 아들. 정치인생에 위기를 맞은 구명회는 사건 당시 사라진 목격자 련화(천우희)를 찾아 나서고, 유중식 역시 며느리인 련화의 행방을 쫓는다.

영화 ‘우상’에서의 설경구.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설경구는 자신이 맡은 유중식이란 인물과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한 해석을 내놨다.

“중식은 이름 그대로 아침식사를 건너뛰고 점심에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처넣는 듯한 캐릭터이다. 장애를 가진 아들을 계속 챙겨야 하고, 아이를 잃어버려도 금방 찾을 수 있도록 서로 똑같이 머리카락을 노랗게 염색했다. 아들을 향한 극단적인 집착, 그 관계에 균열이 생기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다.”

설경구는 영화에서 갑작스러운 아들 사망 소식에 놀라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뒷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카메라는 그런 설경구의 뒷모습을 롱테이크 기법으로 비춘다. 그는 이 장면을 무려 20번 넘게 반복해 찍었다. “다시 한 번”을 주문하는 감독의 집요한 요청 탓이었다.

설경구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연출자 이수진 감독이 지닌 “집요함”을 설명했다.

“(천)우희 캐릭터는 눈썹을 밀어야 했는데, 얼굴 윤곽이 다 보이도록 눈썹에 청테이프를 붙였다가 뗐다. 감독도 눈썹을 밀었다. 내가 몇 개월간 계속 염색한 상태로 있어야 하니까 감독이 자기도 염색을 하겠다더라. 눈썹도 없는데 머리 색깔까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말렸다.(웃음) 여러 면에서 너무나 집요한 현장이었다.”

물론 감독의 세계에 믿음을 갖고 임한 설경구이지만 때때로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고 돌이켰다.

“감독이나 나나 서로에게 ‘돌아이’라고까지 했다. 하하! 술자리에서 감독을 들이받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부 농담은 아니다. 이 영화는 떠먹여주지 않아 불편할 수 있고, 나 역시 해보지 않은 톤의 연기를 해야 했다. 집요했던 모든 작업을 끝낸 뒤 세상 사람들 모두 몹쓸 병에 걸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수진 감독과 ‘우상’을 넘어 또 다른 영화로 함께 작업할 뜻이 있는지 묻자 설경구는 “내 대답은 쉽다”고 했다. “어디 한 번 갈 데까지 가 보자.(웃음) 이해될 때까지 가보고 싶으니까 또 같이할 거다.”

배우 설경구.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 “팬들로부터 얻은 감동, ‘불한당원’은 좋은 친구들”

설경구는 ‘우상’을 내놓고 불과 2주 뒤 또 다른 주연영화 ‘생일’로 다시 관객 앞에 선다. 기복 없이 꾸준하게 영화에 참여하면서 세상과 소통해왔지만 최근 그의 행보는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이유는 ‘불한당원’의 전폭적인 응원 덕분이다.

2017년 영화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의 열혈 지지자들은 설경구를 중심으로 모여 ‘불한당원’이란 이름의 팬덤을 형성했다. 이에 힘입어 설경구는 50대 배우 가운데 유일하게 아이돌 스타와 비교될 만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팬미팅까지 열고, 지하철 옥외광고판에 얼굴이 도배되는 등 ‘지천명 아이돌’로 불린 지도 벌써 2년째다.

“눈물나고 감동적일 만큼 ‘불한당원’의 응원을 피부로 느낀다”는 그는 “‘불한당원’은 아주 좋은 친구들이고, ‘불한당’도 참 어마어마한 영화”라고 했다. 설경구는 ‘불한당’을 함께 만든 감독, 주요 스태프, 제작진과 다시 의기투합해 영화 ‘킹메이커:선거판의 여우’ 촬영을 곧 시작한다.

“스태프 일정이 워낙 빡빡해 작년 12월에야 소집해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다들 다른 영화로부터 여러 유혹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다시 뭉쳤다. ‘같이 하고 싶다’는 이유다. 우리끼리는 팀을 ‘건또’라고 부른다. ‘건강한 또라이(돌아이)’라고. 하하!”

늘 다른 이야기를 찾고, 새로움에 가진 호기심 덕분에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간 설경구이지만 그를 더욱 큰 보폭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존재는 “사람”이다.

“다음에 출연할 영화는 ‘자산어보’이다. 이준익 감독을 정말 좋아한다. 사극이고 심지어 흑백 저예산이라는 말을 감독으로부터 들었지만 뭐 어떤가. 사람이 중요한데. 사극영화는 처음이다. 예전엔 ‘나중에 하자’고 미뤘는데, 나이가 드니까 마음이 급해진다. 갓을 쓴 내 모습이 궁금하다. 하하!

● 설경구

▲ 1968년 5월1일생
▲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 1993년 연극 ‘심바새매’ 데뷔
▲ 1996년 영화 ‘꽃잎’
▲ 2000년 영화 ‘박하사탕’·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 2002년 영화 ‘공공의 적’·청룡영화상·대종상 남우주연상
▲ 2003년 ‘실미도’ 첫 1000만 영화
▲ 2005년 ‘공공의 적2’
▲ 2008년 영화 ‘강철중:공공의 적 1-1’
▲ 2009년 영화 ‘해운대’
▲ 2013년 영화 ‘소원’·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최우수연기상
▲ 2017년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1987’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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