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신인감독’ 조철현, 한글 창제 이야기 꺼낸 이유는?

입력 2019-06-25 1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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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현 감독이 25일 서울 중구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열린 영화 ‘나랏말싸미’ 제작보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영화 일을 시작한 지 30년 만에 감독의 ‘탈’을 쓰고, ‘감독 역’을 맡았습니다.”

한국영화의 기획과 제작, 시나리오 작가까지 경력 30년에 이르는, 올해 예순의 신인감독이 탄생했다. “감독 역을 맡았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조철현 감독이다.

7월24일 연출 데뷔작 ‘나랏말싸미’(제작 영화사 두둥)를 내놓는 그는 15년간 한글 창제에 관련한 이야기를 준비한 끝에 그 결실을 앞두고 있다.

영화 연출은 처음이지만 이력은 화려하다. ‘황산벌’ ‘불신지옥’ ‘님은 먼 곳에’ 등 영화를 제작했고,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사도’ 등 시나리오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 “훈민정음 창제, 왜 비밀 프로젝트였을까”

‘나랏말싸미’는 조선 초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에 얽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극심한 고통을 견디면서 훈민정음을 만들려 했던 왕의 고뇌와 불굴의 신념, 그 여정에 함께했지만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다.

송강호가 세종대왕 역을 맡아 ‘관상’ ‘사도’에 이어 다시 사극에 도전하고, 박해일이 ‘조선왕조실록’ 등 정사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신미 스님 역을 맡았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인 ‘사도’ 등을 통해 역사에 기반을 둔 정통사극의 시나리오를 써온 조철현 감독은 “우리 역사 중 가장 위대한 성취는 팔만대장경과 훈민정음이라고 생각해왔다”고 했다. ‘나랏말싸미’가 출발한 배경이다.

개봉을 앞두고 25일 오전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만난 조철현 감독은 “훈민정음을 영화로 만들고자 결심한 건 15년 정도 됐다”며 “10여년 동안 한글과 관련한 책이 출간되는 날이면 출판 당일 서점에서 책을 사 읽었다”고 돌이켰다. 이어 “몇 년 전 팔만대장경과 훈민정음 사이에 신미 스님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 부분에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

여기에 “개인적인 이유”도 작용했다. 감독은 영화를 기획한 과정을 이야기는 도중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의 평생 한이 한글을 모르는 것이었다”고 말하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고 이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영화 ‘나랏말싸이’의 한 장면.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 “신미 스님의 순례길 따라 걷는 여정”

익히 알려진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영화로 다시 만드는 과정은 철저한 고증은 물론 책임과 사명까지 가져야 하는 ‘모험’이다.

조철현 감독은 “역사상 위대한 업적인 훈민정음 창제가 왜 비밀 프로젝트였을까, 나라의 문자를 만드는 게 왜 비밀이어야 했나에 주목했다”며 “이 영화는 한글을 창제하는 원리를 씨줄로 하고, 세종대왕과 신미 스님, 소헌왕후 그리고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인연을 날줄로 삼아 완성한 영화”라고 밝혔다.

고증은 철저하면서도 집요해야 했다. 감독은 ‘조선왕조실록’에는 그 이름이 등장하지 않지만 실존한 인물인 신미 스님의 존재를 알게 된 직후 언어학자와 종교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자문을 구하기 시작했다.

또 영화 기획자인 우석훈 박사(책 ‘88만원세대’의 저자), 시나리오 집필에 동참한 이송원 작가와 팀을 이뤄 ‘조선왕조실록’을 샅샅이 살피고, 훈민정음 관련 논문과 영상 자료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장료를 망라해 고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조철현 감독은 “신미 스님이 훈민정음 창제를 위해 거친 곳으로 추정되는 양주 회암사, 속리산 복천사, 강화도 정수사, 안동 봉정사, 합천 해인사까지 신미의 순례 길을 따라 걸으면서 신미와 세종의 인연을 느끼려고도 했다”고 담담히 돌이켰다.

배우 박해일과 조철현 감독, 배우 전미선, 송강호(왼쪽부터)가 25일 서울 중구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열린 영화 ‘나랏말싸미’ 제작보고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송강호 ‘사도’에 이어 두 번째 만남

송강호는 2015년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사도’에서 작가인 조철현 감독과 작업했고, 이번 ‘나랏말싸미’로 다시 만났다.

“사극이 주는 웅장함과 막중함 가운데서도 우리 조상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편안함이 있다”는 송강호는 “조철현 감독이 갖고 있는 언어의 깊이, 묵직함을 공유하는 작업이 행복했다”고 만족을 표했다.

연출 데뷔작에서 송강호와 박해일 그리고 소헌왕후 역의 전미선까지 연기파 배우들을 캐스팅한 건 ‘행운’이다.

조철현 감독은 “내 능력이 아닌 제작자의 능력”이라면서도 각 배우를 꼭 캐스팅하고 싶던 이유를 하나씩 짚었다.

“시나리오를 구축하면서 자꾸 만원권 지폐를 보는 버릇이 생겼어요. 거기 계신 분(세종대왕)과 여기 계신 분(송강호)이 뭔가 통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하하! 신미 스님 역의 박해일 배우는 송강호의 소개로 만났어요. 캐릭터와 이야기 설명을 듣더니 그 자리에서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삭발까지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건 문제가 아니다’고 하더라고요.”

전미선을 향해서는 더욱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소헌왕후는 영화에서 세종과 신미 스님을 연결하는 고리이자 두 인물을 독려하면서 한글을 창제하게 이끄는 ‘여장부’의 면모를 드러낸다.

조철현 감독은 전미선이 송강호, 박해일과 2003년 출연한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을 거론하면서 “그 영화에서 남자친구에게 영양제를 놔 주는 장면의 전미선을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팬이 아닌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준비한 프로젝트인 만큼 이날 제작보고회에서 조철현 감독은 여러 질문에 진지하면서도 공들여 답했다.

아직 영화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상상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맞췄느냐는 질문에 “역사와 허구 사이에 ‘서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교한 역사에 기반을 둔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건 서사일 뿐”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 영화에는 스포일러가 중요하지 않다”며 “유튜브만 열어도 한글 창제 관련 정보가 넘치지 않느냐. 그러니 영화를 보고 내용을 주변에 널리 알리면서 같이 이야기하길 바란다”는 속내도 드러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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