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집’ 홍인 “사투리 연습하고 4㎏감량…정성 쏟았다” [인터뷰]

입력 2022-07-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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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마이컴퍼니

“이름의 뜻처럼 어질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배우 홍인(39). 어머니께서 “어질게 살라”는 뜻으로 ‘어질 인(仁)’을 이름에 붙여주었다.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는 우스갯소리를 믿고 39년을 살아왔는데, 정작 “아직도 가족 앞에서 짜증부리는 철부지 아들”이라며 그는 웃었다.

그러나 20여 년간 걸어온 연기 행보는 이름이 지닌 의미를 따라가고 있는 듯 보인다. 스무 살 무렵인 2001년 서울예대 영화과에 입학해 지금껏 “연기 한 우물”만 팠다. 29살 무렵,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한 살 터울 형에게 “한 장당 500원이 드는 프로필 인쇄비용”을 받아 가며 버텼다.

그렇게 처음으로 캐스팅 전화를 받은 것이 2013년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다. 이후 조·단역 상관없이 불러주는 곳에 뛰어갔다. ‘해적:바다로 간 산적’, ‘조선마술사’ 등 열 네 편의 영화와 tvN ‘나의 아저씨’, SBS ‘스토브리그’ 등 여덟 편의 드라마가 그의 프로필을 빼곡하게 채웠다.

정점은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1’이다. ‘한탕’을 노린 강도단에게 인질로 잡힌 통일조폐국 부국장 황현호로 활약했다. 극의 악역으로 통하는 국장 역 박명훈과 대립하는 인물로 세계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홍인은 “인질들의 중심을 잡는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들였다. 돌이켜보면 인생 중에 가장 ‘어질게’ 보여야 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래는 스포츠동아와 나눈 일문일답.


Q. 북한 사투리가 상당히 실감이 났다.
“스페인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여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안경부터 작은 행동까지 치열하게 생각했죠. 보는 사람들이 ‘쟤 뭐 있다’ 의심하게끔 의뭉스럽게 표현하려고도 했어요. 북한사투리는 캐스팅이 확정됐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사투리 선생님께 ‘사투리만큼은 1등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죠. 턱선과 광대뼈가 도드라지게 보이면 캐릭터의 예민한 성격을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아서 4㎏가량을 감량했습니다. 다 누가 시켰냐고요? 아니요. 아무도 시킨 사람 없는데 고생을 자처했어요. 하하하!”


Q. 그렇게 노력하는 이유는?
“연기를 할 때 ‘내가 점점 사라지는 과정’이 가장 재미있어요. 사람들이 저를 못 알아보는 것만큼 희열이 큰 것은 없죠. 사실 연기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시점이 불과 3~4년 전이에요. 오랫동안 연기에 대한 재미를 잃고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 오랫동안 터널에 갇혀 방황했어요.”


Q. 끊임없이 작품을 해왔다. 방황과는 거리가 먼데.
“서울예대에 입학한 이후에 주변에서 곧잘 ‘넌 알아서 잘 하잖아’라는 말을 들었어요. 잘한다는 칭찬인데, 개인적으로는 부담감이 점점 커졌어요. 20대 중반 무렵에는 치기 어린 마음에 연기를 아주 잠시 접은 적도 있어요. 그때는 랩을 했어요. 굉장히 안 어울리죠? 랩을 가르쳐준 친한 형이 ‘너 진짜 재능 없다’고 했는데, 아무도 기대를 안 하는 상황이 자유롭게 느껴지는 거예요. 행복했어요. 그래도 밥벌이는 해야 하니 다시 연기를 시작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스트레스성 난청이 찾아와 왼쪽 귀가 안 들리더라고요. 1년간 꼬박 앓았어요. 그만큼 방황이 깊었죠.”


Q. 극복한 계기는 무엇인가?
“‘마이 리틀 히어로’ 김성훈 감독님의 말이 기억에 남아요. ‘너만큼 잘하는 사람은 진짜 많아. 거기서 더 올라가야 하지 않겠어? 그냥 이대로 끝내면 별로인데.’ 그 한 마디를 듣자마자 머리가 띵 울렸어요. 그때부터 연기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죠.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어요. 몸이 연기에 푹 빠지는 순간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어요. 언젠가는 동료인 엄태구의 평소 행동을 따라 해보기도 했어요. 연기하는 순간 몰입하는 능력이 남다른 친구여서 그 과정까지 도달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거든요. 다음에는 ‘종이의 집’에서 만난 박해수 형을 따라해 보려고요. 촬영 현장에서 대본을 쥐고 연습하면서 무섭게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이렇게 주변 사람들의 장점들을 하나씩 ‘뽑아먹으면’ 언젠가 저만의 스타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Q. 연기의 목표는 무엇인가.
“사실 목표는 이미 이뤘어요. 영화 ‘달콤한 인생’(2005)을 보면서 김지운 감독, 이병헌 선배, 김지용 촬영감독과 꼭 작업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어요. 2016년 ‘밀정’에 출연해 그 꿈을 이뤘죠. 이병헌 선배가 특별출연하면서 꿈에 그리던 ‘드림팀’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거든요. 그 순간이 제 오랜 ‘방황의 터널’을 끝마치게 해주었어요.”


Q. 새 목표는 안 잡았나.

“네. 그저 재미있게 연기하고 싶어요. 제가 연기해서 번 돈으로 부모님께서 물질적인 걱정 없이 지낼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영화사에 프로필 돌리러 다닐 때 ‘밥 굶지 마라’며 용돈 챙겨준 형의 대출금도 갚아주고 싶고요. 형 없었으면 이 자리까지 못 왔거든요.”


Q.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연기 잘하는 애. 그렇게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작품마다 항상 다른 모습을 보여서 ‘얘가 그 친구였어?’라는 소리를 듣고 싶고요. 그 두 가지 바람만 잘 지키면 될 것 같아요.”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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