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야구협회 설립 이끈 허구연 위원, “야구판 스즈키컵 그린다”

입력 2019-12-17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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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와 베트남 국기 아래 모인 선수들. 사진제공|권동혁 감독

진짜 스포츠 강국의 기준은 단순히 성적만이 아니다. 인프라, 문화 전파 등에 앞장서는 것도 강국의 기준이다. 그간 한국 야구는 선진국이라고 칭하기 아쉬웠다. 하지만 한국인들 주도로 ‘불모지’ 베트남에도 야구협회가 설립 단계에 접어들었다.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0월 베트남 야구협회 창설을 공식승인했다. 이제 현지인으로 구성된 이사진을 꾸린다면 베트남 야구가 본격적으로 국제대회 정식 가맹국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는 허구연 MBC 해설위원(68)과 권동혁 감독(50)의 공이 숨어있다.

허 위원이 야구 불모지 개척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인 것은 2010년이다. 한국은 2008베이징 올림픽과 2010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연이어 우승했고, 2006, 2009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좋은 성과를 냈음에도 ‘야구 선진국’으로서 역할은 미진했다. 강승규 당시 대한야구협회 회장이 아시아야구연맹(BFA) 총회에서 회장에 선출됐고, 허 위원을 기술위원장으로 선임하며 변화가 감지됐다. 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재정적 여건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허 위원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베트남 야구계의 아버지로 불리는 권동혁 감독. 사진제공|권동혁 감독


베트남은 2011년 동남아시안게임 야구 대회에 처음 출전했다. 당시만 해도 협회가 없었기 때문에 준가맹단체인 호치민 시 야구단 자격으로 참가했고, 유니폼조차 만들지 못할 여건이었다. 허 위원이 급히 사재를 털었고, 베트남 야구의 사상 첫 국제대회 유니폼을 제작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베트남에 용품과 금액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베트남 첫 야구대표팀 지휘봉도 한국인 정상평 감독이 잡았다. 말레이시아에 승리하는 등 성과를 내는 듯했지만 발전에 한계가 분명했다.

국가공인협회가 없었기 때문에 돈이나 용품이 중간에 새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기부금 처리도 안 되기 때문에 기업에서도 어려움을 표했다. 금전적 지원은 물론이고 베트남이 국제대회에 원활하게 참가하기 위해서는 공식협회가 필요했다. 허 위원은 베트남 현지에서 야구팀을 이끌고 있는 권동혁 감독과 수년 전부터 협회 창설을 위해 발로 뛰었고 그 성과를 11년 만에 본 것이다. 권 감독은 “한국에서 귀금속 사업을 하며 남부럽지 않게 돈을 모았지만 10년 넘게 베트남 야구를 위해 살다보니 지금은 다 날아갔다”면서도 “승인 서류를 받아본 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며 감격을 숨기지 않았다.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가 야구협회 설립을 정식 허가했다. 사진제공|권동혁 감독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한국의 위상 변화는 스포츠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 감독은 외교관 역할을 자처하며 한국의 스포츠 품격을 높였다. 태권도, 양궁 등 한국이 강세를 띄는 종목에서도 감독과 코치, 관계자들이 세계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에 반해 야구는 미진했던 게 사실이다. 허 위원은 이미 캄보디아에 ‘허구연 필드’를, 베트남에 ‘KEB하나은행필드’를 만들었으며 이번 베트남 야구협회 출범에도 기여했다. ‘라오스 야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만수 전 감독도 있다. 미얀마만 가세한다면 태국과 더불어 인도차이나 반도 5개국의 국제대회도 기대해볼 만하다.

박한이(은퇴), 김태진(NC 다이노스) 등 선수들도 라오스를 거쳐 16일 베트남에 재능기부를 위해 왔다. 이에 앞서 손승락 등 KBO리그 간판스타들도 지원을 아끼지 않은 바 있다. 최근 만난 허 위원은 “축구에서 박항서 감독이 그렇듯 ‘야구판 스즈키컵’이 언젠가 시작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라며 “이만수 감독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권동혁 감독도 마찬가지다. 이들과 함께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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