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을 자유” 혐오공격 표적된 女연예인들

입력 2019-10-01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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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 정유미가 9월30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영화 ‘82년생 김지영’ 제작보고회에 참석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82년생 김지영’에 쏟아지는 여성 혐오 공격…왜?

아이린·수영 등 팬들 ‘탈덕’ 위협
정유미, 평점 테러 등 1년째 피해
RM엔 무반응…이중적 공격 비판


“자유롭게 읽을 자유, 누가 검열하는가.”

배우 김옥빈이 최근 동료 연기자인 서지혜의 SNS에 남긴 글이다. 서지혜가 9월26일 SNS에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표지와 함께 “책 펼치기 성공”이라고 쓴 직후 일부 누리꾼이 몰려와 ‘페미니스트 흉내’ ‘페미 짓’이라는 공격을 퍼붓자 김옥빈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2016년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언급하는 여성 연예인을 향한 혐오성 공격이 멈추지 않고 있다. 1982년 태어난 김지영의 평범해 보이는 삶을 통해 여성이 겪는 차별과 불평등을 다룬 소설은 100만부가 팔린 화제작이다. 하지만 일부 누리꾼은 ‘성차별을 역으로 조장한다’고 주장하며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 왜 여성 연예인에게만?

문제는 혐오성 공격이 줄곧 여성 연예인에만 향한다는 점이다. 서지혜에 앞서 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은 지난해 팬미팅 도중 “요즘 읽은 책”으로 ‘82년 김지영’을 언급했다 남성 팬들의 ‘탈덕’(팬 탈퇴) 선언에 직면했다. 소녀시대의 수영도 방송에서 책 이야기를 꺼낸 뒤 공격을 받았다. 반면 2017년 “시사하는 바가 남달라 인상 깊었다”고 언급한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을 향해서는 아무런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여성에게만 집중된 ‘이중적 공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여성 연예인이 인기를 바탕으로 사회적 성공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 분위기 속에서 성적 차별로 인한 피해자임을 내세운다거나, 여성 주체적 시각의 확산을 ‘역차별’로 바라보려는 일부 누리꾼의 ‘여성혐오’적 시선이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페미니즘에 대한 일부 남성의 반발심이 커진 가운데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됐다”며 “지금처럼 악의적인 혐오 공격이 반복되면 여성 연예인들이 페미니즘 키워드를 피해가거나 목소리를 주저하게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사회를 건전하지 않은 쪽으로 몰고 가는 현상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정유미 “제대로 만드는 일, 우리의 일”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싸고 1년째 혐오 피해를 입은 배우도 있다. 소설을 옮긴 영화의 주인공 정유미이다. 지난해 9월 영화 출연을 처음 알린 직후 일부 누리꾼으로부터 ‘왜 남녀갈등에 불을 지피는 작품에 출연하느냐’고 공격받은 그는 인격모독에 가까운 악성 댓글에도 시달렸다. ‘정유미의 출연을 반대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영화가 이달 말 개봉하기로 하면서 날선 시선은 다시 불붙고 있다. 포털사이트 영화 게시판에서는 작품을 보지도 않은 채 1점으로 평점을 도배하는 ‘평점 테러’까지 자행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에 참여한 배우와 제작진은 “지금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뜻을 모았다.

9월30일 서울 자양동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정유미는 “담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만들어 보여주는 게 우리의 일”이라며 “바르게 영화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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