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래의 피에스타] 2019년의 이정후, 2009년의 이종범 앞에 서다

입력 2019-10-23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지난해 아버지와 나란히 태극마크를 달고 포즈를 취한 이정후. 스포츠동아DB

2009년 10월 2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 KIA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KS) 7차전. 5-5로 맞선 9회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이 터지며 KIA가 벼랑 끝 승부에서 승리했다. 나지완이 해결사였지만 그 과정에서는 ‘베테랑’ 이종범(당시 39·현 LG 트윈스 야수총괄)의 기여도 숨어있었다. 은퇴 기로에 놓였던 ‘전설’은 우승의 순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후배들과 포옹했다. 이 해 KS 우승은 이종범에게 4번째이자 마지막 왕좌였다.

이날 관중석에는 ‘초등학생’ 이정후(21·키움 히어로즈)가 있었다. 소년에게 아버지는 영웅이었다. 이정후는 ‘언젠간 나도 아버지처럼 저 자리에 서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리고 꼬박 10년이 지난 2019년, 이정후는 자신의 꿈을 이뤘다. 정규시즌을 3위로 마무리 한 키움은 준플레이오프(준PO)에서 LG, PO에서 SK를 차례로 꺾고 KS 진출에 성공했다. 10월 22일 잠실구장에선 이정후의 KS 데뷔전이 치러졌다.

키움 이정후. 스포츠동아DB


이정후의 기세는 가을 내내 뜨겁다. 준PO에서 서서히 감을 끌어올린 그는 PO 3경기에서 타율 0.355(15타수 8안타) 3타점 맹타를 휘두르며 시리즈 MVP에 올랐다. 1993년, 1997년 KS MVP에 올랐던 이종범에 이어 사상 첫 부자 포스트시즌(PS) MVP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종범은 PS 통산 42경기에서 타율 0.255, 4홈런, 17타점을 기록했다. 집중 견제 탓에 정규시즌의 압도적인 위력을 보이진 못했다. 하지만 이정후는 아버지의 가을 징크스마저 넘어서는 중이다. 지난해 준PO 도중 부상으로 낙마한 한을 씻기라도 하듯, 두 번째 가을을 제대로 만끽하고 있다.

만21세 이정후는 선수로서는 물론 ‘스타’로서의 길도 차근차근 걷고 있다. PS에서 존재감을 키워가면서 자연스럽게 준PO와 PO, KS 미디어데이까지 개근했다. 오주원, 조상우, 이지영 등 파트너는 바뀌었지만 이정후는 빠지지 않았다. 키움의 간판스타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그는 “언젠가 내 또래들이 성장해 미디어데이에 단골로 나설 때가 올 것이다. 그때 난 지금의 경험으로 더욱 능숙하게 답할 것”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정후는 평소에도 “또래 선수들 중 최고가 되는 게 목표”라고 밝혀왔다. 이른바 ‘베이징 키즈’로 불리는 한국야구의 새로운 세대에서 이정후는 실력, 인성, 스타로서의 자질까지 모두 선두에 서있다.

올해 PS가 시작하기 전, 이정후는 아버지에게 “KS MVP 타이틀 따올게”라는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이정후의 목표는 KS MVP가 아닌 키움의 ‘V1’이다. 올해 반지를 끼게 될 경우 만23세에 첫 우승을 맛본 아버지보다 빠르게 트로피를 들게 된다. 키움의 우승을 위해서 이정후의 활약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009년 이종범 앞에 선 2019년의 이정후의 엔딩은 희극이 될 수 있을까

잠실|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