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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조순학파’ 남긴 ‘포청천’ 서울시장

최혜령 기자 , 박희창 기자

입력 2022-06-24 03:00:00 수정 2022-06-24 08: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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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거목’ 하늘로… 조순 前부총리 별세
조순 前경제부총리 1928∼2022
정운찬-이창용 등 제자 배출… ‘경제학원론’은 학생 필독서 꼽혀
서울시장때 여의도 공원 조성, 한나라당 초대 총재도 지내
尹 “학자-공직자로 큰 족적” 조문


2017년 구순을 맞은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 DB
한국 경제학계의 거두(巨頭)이자 관료, 정치인으로 큰 족적을 남긴 조순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23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고인은 노태우 정부 시절(1988∼1993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고,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서울시장에 당선돼 행정가로 변신했다. 시장 재임 후에는 한나라당 초대 총재를 맡았다.


1928년 강원 강릉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교수로 일했다.

1974년 펴낸 뒤 수차례 개정한 경제학원론.
고인은 ‘조순학파’로 일컬어질 정도로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며 한국 경제학계에 획을 그었다. 1974년 케인스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교과서인 ‘경제학원론’을 펴냈다. 이 책은 정운찬 전 국무총리, 전성인 홍익대 교수, 김영식 서울대 교수 등이 차례로 개정판에 공동저자로 참여하면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제학의 대표적인 교과서로 꼽힌다.

평생 학자로 살 것 같았던 고인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현실 참여형 학자’로 변신했다. 육사 영어 제자였던 노 전 대통령의 권유로 1988년에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았다. 1992년부터 1년간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를 두고 정부와 갈등을 빚다가 사표를 냈다. 이후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대쪽 학자’ 이미지를 갖게 됐다.

정계에 발을 디딘 것은 1993년 당시 아태평화재단 김대중 이사장의 권유였다. 재단 자문위원을 맡아 활동한 고인은 이후 민주당에 입당해 서울시장 선거에 나섰다. 1995년 첫 민선 서울시장에 당선됐고 첫 출근길에 종로구 혜화동 공관에서 시청까지 버스를 타는 등 ‘소통’을 강조했다. 당시 아스팔트로 덮여 있던 여의도광장을 나무가 우거진 여의도공원으로 조성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시장 임기를 10개월여 남겨두고 통합민주당 대선 후보로 영입돼 대권에 도전했지만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전격 단일화하면서 완주하진 못했다. 그 대신 초대 한나라당 총재를 맡았다. 한나라당이라는 이름도 그가 직접 지은 것이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민주국민당 대표로 총선을 지휘했지만 선거 참패 후 정계를 떠났다.

많은 이들이 그의 길고 빽빽한 흰 눈썹과 번뜩이는 눈빛을 기억한다. 누군가는 그런 그를 일컬어 ‘백미(白眉·여러 사람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라고 했고, 판관포청천이라는 대만 드라마가 한창 인기일 때는 ‘서울 포청천’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하얀 눈썹을 휘날리며 산행을 즐겨 ‘산신령’이라고도 했다. 그는 산신령이라는 별명을 가장 좋아했다.

2017년 구순을 맞은 고인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직접 쓴 ‘노회(老懷)’라는 제목의 한시(漢詩)를 들려줬다. ‘평생의 내 구상 아주 공허한 것은 아냐(平生構想未全空)/운에 따라 작은 기회에 우연히 적중한 것도 있다네(隨運微機遇適中)/구십을 바라보며 몸은 늙어도 본성은 그대로 남아(望九老身留本性)/해가 가도 하루 일과는 젊을 때와 같구나(年重日課少時同).’ 나이가 들었음에도 항상 젊을 때처럼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조순 전 경제부총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2022.6.23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후 빈소를 직접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윤 대통령은 “조순 전 부총리는 학자로서, 공직자로서, 정치인으로서 우리나라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라고 말했다.

빈소에서 유족 곁을 지킨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올해 5월 내놓은 책 ‘나의 스승, 나의 인생’에서 “90세가 훨씬 넘으셨으나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와 정보가 많다. 아무리 써도 고갈되지 않는 용지불갈(用之不渴)이라고나 할까. 우리에게도 항상 용지불갈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다”고 적었다. 부총리 재직 때 비서관이었던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빈소를 찾아 “매사에 사사로움 없이 사안을 판단하시고 우리 경제가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하고 올바르게 갈 수 있을지 늘 고민하셨다”고 회고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조화를 보내 고인을 추모했다. 발인은 25일 오전, 장지는 강원 강릉시 선영. 유족으로는 부인 김남희 씨(92)와 장남 기송 전 강원랜드 대표와 준, 건, 승주 씨가 있다.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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