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레전드 4차 발표…1982세계선수권 우승 주역 김재박-장효조-김시진-한대화

입력 2022-08-08 16: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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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 KBO

1982년은 한국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해다. 6개 구단 체제의 프로야구가 출범한 데 이어 7월 잠실구장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이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를 위해 많은 스타들이 프로 합류를 보류했다. 대표팀의 주축을 이룬 실업 및 대학 선수들은 1983년 프로에 데뷔했다.

이들은 아마추어시절 명성에 걸맞게 KBO리그도 주름잡았다.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주역으로, 전문가와 팬이 선정한 레전드 40인에 포함된 선수들은 장효조(6위), 김시진(20위), 한대화(28위), 김재박(31위)이다.

‘타격의 달인’ 장효조는 KBO리그 통산 타율 0.331로 이 부문 2위에 올라있다. KBO리그에서 3000타석 이상을 소화한 선수들 중 장효조보다 높은 타율을 올린 선수는 현역으로 뛰고 있는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0.341)가 유일하다. 작은 체격이지만 아마 시절 타격에 있어선 독보적 존재로 이름을 떨친 장효조는 삼성 라이온즈 입단 첫해인 1983시즌 타격 1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1985시즌부터 1987시즌까지 3시즌 연속 타율 부문 타이틀을 차지했다. 통산 출루율은 1위(0.427)이고, 출루율 타이틀은 6차례 석권했다.

1980년대 삼성 마운드에는 KBO리그 최초 100승 투수 김시진이 있었다. 김시진은 입단 첫 시즌인 1983년 17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5년째인 1987년 리그 최초의 100승 투수가 됐다. 김시진이 100승을 거두기까지 등판한 경기는 186경기에 불과했다. 지금까지도 최소경기 100승 기록으로 남아있다. 1985년에는 25승(단일시즌 최다승 공동 3위), 201삼진, 승률 0,833으로 3개 부문 타이틀을 거머쥐며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해당 시즌 김시진은 10세이브로 이 부문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세계선수권대회 일본과 결승전 8회 결승 3점홈런을 때려낸 ‘해결사’ 한대화는 1986년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된 뒤부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적 첫 시즌 승리타점 1위(16개)에 오르며 해태 왕조의 중심이 됐다. 해태가 1986~1989년 4시즌 연속 우승하는 동안 매년 홈런 5걸 안에 들며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1990년에는 타율과 출루율 1위, 안타, 타점, 득점 2위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LG 트윈스로 트레이드 된 1994년에도 타율(0.297)과 타점(67개) 9위에 오르며 우승 반지를 7개로 늘렸다. 한대화가 갖고 있는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8회 수상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개구리 번트’로 국민 영웅이 된 ‘그라운드의 여우’ 김재박은 실업리그 7관왕 출신이다. 프로 데뷔 이전부터 공·수·주 3박자를 갖춘 명 유격수로 명성이 자자했다. 1982시즌 막판 MBC 청룡에 합류해 3경기에만 나선 그는 사실상 데뷔 첫 시즌이었던 1983년 도루 2위(34개), 득점 4위(53개), 안타 6위(108개)에 오르며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30세에 프로 무대에 데뷔한 까닭에 실업 시절의 명성만큼 압도적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안정적 수비와 공격, 주루 센스로 4년 연속(1983~1986년) 등 총 5회 골든글러브 수상의 화려한 발자취를 남겼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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