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사커]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 서린 한국축구의 희로애락

입력 2020-01-2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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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3 축구대표팀 오세훈.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한국축구가 올림픽과 인연을 맺은 건 1948년 런던 대회 때다. 해방 이후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 올림픽 출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적이었다. 당시는 대륙별 예선이 없었다. 교통 시설이 열악해 런던으로 가는 길은 고행이었다. 요즘 같으면 직항으로 12시간이면 충분한 곳을 9개국 12개 도시를 거치며 20박 21일 만에 간신히 도착한 건 유명한 일화다. 1952년 헬싱키 대회도 신청만 하면 출전할 수 있었다. 전쟁 중이었지만 선발전도 열어 스태프 포함 14명의 초미니 선수단을 꾸렸다. 문제는 ‘돈’이었다. 설왕설래 끝에 결국 최종 결재권자인 이승만 대통령의 승낙을 받지 못해 모든 구기 종목의 참가가 무산됐다.

# 처음으로 대륙별 예선이 열린 건 1956년 멜버른 대회 때다. 한국은 일본을 물리치면 본선에 오를 수 있었다. 원래 홈&원정 방식이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정치적인 이유로 일본의 방문을 불허하던 때라 2차례 모두 도쿄에서 열렸다. 1승1패(0-2, 2-0)로 추첨을 했는데, 한국은 운이 없었다. 1960년 로마 대회 예선에선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대만에 몰수패를 당했다. 1968년 멕시코시티 대회 예선에선 일본과 4승1무로 동률을 이뤘지만 골 득실에서 밀려(일본 +22, 한국 +12) 본선행이 좌절됐다. 1980년대 중반까진 아시아 예선 통과도 쉽지 않은 암흑기였다. 1964년 도쿄 대회에 참가해 3전 전패를 당한 뒤 자동 출전한 1988년 서울 대회까지 본선 무대를 밟는데 무려 24년이나 걸렸다.

# 날개를 편 건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다. 이 대회의 특징은 연령 제한이 도입됐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나이 불문이었지만 이때부터 23세 이하만 출전이 가능했다. 다만 경기력을 위해 연령 제한이 없는 3명의 와일드카드를 허용했다. 한국은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카타르에 이어 조 2위로 본선에 올랐다. 특히 일본전이 화제였다. 경기 전날 일본 감독의 ‘종이호랑이’라는 빈정거림에 열 받았던 김삼락 감독은 1-0으로 이긴 뒤 “일본은 다시는 축구할 생각 말고 야구나 해라!”고 일갈해 화제를 뿌렸다. 이후 한국은 2016년 리우 대회까지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 스타의 등용문이었다. 또 값진 기록도 나왔다. 그 중 최용수(현 FC서울 감독)는 특별했다. 예선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어 사랑을 받았다. 1996년 애틀랜타 대회 아시아 1차 예선에서 8골, 최종예선에서 3골 등 총 11골을 넣은 최다골 기록 보유자다. 2004년 아테네 대회 예선에선 김호곤 감독(현 수원FC 단장)이 이끈 대표팀이 전승(8승)과 함께 무실점으로 통과해 갈채를 받았다.

# 8회 연속 본선 출전(1988~2016년)은 세계 최다 기록이다. 연령별 대회에서 한국축구의 경쟁력은 이미 검증됐다. 이제 9회 연속을 노린다. 2020 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 4강에 오른 한국은 22일 열리는 호주전에서 이기면 또 한번 기록을 경신한다. 이번 대회 1~3위는 도쿄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는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U-23 대표팀의 어깨가 무겁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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