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취재진·응원단·생중계 3無 평양 원정 “월드컵 맞아?”

입력 2019-10-13 16: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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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스포츠동아DB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월드컵대회에서 처음 TV 생중계가 도입된 건 1954년 대회다. 그 이전에도 각 국 리그에서 TV 중계가 이뤄지고 있었지만 ‘꿈의 무대’가 TV 전파를 탄 건 스위스월드컵이 최초다. 1954년은 한국축구가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을 통쾌하게 물리치고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은 대회이기도 하다.

아무튼 TV 중계의 도입은 월드컵의 인기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린 촉매제였다. 신문이나 잡지, 라디오 등을 통해 월드컵 소식을 접하던 팬들이 영상을 통해 세계 최고 선수의 플레이를 보면서 더욱 깊은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런 미디어 덕분에 월드컵은 지구촌 최대 축제로 불릴 만큼 급성장했다. 선수들은 누구나 꿈의 무대에 서고 싶어 하고, 팬들은 그 무대의 소식을 듣기 위해 다양한 미디어를 찾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된 것이다. FIFA에 따르면, 2018년 러시아월드컵의 총 시청자 수는 35억7200만명이었다. 그만큼 미디어의 역할은 막중해졌다. 아울러 FIFA는 미디어를 통해 팬 층을 확대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그런데 2022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 안타까운 장면이 연출될 처지다. 남북한이 맞붙는 평양 원정경기의 생중계가 불발될 위기다.

한국축구대표팀은 13일 오후 평양 원정길에 올랐다. 10일 스리랑카와 2022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8-0 대승을 거둔 한국은 15일 오후 5시 30분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과 조별예선 3차전을 갖는다. 대표팀은 13일 중국에 도착해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은 뒤 14일 오후 북한에 들어간다. 남북대표팀의 평양 경기는 1990년 친선전 이후 29년 만이고, 평양에서 월드컵 예선을 치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분단 상황뿐 아니라 양 팀이 조별 예선에서 나란히 2연승을 거두고 있어 여러모로 관심을 끌만하다.

그런데 이런 화제성 높은 경기를 실시간으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축구팬 입장에선 끔찍한 일이다. 북한축구협회는 최근 한국대표팀 25명과 임원 및 관계자 30명 등 총 55명의 비자만 발급했다. 결국 한국 취재진(방송 중계진 포함)과 응원단이 동행하지 못했고, 더불어 생중계와 관련된 협상도 전망이 어두운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경기장.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월드컵 아시아 예선의 경우 최종 예선은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도하는 반면 2차 예선까지는 개최국 축구협회에서 티켓 판매 및 TV 중계권 등 마케팅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이번 평양 경기는 북한축구협회가 주도한다. 13일 현재 중계사인 국내 지상파 3사의 에이전시가 북한에 들어가 마지막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액수 등에서 이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생중계는 북한이 국제방송 신호를 제공해야 가능한데,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FIFA 홈페이지를 통해 스코어만을 확인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축구협회가 권한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상대가 있는 축구 경기는 홈팀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AFC 경기운영 매뉴얼에 따르면, 홈팀은 AFC가 인정한 모든 팀 관계자와 AFC 상업파트너, 미디어, 응원단 등을 인종이나 성별, 국적에 차별 없이 입국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이번에 우리가 요청한 취재단 및 응원단에 대해 북한이 적극적으로 협조해 입국을 허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AFC 매뉴얼의 취지다.

일각에서는 승부에 민감해진 북한이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서는 한국에 질 것을 두려워했다거나 또는 남북 및 북미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지만 이는 FIFA가 추구하는 페어플레이와는 거리가 멀다. 또 축구에 정치가 개입되어선 안 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의 이런 행동이 별안간에 불거진 건 아니다. 애초에 불안한 조짐은 감지됐다. 지난달 대한축구협회가 2차례에 걸쳐 일정에 대해 문의를 했지만 계속 침묵을 지키다가 23일에서야 평양에서 경기를 진행한다고 확인해줬다. 이후 방북 방법을 조율하기 위한 협조 요청을 했지만 이번에도 마지막까지 애를 태우다가 베이징을 경유한 평양 입국을 허가했다. 같은 조에 편성된 나라에 대해 최소한의 협조나 편의 제공도 없었던 것이다. 남아공월드컵 예선이 열렸던 2008년에도 북한은 평양에 애국가 연주와 태극기 게양을 할 수 없다고 거부해 결국 중립경기(중국 상하이)로 열린 바 있다.

월드컵은 단순히 결과만 확인하는 경기가 아니다. 그 과정을 통해 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그 관심을 발판으로 열기를 확산해간다. 아울러 이런 팬들의 사랑을 통해 축구의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게 FIFA 전략이다. 이번 평양 경기는 그 과정이 완전히 무시됐다는 점에서 아쉽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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