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아내의 독후감’ 출간…63년생 윤석영은 어떻게 살았을까

입력 2020-01-28 1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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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vs 63년생 윤석영

밀리언셀러이자 영화로 제작된 조남주 작가의 화제작 ‘82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 씨가 여자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서술했다. 키워드는 남아선호사상, 복장규제, 성희롱, 취업차별 등 한국사회에서 겪은 ‘여성의 굴레’.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눈물을 한바가지 퍼 올렸지만, 다른 한편에선 젠더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젊은 ‘82년생 김지영’의 ‘삶의 증빙자료’가 미흡해서 논란이 일었을까?

‘82년생 김지영’보다 10년 일찍 한국사회에 편입된 여성의 삶은 어땠을까. 버라이어티한 시대의 터널을 지나온 ‘63년생 윤석영’이 조심스럽게 그 화두를 들고 나왔다. 신간 ‘아내의 독후감(윤석영 지음, 메티스 펴냄)’이 그것이다. ‘진주혼 기념문집’이란 부제가 붙었다. 진주혼은 결혼 30주년을 일컫는 말이니 결혼 30년을 기념해 책 좋아하는 ‘아줌마((?)’가 독후감을 모아 낸 책이겠구나했다.

편견을 깨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책은 독후감을 모은 책이 아니라 학창시절 우등생이었던 ‘63년생 윤석영’이 세 살 터울 남자(그 또한 엘리트다)를 만나 결혼한 뒤 30년간 한집살이를 하며 살아온 이야기다. 커피숍에서 친구와 만나 수다 떨듯 풀어나갔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의 달콤 쌉싸름한 결혼이야기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남편 흉이나 보거나 혹은 자랑질을 하는 자가발전적인 가벼운 내용이 아니다. 저자 윤석영 씨만 겪은 특별한 경험은 더더욱 아니다. 질풍노도의 세대인 386세대의 많은 여성들이 겪었을 법한 이야기를 서른 개의 에피소드로 엮었다. 아내로, 여자로, 엄마로, 직장인으로 살았던 삶을 투영하고 있다.


●63년생 윤석영은 어떻게 살았을까

‘아내의 독후감’의 서른 개 챕터는 소제목이 달려있다. 음식남녀,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마르셀의 추억, 향수, 사랑은 비를 타고, 아무르, 폭풍의 언덕 등등. 어딘가 낯이 익지 않은가? 그렇다. 대충의 스토리를 기억하는 나름 잘 알려진 영화 혹은 소설의 제목들이다. 작가는 삶의 에피소드들을 영화와 소설 속 스토리와 견주어 글을 풀어간다. 영화와 문학의 조예가 깊지 않고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만큼 내공이 깊다. 소제목에 대한 설명을 챕터 마지막 부분에 간략하게 설명하는 여성스러운 센스도 돋보인다.

내공이 깊으니 지루할 틈이 없다. 서른 개의 에피소드들이 날줄과 씨줄로 만나 하나의 삶을 이루고 있다. 기혼자라면 ‘그래그래’ ‘니네 남편(아내)도 똑 같구나’ 하며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시간 순으로 정리된 ‘성장소설’식이 나열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펼쳐도 완벽한 스토리가 되는 구성도 큰 장점이다. 하품할 겨를이 없다. 저자의 구성과 글재주가 빼어나 독자를 끌고 다니며 휘젓고는 종국에 한국사회의 뒤틀림을 툭 건드려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솔로몬과 개너’ 챕터에서는 현재는 무교인 자신의 과거 종교생활과 추억을 이야기한다. 그에게 종교는 신이나 믿음이라기보다 음악이고 문학이었다고 고백하면서 그가 현재 종교를 갖지 않은 것은 “사람들의 삶의 태도에서 종교의 유무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폭로’편에서는 남편의 잘생긴 외모로 인한 에피소드를 담았다. 성희롱 발언을 자랑하듯 하는 세태를 통해 한국 내 성희롱 특히 배움이나 사회적 지위의 무게와 반비례하는 도덕성을 가진 ‘엘리트 남성’들에게 통쾌한 ‘똥침’을 주기도 한다.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는 또 어떤가. 결혼 30년 동안 22번 이삿짐을 쌌던(가히 기네스북 감이다) 이야기를 조근조근 내뿜는다. 단독주택 2층 주택, 학생기숙사, 두 평짜리 서민아파트, 나홀로아파트, 상가건물, 오피스텔 고시원 원룸, 공무원임대아파트, 빌라, 민영아파트 등 결혼 27년 만에 전주에서 아파트를 장만하게 된 사연을 ‘징허게’ 내지른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63년생 윤석영’

‘63년생 윤석영’이 시댁도 까고, 남편도 까고, 자신마저 벌거벗은 솔직담백한 삶의 이야기는 30년 아내로서 산 ‘삶의 독(毒)후감’처럼 들리지만 곰삭은 홍어를 먹었을 때 코끝을 쏘는 알싸한 맛이 난다. 결혼생활 30년을 하면서 ‘그토록 맞지 않는(?)’ 남편을 여전히 사랑한다고 ‘애교’를 떨지만 그 끝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꿈틀거린다.

“나는 평생 소설과 영화를 통해 무수한 타인의 삶을 들여 다 보았다. 수많은 삶들을 보고 공감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내 삶을 예측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한다. 나는 여전히 삶이 어렵고 힘들다.”
결혼생활 30년 지지고 볶고 한 그의 결론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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